김택 논설위원 / 중원대 교수

 

미국 하버드대학교수로 봉직했던 미래학자 다니엘 벨은 1960년도 한 평론집에서 이데올로기의 종언(End of Ideology)을 주장했는데 그는 미국의 과학과 사회의 변화로 더 이상 마르크스주의가 현대 산업사회에서 발붙이지 못한다고 보고 이데올로기는 낡은 것에 불과하다고 보며 폐기를 주장했다. 마르크스와 레닌에 의해 강조됐던 유물사관과 이념논쟁은 구소련의 몰락과 함께 정당성은 상실되고 만다. 선진국을 비롯한 세계는 이제 자유와 평등, 복지와 자본, 인권 등 인간의 삶과 직결된 문제를 중시하고 있다. 심리학자 매스로우는 인간 욕구의 5단계설을 주장하면서 최상의 목표가 자아실현(Self actualization)을 강조하고 있다. 인간의 삶을 중시한다는 뜻이다. 박근혜정부 출범 후 대한민국은 대통령의 국정철학인 ‘비정상의 정상화’ 정책을 실현하고자 관료들은 밤잠을 설치고 있다. 부정과 부패, 낡은 이념의 틀을 깨트리기 위해 개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요즘 정부는 공무원연금개혁, 노동개혁, 이념개혁을 위해 국회와 대립각을 세우며 싸우고 있다.

국정교과서도 바른 역사관을 통해 나라의 정통성을 강화하고 바른 가치관을 심어주겠다는 취지이다. 문제는 이와 같은 정부의 강경태도가 야당이나, 국민들의 컨센서스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는 것이다. 시민들은 평화와 공존 다양성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역사는 다양한 견해와 비판이 뒤따른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사실은 공정하고 투명한 역사기술에 있다. 그동안 역사교과서가 너무나 편향된 집필로 문제점을 노정시켰다. 먼저 불균형 되고 왜곡된 측면이 많다는 지적이다. 검인정교과서를 보면 쉽게 인식할 수 있다.

먼저 일제강점기 표현이다. 그전에는 일제시대라고 했는데 이 표현을 쓰는 것은 북한의 미제강점기 표현에서 따온 것처럼 느낀다. 동학혁명이 농민전쟁인가, 항일 전쟁인가의 해석, 이승만의 분단책임과 폄훼논쟁도 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즉, 정읍발언이 분단의 시작이라는 일방적 주장의 오류성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와 함께 미군정기의 정치적 무질서와 미군정 전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 이승만의 농지개혁평가의 부정적 좌편향적 시각도 보수진영에선 비판한다. 우리나라 역사중 근 현대가 친북 민중노선사상과 유사하거나 일치하다면 바른 역사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현재 국사교과서에 근·현대사 비중이 50%나 된다니 5000년 한국 역사가 너무 한쪽에 편향됐다는 측면이 강하다. 대한민국의 역사의 시작인 단군조선이나, 삼국시대의 문화 , 고려의 통일과 몽고항전, 조선의 문화와 기술 역사가 빈약하다.

학생들에게 자랑스러운 면을 보여주어야 하고 긍지를 갖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치 못하다. 건국과 산업화과정시기에 혼란과 불안 독재사관을 심어줄 수 있는 현행 국사교육이 바른 가치관과 애국심을 가질 수 있는지 의문이다. 친일세력, 독재세력, 분단세력이 대한민국을 이끌어 왔다는 反대한민국 이데올로기가 판을 친다면 이것을 가지고 바른 역사관을 형성할 수 있는지도 되묻고 싶다. 두 번째는 그동안 좌파 정권 10년동안에 교육부관료나, 국사편찬위원회,역사학자들이 도대체 무엇을 했는지 직무유기가 아닐 수 없다. 역사가 덧칠하고, 하나 더하고, 빼고 하는 것인가? 역사는 사실을 기록하는 것이다. 사마천이 궁형이라는 치욕의 형벌을 당했어도 오로지 역사적 사실의 역사서 ‘사기’를 기술했다. 진시황제가 분서갱유라는 패악을 저질렀을 때도 사관들은 바른 것을 상소했다. 연산군의 무오사화시 사관들은 능지처참 당하고 부관 참시 당하여도 선비들은 정의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역사학자들은 조선시대 사관의 혼을 가져야 한다. 역사적 혼을 지니지 못한다면 얼이 빠진 것이다. 얼이 없는데 어떻게 정통성을 지닌 역사서를 발간하겠는가? 얼과 혼을 지니고 치열한 자기성찰과 냉철한 지성으로 무장해야 한다. 또한 역사관은 균형과 상생이 필요하다. 좌편향 역사도 문제이지만 극우적인 역사관도 경계해야 한다. 좌우를 어우르고 상생하는 자세와 태도가 중요하다. 역사가 단편적인 기록이 아니라 정의의 씨줄과 날줄의 촘촘한 조합일진데 대한민국 역사를 폄하하고 패배주의로 얼룩지게 한다면 그것은 역사라 할 수 없다. 최근의 역사논쟁에서 필자는 다음의 말로 문답함으로 가름하고자 한다. 무엇이 정의인가? 공정함이다. 바른 역사는 무엇인가? 투명성이다. 역사가는 무엇이 필요한가? 균형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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