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영섭 서양화가

 

지난주 주말 모처럼 가족 넷이서 외식을 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물었다. 어디로 갈까? 아내는 모처럼 딸들과 하는 외식이니 딸들에게 맡기자고 했다. 그러나 30대인 큰딸은 외지에서 직장생활하고 있는 동생에게 또 미루었다. 20대 후반인 막내딸은 또 결정을 못하고 나에게 맡겨 결국 내가 좋아하는 횟집으로 가게 되었다. 점심 메뉴는 어느 것으로 할지, 갑작스럽게 생긴 친구와의 만남에 나가야 할지와 같은 이유로 하루에 여러 번 고민하는 이런 사람들을 일컬어 ‘결정장애족’이라고 한다. 요즈음 많은 젊은이들이 식사메뉴나 옷 스타일 등 사소한 것부터 대학의 전공이나 직업까지 결정을 대신해 달라며 SNS에 글을 자주 올린다고 한다. 심지어는 무언가를 결정 할 때 다른 사람의 조언을 연결해 주는 어플도 생겼다고 한다. 한 신생벤처기업이 결정장애 해결을 목표로 만들어 성업중이란다. 결정장애란 어떠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어느 한 쪽을 결정하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심리상태를 일컫는 신조어이다. 선택의 폭이 다양하고 넓어진 탓에 간단한 것조차 쉽게 결정하지 못하고, 선택에 스트레스를 느끼는 심리를 말한다. 사소한 것이라도 한 번에 결정하지 못하고 미루거나 다른 사람에게 기대는 현상을 말한다. ‘죽느냐 사느냐 이것이 문제로다.’라고 말한 셰익스피어의 명작 햄릿의 이름을 따 햄릿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젊은 세대의 결정장애가 사소한 신변잡기를 넘어 인생의 중요한 문제를 결정 할 때도 나타나니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왜 이런 현상이 만연 할까? 무한 자식 과잉사랑을 쏟아 붓는 엄마들의 스케줄에 따라 키워진 아이들의 경우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하는 능력을 상실하기 쉽다. 이런 엄마들은 실패를 줄이기 위해서라고 말하지만 실패를 두려워하고 자율성을 잃어버린 엄친아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선택 과잉의 시대, ‘21세기의 햄릿’이 늘고 있다. 포털사이트에 관련 검색어를 입력하면 결정장애를 호소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글들이 넘쳐난다. 서울대 생활과학연구소 소비트렌드분석센터는 2015년 주요 트렌드로 ‘햄릿증후군’을 꼽기도 했다. 온라인 쇼핑시장에는 이들을 공략한 새로운 거래유형도 등장했다. ‘결정장애’나 ‘햄릿증후군’은 정식 병명은 아니다. 문요한 정신과 전문의는 ‘스스로 살아가는 힘’이라는 저서 ‘선택의 기회가 많아진 현대사회가 낳은 새로운 정신적 문제’라고 규정했다. 옛날에는 웃어른들 말씀이나 사회적 관습에 따라 살면 됐기 때문에 딱히 선택할 일이 많지 않았다는 것. 현대사회로 접어들고 핵가족,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당장 오늘 점심은 뭘 먹지부터 시작해서 좋건 싫건 스스로 모든 것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선택의 가지수가 많을수록 불만이 많아지고 스트레스도 커진다. 선택에 따른 리스크와 후회가 커지기 때문에 실망할 가능성도 커진다. 문원장은 또 결정장애자들의 3가지 착각을 지적했다. 21세기 햄릿들의 결정적인 착각은 결정을 미루고 더 많은 정보를 알아보는 것을 ‘신중함’이라고 미화한다는 것. ‘첫 번째 단추를 잘못 끼우면 나머지 단추도 잘못 끼우게 돼 있다’는 말도 결정장애자들이 내세우는 명분이지만 사실은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크기 때문이라고 했다. 또 ‘최고의 결정은 결정의 순간에 달려 있다’는 착각이다. 결정에 대한 만족은 결정의 순간보다 결정한 후 과정에 달려 있다고 말한다. 선택에만 집착하다 보면 정작 자신이 무엇 때문에 선택을 하려고 했는지 목적은 잃어버리게 된다는 것이다. 완벽한 선택이란 이 세상에 없다. 선택의 결과로 낭패를 당한다 하더라도 과감하게 수용 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나의 삶에 대하여 전적으로 내통제력에 의해서만 좌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의 주관적인 선택에 의하여 결정된 바를 인정하고 겸허히 수용 할 수 있어야 어떠한 역경도 이겨나갈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그 결과에 대한 예측까지 신중을 기하여 대처하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어떠한 결정에도 반드시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은 따라온다. 젊은이들이여! 자기결정에 두려워하지 말고 더 안전하고 더 의미있는 삶을 살기 위한 고민이라고 생각하고 자신의 선택에 대해 너그러워질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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