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도해강→독고용기→기억상실증에 걸린 도해강→그 다음은?'
배우 김현주가 펼치는 섬세한 '둔갑술'이 주말 안방극장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다.

사람을 홀리는 사악한 둔갑술은 삼장법사가 나서서 퇴치해야겠지만, 김현주의 둔갑술은 시청자의 볼 권리를 위해 적극 육성해야 하는 깊이 있는 1인3역의 캐릭터 플레이다.

올 초에는 지성이 '킬미힐미'에서 개성이 뚜렷한 7가지 다중인격 연기로 화제를 모았다면, 2015년의 끝자락에서는 SBS TV '애인있어요'의 김현주가 결이 세밀하게 살아있는 3가지 캐릭터 연기로 내공을 뽐내고 있다.

그의 연기에 빨려든 시청자들은 지난 8일 '애인있어요'가 야구 중계로 끝내 결방되자 들불처럼 일어나 '애인있어요'의 홈페이지를 비롯해 각종 게시판에 분노를 쏟아냈다. 문제는 이번 주말에도 SBS가 야구 중계로 이중 편성을 잡았다는 사실.

시청자들은 김현주의 1인3역을 이번주에도 못 볼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갑질 변호사 도해강 vs 힘없는 미혼모 독고용기
도해강은 '상위 1%의 삶을 향해, 오직 세상의 갑들을 위해서만 헌신하며 사는 대한민국 갑질 변호사로 평소엔 냉정하고 일할 땐 냉혈하다'는 설명이 붙는 캐릭터다.

지난해 KBS 2TV '가족끼리 왜이래'에서 밝고 성실한 캐릭터를 연기하며 2014 KBS연기대상 최우수상을 거머쥔 김현주는 이후 "사람들이 나를 착한 이미지로만 보는 것은 연기자로서 딜레마라 고민이 된다"고 토로했다.

그런 고민의 반영인지, 그가 선택한 도해강은 '못돼 먹고 인정머리 없는 여자'다. 찔러도 피 한방울 안 나올 것같은 차갑고 도도한 캐릭터로, 김현주에게서 이렇게 냉기가 나온 적이 있었을까 싶게 얼음같다.

 

그런데 사실 도해강의 이름은 독고온기이고, 그에게는 어린시절 헤어져 존재조차 모르는 쌍둥이 동생 독고용기가 있다.

가진 것 하나 없는 미혼모 독고용기는 뽀글뽀글 파마와 동그란 안경, 촌스러운 패션을 자랑하는 서글서글한 성격의 아줌마다.

김현주는 세련미가 좌르르 흐르는 도해강과 '대한민국 바닥서민' 독고용기를 천연덕스럽게 오갔다. 쌍둥이라고 하지만 달라도 너무 다른 이 쌍둥이는 사는 환경은 물론이고, 성격과 가치관이 결코 만날 일 없이 평행선을 달린다.

심지어 도해강이 윤리의식을 저버리고 옹호했던 천년제약의 추악한 내부 비밀을 고발한 사람이 바로 독고용기. 밝고 명랑하고 씩씩한 독고용기는 갑질 하는 언니와 정반대로 갑의 횡포에 맞서다 살해까지 당할 뻔한다.

떼려야 뗄 수 없는 쌍둥이지만, 운명의 장난으로 극과 극의 대척점에 서야하는 두 여성은 김현주를 만나 한 화면 속에서 각기 다른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기억을 잃은 도해강 그리고 기억이 돌아올 도해강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다. 김현주는 제3의 인물도 연기하는데 이 3번째 인물이 이 드라마의 핵심이다.

사고로 기억을 몽땅 잃은 도해강이다. 하지만 일이 꼬이려다보니 기억을 잃은 그를 사람들은 독고용기라고 착각한다. 졸지에 기억을 잃은 도해강은 억지춘향 식으로 독고용기 흉내내기를 하게 된다.
지난 2011년 김현주와 손잡고 MBC '반짝반짝 빛나는'을 히트시켰던 배유미 작가는 4년 만에 다시 만난 김현주에게 이렇듯 꽤나 흥미로운 미션을 줬다.

도해강도, 독고용기도 아닌 '기억을 잃은 도해강(혹은 독고용기)'이 바로 지금 시청자들의 애를 닳게 하고 있다. 그가 지난 7일 21회 라스트 신에서 칼을 맞은 뒤, 8일 22회가 결방되자 'SBS가 애인있어요 몸값을 높이려고 일부러 그랬다'는 음모론부터 '한번만 더 결방하면 SBS를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론까지 인터넷을 뒤덮고 있다.

SBS는 "22회 결방으로 '애인있어요' 홈페이지 시청자 참여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예고편은 경이적인 클릭수를 기록했다"고 밝혔다.

도해강을 습격한 괴한은 그를 독고용기로 아는 자들의 사주로 움직인 것이다. 앞서 도해강의 기억을 잃게 한 차 사고 역시 독고용기를 죽이려던 자들이 벌인 짓이었다.

 

이렇듯 상황은 굉장히 복잡하지만, 김현주는 섬세한 연기로 이 혼돈의 상황을 슬프고도 애잔하게 헤쳐나가고 있다. 특히 속절없이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헤어진 전 남편 최진언(지진희 분)과 자신을 독고용기로 알고 순애보를 펼치는 백석(이규한) 사이에서 중심을 잡기 위해 애를 쓰는 연기가 여성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있다.

두 상반된 인물을 오가는 것까지야 1996년 데뷔해 연기 인생 20년을 바라보는 김현주에게 어렵지 않을 수 있다 해도, 이 둘을 섞어놓은 제3의 인물은 자칫 죽도 밥도 안 되는 참사를 낳을 수 있다. 하지만 김현주는 이런 역할을 기다렸다는 듯 그간 쌓아온 내공을 발휘해 1인3역을 엉킴없이, 현실감있게 표현해내고 있다.
그의 풍성한 연기력이 만들어내는 개연성에 시청자들은 "자꾸 이야기하고 싶어지는 드라마, 이야기할 게 많은 드라마"라는 찬사를 보내고 있다.

'애인있어요'는 이제 또한번 변곡점을 맞는다. 이런저런 사고로 도해강의 기억이 조금씩 돌아올 조짐이 보이는 것이다.

그렇다면 기억을 되찾은 도해강은 어떤 인물이 될 것인가. 김현주가 1인4역을 할 시간이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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