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호 논설위원·청주대 명예교수

 

공공기관을 비롯하여 공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조직이나 단체 등은 자신들이 도달하고자 하는 목표나 도모하고자 하는 사회적 활동계획 등을 축약된 용어를 사용하여 눈에 잘 뜨이는 곳에 게시한다. 이러한 게시문은 비교적 행정이나 교육기관에 많다. 정부기관에 있어서의 시·도정 및 시·군정 방침, 교육기관에 있어서의 교훈 및 계도문 등이 대표적인 예이다. 충북도와 청주시 등의 도정 및 시정방침을 보면 충청북도는 ‘함께하는 충북 행복한 도민’이라는 슬로건 아래 모두가 행복한 평생복지, 세계로 향하는 창조경제, 도농이 하나 된 균형발전, 다함께 누리는 감동문화, 사람이 소중한 안전소통 등을, 청주시는 ‘일등경제 으뜸청주’라는 슬로건 하에 풍요로운 지역경제, 시민행복 안전도시, 상생발전 균형개발, 희망나눔 맞춤복지, 시민중심 청렴행정 등을 제시하고 있다. 교육기관 중에서 모 대학은 교훈으로 진리탐구, 덕성함양, 실천봉공 등을 열거하고 있는가 하면 모 중학교에서는 현관에 ‘배움의 즐거움, 꿈을 향한 도전과 열정’이라는 구호가, 운동장 담벼락에는 지나가는 행인들을 상대로 ‘당신들이 버린 쓰레기에 아이들의 꿈이 걸려 넘어집니다.’라고 쓴 플래카드를, 그 옆에는 학생들을 향하여 ‘지금 네 곁에 있는 사람, 지금 네가 가는 곳, 지금 네가 읽는 책이 너의 미래를 결정한다.’ 고 쓴 플래카드 등을 걸어 놓고 있다.

여타 공공기관이나 사회단체 등도 앞의 기관들과 비슷하게 그들 조직의 정체성 및 공의를 바탕으로 자신들의 활동계획이나 사회정의 구현에 대한 의지 등을 특정방법이나 플래카드 등을 통하여 발표한다. 발표를 위해서는 한국의 나랏말인 한국어가 동원된다. 한국의 나랏말이라는 점에서 품격의 유지가 강조된다. 여기서 말하는 품격은 공공기관이나 사회의 조직 및 단체 등이 대국민용으로 제시하는 좌표나 방침 및 계도문 등은 당해 조직들의 정체성이나 정책의 객체들에게 유의미하고 가치 있는 것을 구비하였음을 말한다. 방향과 내용 등을 명확하게 제시하는 것을 말한다. 불명료하거나 두루뭉실의 용어는 단연코 배척되어야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5개의 도정 좌표 또는 지침은 각각의 목표와 행동노선이 모호함은 물론 단어의 배치가 혼란스럽다. 때문에 좌표나 지침으로서의 요건을 구비하였다고 볼 수 없다. ‘모두가 행복한 평생복지’라는 용어는 억지이고, ‘세계로 향하는 창조경제’라는 표현은 창조경제의 본질에 맞지 않으며, ‘도농이 하나 된 균형발전’은 지역 간의 균형발전을 도외시하는 약점을 지니고 있고, ‘다함께 누리는 감동문화’는 문화의 개념에 맞지 않는 정책이며,‘사람이 소중한 안전소통’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소통인지가 분명하지 않다는 점 등에서 좌표나 지침으로서의 가치를 인정할 수 없다. 그런가하면 시정방침도 지향점이나 행동노선에서 볼 때 용어의 질서에 맞지 않고 내용 또한 애매하다. ‘시민행복 안전도시’란 말은 행복과 안전과를 등식화 하는 단점을 지니고 있고, ‘상생발전 균형개발’은 발전이나 개발의 본질에 맞지 않으며, ‘희망나눔 맞춤복지’와 ‘시민중심 청렴행정’ 등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그리고 모 대학의 교훈 중 ‘실천봉공’은 위의 두 용어와 맥락을 같이 한다는 차원에서 주어+동사형인 ‘봉공실천’으로 바꾸어야 한다. 필자가 대학최고책임자였던 두 사람에게 교훈을 바로잡을 것을 권고하였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학교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교훈을 제대로 게시하지 못한 대학을 어느 수준의 대학으로 보아야할 지 참으로 난감한 일이다. 중학교 현관의 슬로건도 바꾸어야 한다. 꿈을 ‘갖기’ 위해 도전과 열정을 갖는 것이 아니라 꿈을 ‘이루기’ 위해 열정을 가지고 도전을 한다는(열정을 도전보다 앞에 씀) 뜻의 ‘꿈을 이루기 위한 열정과 도전’으로 바꿔야 한다. 어순을 바르게 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운동장 담벼락에 부착한 ‘당신이 버린 쓰레기에 아이들의 꿈이 걸려 넘어 집니다’는 당신을 ‘귀하’로, ‘아이들의’는 ‘학생들의’로 바꿔야 한다. 쓰레기를 함부로 버리는 것은 인격이나 양심 사항이지 꿈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 옆 플래카드의 ‘네’가 있는 곳, 가는 곳, 읽는 책에서의 ‘네'는 귀하로 바꾸어야 하고 책 다음에는 세 가지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등’을 넣어야 한다. 한국어는 나랏말이라는 점에서 격에 맞게 사용하여야 한다. 글자마다에는 생명이 깃들어 있다고 보고 바르고 정확하게 사용하여야 한다. 특히 지적하고 싶은 것은 외부로부터 부적합한 용어로 지적된 것은 몇 달이 지나도 고치지 않은 채 방치하지 말고 즉시 바로잡아야 한다. 학교는 진선미의 산실이어야 한다는 점을 한시도 잊어서는 아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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