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사·개인 인연 떠올리며 "신념의 정치인" 치켜세워

▲ 김종필 전 국무총리가 22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를 찾아 슬퍼하고 있다.

"'닭의 목을 비틀어도…" 잊혀지지 않는 말…79년 제명때 나 혼자 반대"

"충신 어디갔느냐" YS '그림자 보좌' 김기수 비서관 보자 울음 터뜨려

 

(동양일보) 한국 현대 정치사를 상징하는 '3김(金)'의 한명인 김종필 전 총리는 22일 서거한 '정적이자 동지' 김영삼 전 대통령의 영전에 조용히 국화 한 송이를 바쳤다.

김 전 총리는 이날 오전 8시50분 서울대병원 빈소를 휠체어를 탄 채 찾아 국화 한 송이를 들고 10초 정도 눈을 감았고, 양손 깍지를 끼고 묵념을 올렸다.

김 전 대통령의 집권에 다리를 놓은 지난 1990년 1월 '3당 합당'의 파트너였던 김) 전 총리는 빈소에서 한 시간 가량 머물며 김 전 대통령과 보낸 지난 60년 정치사를 떠올리며 심심한 애도를 표했다.

김 전 총리는 조문을 마친 후 내빈실에서 영욕의 과거를 함께 한 인물들과 김 전 대통령을 추억했다.

특히 김 전 대통령의 차남인 현철씨, 또 상도동계로서 민주화 운동을 함께 했던 김수한 전 국회의장,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 서청원 최고위원과 현대사의 굵직했던 장면들을 얘기하며 때론 웃음으로, 때론 울음으로 과거를 회고했다.

김 전 총리는 현철씨에게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 많이 있는데 그중에 잊히지 않는 게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였다"면서 "당신의 신념대로 움직이는데 어떤 것도 자신의 신념을 꺾지 못하고, 민주화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는데 그 게 생각이 난다"고 회고했다.

김 전 총리는 "보통 사람은 생각지 못하는 얘기다. 신념에서 우러나오는 말씀"이라면서 "김 전 대통령이 (지난 1979년) 국회에서 제명당할 때 모두 찬성했는데 나 혼자만 반대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이 그걸 아셨는데 나한테 아무 말도 뭐라고 안하더라"고 덧붙였다.

이어 김 전 총리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선조(김 전 대통령)를 퍽 괴롭혔다"면서 "그래서 내가 조금이라도 위안을 드릴 수 있었으면 해서 옆에 와서 다니고 있다는 얘기를 (박 전 대통령에게) 한 번 했더니 조용히 웃으십디다"라고 당시를 떠올렸다.

김 전 총리는 5.16 군사쿠데타 이후 비사도 소개했다.

김 전 총리는 "5.16 전에는 (YS를) 뵐 일이 없었다"면서 "근데 (5.16 이후) 한 번 농반진반으로 '같이 하십시다' 그러니까 조용히 웃고는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고 술회했다.

그러면서 "병원에 계시는 동안에는 (건강하리라는) 믿음이 있었는데 '회자정리'라는 말이 떠오른다"며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김 전 대통령이 정치인들에게 보내줬던 이른바 '민주멸치'에 대해서도 회고했다.

김 전 총리는 "여야 노나져(나눠져) 있는데, 멸치를 매년 보내주셔서 잘 먹었어요"라면서 "정치적인 찬반을 제쳐 놓고 '멸치가 한창 잡힐 때니 먹어보라'…"라며 고마움을 나타냈다.

김 전 총리는 소소한 개인 인연도 소개하고, 김 전 대통령의 부인 손명순 여사와 주변 인물들도 챙기는 모습을 보였다.

특히 현철씨에게 몇 번씩이나 "자당을 잘 챙겨달라"면서 손 여사의 건강을 걱정했다.

김 전 총리는 주변에서 건강을 묻자 김 전 대통령이 단식하던 최병렬 전 한나라당 대표에게 '밥 못먹으면 죽는다'고 했던 말을 언급하며 "밥먹으니까 이렇게 살아있다"고 웃음을 지었다.

김 전 총리는 "끝까지 아버지를 모시던 충신은 어디갔느냐"면서 퇴임 후 줄곧 보좌했던 김기수 전 비서관을 만나서는 참았던 울음을 끝내 터뜨렸다.

한 시간가량 빈소에 머문 김 전 총리는 나가는 길에 기자들의 쏟아지는 질문에 입을 꼭 다문 채 말없이 발끝을 바라보며 "고인의 명복을 빌 뿐입니다"라며 빠져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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