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자(수필가)

▲ 박영자(수필가)

거목이 쓰러졌다. 큰 별이 떨어진 것이다. 제 14대 대통령을 지낸 거산(巨山) 김영삼 전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국민들의 애석한 마음처럼 연일 비가 오락가락한다. 국장으로 5일장이니 내일이 장례식이다. 그 분이 가장 오래 머물렀던 국회의사당에서 영결식이 치러지고 국립서울현충원에 안장되면 그 한 생애가 마무리 되는 것이다.

 

  한 사람의 일생에 대한 평가는 관 뚜껑을 닫은 후에 나온다고 하듯이 참으로 그 분의 공과((功過)에 대한 말들이 많고도 많다. 누구의 삶이든 잘 한 일과 잘 못한 일이 있게 마련이지만 대통령이라는 막중한 자리에 앉았던 분이요, 9선의원에다 26세의 최연소 국회의원이라는 기록을 세운 크나큰 정치인이었으니 더 말해 무엇 하랴.

 

  이제 와서 그분의 공과를 들추어낸들 무엇 하며 재평가 한다고 해서 그것이 후세에 얼마나 영향을 미칠 것인지 모르겠지만, 1927년 거제도 작은 섬에서 나서 88세까지 살면서 평생 나라를 위해 일했으며, 민주화를 위해 투쟁한 분인 것만은 확실한 그분의 공(功)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의 말씀 중에 가장 많이 회자 되는 ‘닭의 목을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말은 직설적이면서도 상징적이다. 정부에 비판적인 인터뷰를 했다는 이유로 의원직에서 제명되면서 어떤 방해와 난관 속에서도 민주화는 꼭 이루어질 것이라는 신념에 찬 한 마디였다. 참으로 명언이며 인상 깊은 말이다.

 

  그분의 호는 거산(巨山)이니 큰 산처럼 묵직하고 흔들림 없는 대틀을 원했던 것일 테고, 좌우명은 ‘대도무문(大道無門)’으로 자주 썼던 말이다. ‘모든 일에 정당하다면 거리낄 게 없고 큰 길엔 아무런 막힘이 없다.’ 라는 의미로, 언론 인터뷰에서도 이 말을 거론하며 “정직하게 나가면 문은 열린다. 권모술수나 속임수가 잠시 통할지는 몰라도 결국은 정직함이 이긴다.”고 했으니 거짓말은 못하는 분이었던 것 같다.

 

  1973년 김대중 납치 사건 진상규명을 촉구할 때는 “한국에는 통치가 있을 뿐 정치가 없다. 정치가 없는 곳에 민주주의는 없다”고 말했다.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일에 목숨을 걸었던 분다운 말씀이다. 말은 그 사람의 마음이며 정신이니 말 한 사람의 사상과 철학을 엿볼 수 있는 것이다.

 

  1990년 1월 제2야당인 통일민주당을 이끌던 YS는 3당 합당을 통해 민주자유당을 출범시켰다. 이를 놓고 야합이라는 비판도 있었지만, YS는 오히려 “호랑이를 잡기 위해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했다. 10년 뒤인 1983년 5·18민주화운동 3주기 단식농성 때는 23일간의 단식을 하며 “나를 해외로 보낼 수 없는 것은 아니다. 나를 시체로 만든 뒤 해외로 부치면 된다.”고 일갈하기도 했다.

 

 


  대통령이 되어서 개혁과정에서도 그의 말은 거칠면서도 가감이 없는 단답형이었다. 취임 직후 하나회 척결과정에 비판이 제기되자 “개가 짖어도 기차는 달릴 수밖에 없다”고 일축했다. 1995년 한·중 정상회담 후 회견에서 일본 정치인들의 망언에 “버르장머리를 고쳐놓겠다” 고 했으니 다소 거친듯하면서도 막혀있던 체증이 내려가는 것처럼 속 시원한 한 마디였다.

 

  대통령으로서 마지막 한마디는 역시 씁쓸했다. 다사다난했던 집권 기간을 거친 정치인의 고뇌가 고스란히 묻어나는 한 마디였다.  “영광의 시간은 짧았지만, 고통과 고뇌의 시간은 길었습니다.” 1998년 2월24일, 대통령 퇴임사에서 한 말씀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굴곡진 현대사에서 맞닥뜨린 위기의 순간마다 인상적인 한마디를 남겼다. 독재정권의 억압에도, 민주화 동지들의 비판에도 늘 정면 돌파하며 남긴 한 마디는  직설적이고 함축적이었다.


 그분은 유언처럼 메시지를 남겼다. “통합과 화합” 이라는 귀한 말씀이다. 이 시대가 절실하게 요구하는 가장 요긴한 다섯 글자다. 이것을 어떻게 실천하고 실현하느냐가 우리에게 남겨진 큰 과제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5남매를 키워낸 훌륭한 아버지였으며 아내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애처가였다. 2011년 결혼 60주년인 회혼 식에서는 손 여사에게 “그동안 참 고마웠소. 사랑하오.” 라고 말하며 공개입맞춤을 하기도 했고, 그 분의 자택에서 “충성!”이라는 고함소리가 자주 들렸는데 부인을 향한 애정표현이었다는 것이다. 대통령이면서도 누구와 다르지 않은 이웃집 아저씨였던 그 분의 빛나는 생애를 기리며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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