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전남 해남. 그곳에 있는 ‘시골법원’이 대한민국 사법사에 기록될 이정표를 세웠다. 광주지방법원 해남지원(지원장 최창훈)이 최근 일명 ‘김신혜 사건’에 대해 경찰의 직무상 범죄가 인정된다며 재심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법원은 사건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 심리해 유·무죄를 판단하게 된다.
그동안 시국사건 관련 재심은 여러차례 있었지만 형사사건, 그것도 무기수로 복역중인 사람에 대한 재심결정은 이번이 처음이다.
우리가 이번 재심결정에 주목하는 것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는 헌법 제11조의 존재를 해남법원이 새삼 일깨워줬다는 점이다. 대법원 확정판결까지 난 사건을 하급법원에서 다시 재판하도록 한다는 것은 용기없이는 불가능한, 사법부 혁명이나 다름없다. 무게와 권위가 엄존한 확정판결을 뒤집다는 것 자체가 그간의 수사기관과 사법부의 결정을 통째로 부정하는 것이어서 그렇다. 하지만 확정판결도 국민의 자유와 권리보호에 이바지 하기 위한 수단이고, 그 과정에 잘못이 있으면 바로 잡는 건 상식이다. 특히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보호할 의무를 저버리고 한 인간의 존엄성을 15년간 박탈하고 짓밟았다면 더 말할 나위 없다. 자신들의 권위만을 생각해 “15년동안 내게는 국가가 없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라는 김씨의 한맺힌 절규를 외면해선 안된다.
김신혜 사건은 2000년 3월 김 씨의 아버지가 완도의 한 버스승강장에서 사망한 채 발견되면서 시작됐다. 완도경찰서는 사건발생 다음날 “첫째 딸 김신혜가 보험금을 노리고 수면제를 탄 술을 아버지에게 먹여 살해했다”며 김씨를 긴급 체포했다.
하지만 완도경찰서는 수면제, 술병, 술잔 등 김씨의 범행을 입증할 만한 물적 증거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 심지어 수사경찰은 경찰이 아닌 자신의 군대 동기와 함께 김씨의 서울 집을 불법수색한 뒤에도 동료 경찰이 압수수색에 참여한 것처럼 허위 공문서를 작성했다.
또 김씨가 현장검증을 거부했음에도 경찰이 이를 강제로 재연시키는 등의 강압 수사도 드러났다.
법원이 지적한 경찰의 문제 행위는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허위공문서작성에 해당하며 이는 형사소송법 제420조 7항에 따라 재심사유에 해당된다,
김씨는 당시 수사 및 재판과정에서 “나는 아버지를 죽이지 않았다”며 “경찰에게 폭행을 당하는 등 강압수사를 받았다”고 무죄를 주장해 왔다. 현재 김씨는 무기징역형을 받아 청주교도소에서 복역중이며 결백을 주장하며 노역을 거부한채 독방생활을 해 오고 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재심개시 사유가 경찰의 직무에 관한 죄 때문이고 김씨에게 무죄를 선고할 명백한 증가가 발견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형 집행 정지가 안됐다는 점이다, 따라서 김씨는 구속된 상태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
그러나 김씨 사건에 경찰 못지 않은 책임이 있는 검찰이 법원의 재심 결정에 대해 불복, 항고함으로써 재심지연 등 차질이 우려된다. ‘김신혜 사건’에 자유롭지 못한 수사기관과 상급법원이 재심을 방해하고 사건을 덮으려 한다면 국민들은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법원은 검찰의 항고를 하루빨리 처리하고 김씨 사건 재심을 조속히 개시해 한 인간의 삶을 회복시켜야 한다. 그게 헌법 11조를 존중하고 실천하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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