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스 결단 정치 불가능…"대화하고 화합하고 조정하는 리더십 필요"

▲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 영결식을 하루 앞둔 25일 국회 본관 앞에서 관계자들이 운구차량 점검 등 행사 사전 준비를 하고 있다.

상도동·동교동 계보, 1인보스 중심의 '영수 정치' 시대 상징

카리스마 정치 시대 저물며 '불가측 대결 정치' 또 다른 폐해

친이·친박, 친박·비박, 친노·비노, 친문·비문…이해중심 다른 특징

 

"현실 정치가 존재하는 한 계파는 사라지지 않는다." 정치권에서 진리로 통하는 금언이다.

한국현대사에서 계파 정치는 일본식 파벌 정치가 유입돼 군사독재 시절을 거치며 변형된 산물이라는 게 정설이다. 독재 정권에 맞서려면 1인 보스의 강력한 리더십을 바탕으로 구축된 정파가 필요했기 때문에 계파 정치가 쉽게 뿌리내렸다.

●민주화 투쟁 공통목표, '경쟁과 협력'…보스정치의 폐해도 = 김영삼(YS) 전 대통령의 서거로 다시 주목받는 상도동계와 김대중(DJ) 전 대통령의 동교동계가 대표적이다.

양대 계파는 경쟁과 협력을 통해 민주화에 기여했지만 보스 정치라는 폐해도 함께 남겼다.

'가신(家臣) 그룹'이라는 상도동·동교동계 후예들을 가르키는 표현이 상징하 듯 '주군(主君)'을 정점으로 하는 계보내 엄격한 위계질서는 그들이 타도 대상으로 삼았던 군사문화질서 못지않은 경직되고 비민주적인 정치 행태도 보였다.

파벌·지역 구도 타파를 기치로 내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집권 이전까지 오랜 기간 한국 정치를 이끌어온 이 양대 계파는 1인 보스 체제인 만큼 효율성과 정치력 면에서 큰 위력을 발휘했다.

●정치자금·공천권 독점…'영수 정치'의 시대 = 양측의 구성원들이 극한 대립을 하다가도 보스 간 대좌가 이뤄지면 언제 그랬느냐는 듯 타협과 화해가 가능했다.

국회에서도 도저히 접점을 찾기 어려운 쟁점이 계파 보스 간 만남, 이른바 '영수(領袖·여러 사람 가운데 우두머리를 뜻하는 말) 회담'을 통해 거짓말처럼 풀리는 사례가 많았다.

이는 보스끼리만 이해가 맞으면 타협할 수 있었던 단순한 의사 결정 구조의 덕이 컸다. 1인 보스가 정치자금과 공천권을 독점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구성원들은 자신에게 손해를 보는 합의가 있더라도 불만을 제기하기 어려웠다.

또 군사독재 정권의 타도와 민주화 쟁취라는 공동의 목표도 항상 계파 간 갈등 해결의 마중물이 돼 줬다.

민주화 투쟁이라는 공동선은 계파를 정치적 이해로만 모인 '2차 집단'이 아닌 가족과 같은 '1차 집단'처럼 움직이게도 했다.'

●친소 관계 기준으로 형성된 새로운 계보 = 하지만 '양김'이 현실정치에서 퇴장한 이후 나타난 정치 계보는 상도동계·동교동계와는 그 형성 과정이나 특질을 달리한다.

지난 2007년 대통령 후보 경선과정에서 한나라당에서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라는 말이 탄생했고, 박근혜 정부 출범이후 여권에서는 친박, 비박(비박근혜)계라는 용어가 자리잡았다.

또 지금의 야당에서는 노무현 정부 이후 친노(친노무현)-비노(비노무현)계라는 말이 등장했고, 문재인 대표 체제 출범이후에는 친문(친문재인)-비문(비문재인)계가 당내 세력을 드러내는 계보로 형성됐다.

모두 전·현직 대통령과의 거리나 정치적 노선의 차이를 기준으로 명명된 세력이다.

6월 항쟁 이후 이른바 '87년 체제'를 통해 절차적 민주주의가 정착된 지금은 과거 상도동계·동교동계처럼 계파 간 공동의 목표도 희박하고 공천권과 자금을 독점한 계파의 보스도 없다.

비박, 비노라는 명칭에서 보듯 특정한 리더가 없는데도 주류 세력에 맞서려는 목적으로 자생한 '무정형'의 계파도 있다.

●정치적 이해 중심 이합집산…'카리스마 정치' 저물다 = 이처럼 현재의 계파는 하나의 이념이나 가치를 지향하기보다는 당내 인사 문제와 공천 등 실질적 이해를 중심으로 형성되고 있다.

다만 공천 문제처럼 개인의 이해가 민감하게 충돌하는 이슈는 계파 내에서도 정리되기 어려울 때가 적지 않다는 점도 특성이다.

1인 보스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사라지고 계보내 위계질서도 이완됐지만, 역설적으로 과거보다 계파 간 대립은 더욱 심화되고 정치의 예측 가능성은 더욱 좁아졌다는 지적이 나온다.

강력한 보스의 부재와 다양한 이해관계는 갈등 상황을 해결할 통로나 수단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민주적 무정부 사태'라는 진단도 나오고 있다.'

●"결론 못 내리는 정치권…'화합과 조정' 과제" = '양김 시대', 그리고 명실상부한 '계보 정치'의 퇴장으로 새로운 정치 리더십을 필요로 하는 시대를 맞았다는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과거 '민주 vs 반민주' 구도에서는 강력한 리더십의 출현이 필연적이었고 그 과정에서 탄생했던게 YS와 DJ, 상도동계와 동교동계였다면, 절차적 민주주의가 해결되고 실질적 민주주의를 추구해야 할 새로운 시대에는 화합과 조정을 통해 권위를 확보하는 리더와 지지 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상도동계의 마지막 세대인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는 "과거엔 민주 대 반민주 구도였기 때문에 민주 세력도 일사불란해야 했다"면서 "(계파의) 지도자에게 결정권과 협상권을 다 위임하고 따라야 했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그 당시가 꼭 좋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은 정치권이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국회도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동교동계인 김옥두 전 의원은 "우리는 의리로 뭉쳤고 충심으로 한 분을 모셔서 독재 정권에 승리하다는 마음뿐이었다"면서 "지금의 계파는 의리도 없고 정치를 하는 것도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김 전 의원은 "과거 YS·DJ 두 분은 민주화를 위해 협력도 했는데, 지금 정치는 그런 게 없다"면서 "오로지 자기 이익을 위해 국회의원을 하려는 모습"이라고 덧붙였다.

●정치 낭만의 시대는 갔다…소통의 부재 극복해야" = 과거 공동의 목표가 있었던 계파 정치 시절엔 적어도 무대 뒤에서만큼은 싸움을 멈추고 어울리는 '낭만'이 있었지만, 지금은 계파가 다르면 어울리지도 않는다는 지적도 적지 않게 나왔다.

동교동계인 이훈평 전 의원은 연합뉴스와의 통화에서 "지금의 친박·비박, 친노·비노는 낭만이 없다"면서 "우리 때는 민주주의, 군정 종식이라는 큰 전제가 있었기에 상도동과 동교동이 경쟁할 때는 경쟁하더라도 개인적으로 만나면 소주도 먹고 서로 허물없이 지냈다"고 말했다.

한 상도동계 인사는 "과거에는 참모들끼리 계파 보스끼리 잘 지낼 수 있도록 물밑에서 끊임없이 대화를 했는데, 지금은 그런 게 단절되고 소통이 없다는 점이 다르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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