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원(논설위원 /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 신기원(논설위원 / 신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

그동안 정치권에서 여·야간에 보여준 험악한 꼴이나 지난 14일 서울 도심에서 열린 집회시위에서 경찰이 구급차에 물대포를 쏘는 장면들을 바라보면서, 우리 사회에 실재하고 있는 권위주의현상과 바람직한 권위에 대해 생각해 본다. 전자가 행태나 과정과 관련된 것으로 다소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면, 후자는 내용과 관련된 것으로 사회통합 및 발전을 위해 반드시 갖추어야 할 요소이다.
 행정학에서는 권위주의(authoritarianism)란 ‘위계질서와 지배?복종의 관계를 중요시하는 문화적 정향’을 일컫는다. 즉 각 개인의 권력?지위?신분?연령?금력이나 선후배 관계 등의 차이를 중심으로 상하간의 계층적 인간관계를 순리로 받아들이는 성향을 말한다. 권위주의적 조직풍토에서는 계서적 권위를 통한 강제적 권위에 의해서만 조직의 효율성이 제고될 수 있다는 관점에서 계서제적 질서의 강화와 상급자의 통솔력 및 지도력 강화가 강조된다. 권위주의적 풍토가 지배적인 사회에서는 권력?지위?연령 등을 무기로 힘있는 자의 논리가 일방적으로 강요되어 구성원들이 비합리적인 고통을 겪는 경우가 흔히 나타난다.
 이에 반해 권위(authority)란 권한과 유사한 개념으로 정당한 권력(legitimate power)을 의미한다. 여기서 ‘권력’이란 ‘타인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하며, ‘정당성’이란 ‘권력의 행사를 종속자가 수락한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권위’란 ‘상급자의 명령을 하급자가 이해하고 수용하여 자율적으로 따르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진정한 권위란 남이 세워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정당성을 갖출 때 자연스레 따라오는 법이다. 언뜻 보기에 조직사회에서 나타나는 대부분의 생활 속에 권위가 스며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내면을 들여다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보도되고 있는 ‘갑질 논란’도 사실은 권위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때때로 보도를 보면 재산이나 지위, 신분이나 권력 또는 돈을 배경으로 우월적인 관계를 차지하고 이를 통해서 비합리적이고 일방적 또는 강제적인 지시나 복종관계를 요구하는 행태들이 나타나는데 이러한 갑질의 배경에는 권위주의가 숨겨져 있다. TV를 통해서 종종 볼 수 있는 국정감사장의 꼴사나운 모습도 이러한 예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21세기를 흔히 지식정보사회라고 한다. 질서, 구조, 연속성, 위계질서를 중시하는 산업사회(analog period)와 달리 지식정보사회(digital period)에서는 속도, 기동성, 유연성, 도전성을 중시한다. 이처럼 산업사회와 지식정보사회에는 근본적인 패러다임(paradigm)의 차이가 존재한다. 세상이 바뀌면 살아가는 방식이 바뀌듯, 시대에 따라 사회문화도 변해야 한다. 그래야만 변화와 개혁이 질풍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현 세기에서 적응?발전할 수 있다. 창의성과 모험심 그리고 역사의 흐름을 읽는 통찰력과 전문적인 지식이 강조되는 지식정보사회에 시대와 동떨어진 권위주의의 유산을 전가의 보도 마냥 간직할 필요는 없다.
 지난 20세기에는 통제와 관여를 바탕으로 한 권위주의가 나름대로 성과를 가져왔다. 그러나 현 시대의 거역하기 어려운 요구는 구성원들의 합의와 협상 그리고 동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적 문화풍토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각 분야에 필요한 전문가들의 참다운 권위는 존중되어야 하지만, 각 분야의 권위주의는 21세기로 넘어오면서 청산하고 왔어야 했다. 
 어느새 가을의 끝자락에 와있다. 겨울이 오기 전에 필자가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마지막 남은 태풍이 있다면 그것이 우리 사회에 잔존해 있는 권위주의를 바다 한가운데로 쓸어가고, 그 자리에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와 존경을 받을 수 있는 도덕적 권위가 자리 잡는 것’이다. 하지만 역사교과서의 국정화논란과 이로 인한 사회적 파장을 보면 개인적 소망이 이루어지기는 어려울 것 같다. 역사 바로 세우기를 한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런 일들이 발생하는지 안타깝다. 민족의 화합과 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권위를 갖춘 지도자들을 그리며 옷깃을 여미는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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