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이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은 자신이 9선의 국회의원으로 활발하게 의정 활동을 했던 여의도 국회의사당에서 국가장으로 거행됐다. 담대했던 의회주의자의 마지막 가는 길엔 눈발이 날리는 추운 날씨에도 그의 부재를 슬퍼하는 많은 이들이 함께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는 그동안 3만6000명, 지자체에 마련된 분향소에는 18만명이 넘는  조문객이 김 전 대통령을 추모했다. 서거에서 장례까지 5일간 온 국민은 한마음으로 대한민국의 민주화에 큰 자취를 남긴 고인을 애도하며 분향했다.
김 전 대통령의 장례기간은 국민적 화합의 한마당이었다. 영결식에서는 고인의 평생 애창곡 '청산에 살리라'가 울려 퍼졌다. 노랫말 '청산'은 번뇌와 시름없는 평화를 뜻한다고 한다. 고인이 희구했던 '청산'을 이 땅에 실현할 책무는 이제 후인들의 몫이 됐다.
애도 기간을 통해 새삼스럽게 확인한 것은 한국 정치가 이대로는 안 된다는 사실이었다. 국론을 모으고, 시대의 소명에 부응할 수 있는 혁신적인 리더십이 절실하다는 것을 일깨웠다. 김 전 대통령은 먼저 세상을 뜬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암울한 권위주의 시대에 '민주화'라는 희망의 횃불을 들어 올려 국민을 인도했지만, 이 시대의 정치인들은 아직도 국민이 믿고 따를 수 있는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양 김'은 싸우면서 협력하고 타협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요즘 정치권은 소모적인 갈등의 확대 재생산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단한 삶에 지친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져야 할 정치가 오히려 부담과 걱정을 안겨주고 있다.
민주화를 쟁취한 지 30년, 대통령을 지낸 양 김 시대 이후 10여 년이 흘렀건만 아직도 정치권은 지역, 계파, 민주와 반민주의 낡은 구도를 깨지 못하고 있다. 작은 싸움에 골몰하느라 시대의 난제들을 극복하고 통일시대를 열어갈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치에 대한 국민 기대치는 갈수록 낮아지고 불신과 염증이 커지고 있다.
김 전 대통령이 남긴 메시지는 분명하다. 그의 유훈은 대결과 투쟁이 아닌 통합과 화합이었다. 국민의 더 나은 삶을 위해 정치권이 싸울 땐 싸워야 하지만 그것이 증오나 분열로 흘러서는 안 되며 포용력을 발휘해 대화와 타협으로 문제를 해결하라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저출산 고령화, 청년실업과 양극화, 수출 부진과 제조업의 활력 상실 등 수많은 도전에 직면해 있다. 난국 타개를 위해 국민적 지혜를 모으고 정부와 정치권이 손발을 맞춰야 할 때다.
정부는 경제 활성화를 위한 각종 민생 법안과 노동 개혁법안,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 등을 국회에 제출해 놓고 있지만, 정쟁에 밀려 이들 법안은 제대로 논의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민은 정치인들이 길거리로 나서거나 삿대질하는 흉한 모습 대신 예산안이나 각종 법안, 정책을 놓고 밤을 새워 치열하게 토론하고 결론을 내는 감동적인 장면을 보고 싶어 한다. 해야 할 일을 미루지 않고, 맺고 끊는 것이 확실했던 김 전 대통령의 결단의 리더십이 아쉽다.
이제 김 전 대통령이 그토록 염원한 평화롭고 자유롭게 번영하는 나라를 건설하고, 이념과 종교, 지역과 계층의 차이를 뛰어넘어 통합의 시대를 열어나가는데 국민의 역량과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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