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 박희팔(논설위원/소설가)

 양달 집 외아들은 그래도 중학교까진 나왔는데 무식쟁이다. 본디 성질이 괄괄해서인지 하는 소리마다 무식한 소리를 내고, 얼굴이, 보는 이마다 하는 소리로 우락부락하고 소도둑마냥 생겨서인지 한다는 짓거리도 그에  못지않게 가리질 못한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마음 씀씀이나 생김새가 똑같은 놈’ 이라는 것이다. “왜들 이렇게 내 승질머리하구 꼬락서니를 나무랴. 이게 내가 자청해서 된겨 우리 엄니 아부지가 이렇게 만든 거지. 그리구 날 나무래는 여깄는 동네사람들두 이런 나를 만드는 데 한 다리 걸친겨. 우리 엄니 아부지 혼인할 때 국수 안 먹은 사람 있어 또 우리 엄니 아부지 첫날밤 때 떼로 몰려 창호지 문구녕 뚫구 킥킥대며 구경 안한 사람 있어. 그때 내가 만들어졌단 말여. 그때 나 잘 만들라구 이쁘게 만들라구 빌어준 사람 있어 축수해준 사람 있어. 창호지 문구멍은 왜 뚫구 재밌다구 킥킥대며 구경은 왜 했어. 그러니까 내가 요 모양 요 꼴루 나왔지 에잇!” 그는 작정하고 동네총회 하는 날 온 동네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그간 꿍쳐놓았던 마음을 욱하는 소리로 내뱉고는 휙 나가버리는 거였다. “저 저 저 무식한 놈 말본새 보게. 저게, 저게 시방 여기서 할 소리여!” 이때 늙수그레한 구 면장이 점잖게 한마디 한다. “그렇긴 하네만 그 내용을 잘 새겨보게 다 틀린 말은 아니잖여.” “그렇기는 하구먼. 억지가 있어 보이기는 하지만 제 뜻을 내보이는 솜씨는 있어.” “ 그려, 그려 ‘억지를 써서 일을 해내는 솜씨’, 이러는 걸 옛 어른들은 ‘억짓손’이라고 했어. 저 놈이 억짓손이구먼!”
 이 억짓손이가 장가들 때가 돼서 동네서 20여리 밖 타동네 처자를 색시로 데려왔는데 그 과정의 이야기가 가관이다. 그 처자는 인물 반반하기로 소문이 나 있었다. “지가 안 오구 배겨. 무조건 나오라구 해서 다짜고짜루 내 색시 되라구 했지. 빤히 쳐다보드라구. 그래서 인상을 더 험악하게 썼지. 그랬더니 피식 웃드라구. 그래서 틀린 것 같아서 이거 안 되겄구나 해서 ‘나랑 살믄 나같은 얼굴 애 안 나올껴 너같은 이쁜 애 나오지 안 그려 그리구 이 내 팔뚝 좀 봐바 이 억센 팔뚝으루 너 보호해줄껴. 우리 엄니 아부지 열심히 농삿일 하구 나 열심히 도와서 잘 살어 야, 너 고생 안 시킬껴. 하여간 내 할 말은 다 했응께 그렇게 알구 낼 모레 니 부모님 찾아보구 인사드릴 테니까 그리 알어!’ 했더니 또 피식 웃곤 가더라구. 그래서 이틀 후에 가서 인살 했는데 아무 말도 안 물어보구 그 딸처럼 장인 장모 될 사람들도 그냥 피식 웃더니만 알았다는 말만 하더라구. 그리군 연락와서 하게 된 거야. 이게 다야. 결혼하기 쉽드라구.” 하는 거였다. “참, 억짓손은 억짓손이야.” 하고 동네사람들은 허 허 허 웃었다.
 시집에 온 새댁은 인물만큼이나 만만치 않았다. 성질이 끈질기고 단단한 사람이다. 처음에 억짓손이가 무식하게 억지를 부리며 단도직입적으로 ‘내 색시 되라’고 했을 때 거기서 그의 용기를 보았고, 험악한 인상을 보이며 ‘너 같은 이쁜 애 나올 거’라고 했을 때 그의 천진함을 보았으며 울룩불룩 핏줄 선 팔뚝을 보였을 땐 집과 식구를 떠받치는 기둥 같이 보였었다. 그래서 새댁은 그에게 마음을 준 것이고 그에게 시집와선 그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줄이고자 끈질기고 단단하게 억척을 부렸다. “당신 불끈하는 성질만 쪼끔 아주 쪼끔만 다스리면 내 일등신랑 될 텐데.” “그 망설이지 않고 확확 내뱉는 것 같은 말투만 쪼끔 아주 쪼끔만 고치면 듣는 사람이 아주 기분 좋아 할 텐데.” “당신 얼굴 누가 우락부락 험상궂다고 해. 그 얼굴에 쪼끔 아주 쪼끔만 미소 지으면 누가 보아도 아주 인자하고 성실한 사람 같이 보일 텐데!” 또 동네사람들에겐 “우리 신랑 보시거든 요새 성질 많이 누그러진 것 같다구  쪼끔만 아주 쪼끔만 칭찬해 주셔유.” “우리 신랑 말투가 그간 사근사근해졌다구 쪼끔만 아주 쪼끔만 말씀해 주셔유.” “우리 신랑 얼굴에 화기가 돌지유. 쪼끔만 아주 쪼끔만 당사자한테 그렇다구 해 주셔유.” 이러기를 볼 때마다 만날 때마다 이러니 이 ‘쪼끔만 아주 쪼끔만’이 모이고 쌓이어 ‘많이, 많이’로 억짓손이가 달라져가고 있는 거였다. 이걸 보고 억짓손이라 이름붙인 동네 늙수그레한 사람이, “저렇게 억짓손이 안 사람 같이 억척스럽고 끈질기고 단단한 사람을 옛날어른들이 ‘억척보두’ 라 했느니 외양으로만 보기엔 어디 둘이 어울린다고 보겠는가. 허 허 허!” 하고 감탄을 한다.
 이 둘은 딸 둘을 낳았는데 이 두 딸들은 둘 다 외양은 엄마 닮아 예쁘장하고 기질은 아빠 닮아 자기표현에 서슴지 않고 거짓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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