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마 눈사람과 앨빈

내가 하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세상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는 이야기니까요. 
그날은 여덟 살 내 생일이 막 지난, 겨울이었어요. 크리스마스이브이기도 했죠. 왕창 눈이 내렸고 엄청 추웠어요. 
나는 우리 집 대문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빈 집에 혼자 있는 건 정말이지 심심했거든요. 엄마는 큰 회사에 다녔어요. 엄마는 일을 잘해 점점 높은 사람이 되었어요. 그럴수록 엄마는 더욱 바빠졌죠. 크리스마스이브에도 회사에 나가야 할 만큼이요. 
나도 덩달아 바빠졌어요. 학원을 다섯 군데 다녀오면 엄마를 만날 수 있었죠. 그 날은 크리스마스이브라서 모든 학원이 문을 닫았어요. 크리스마스이브에도 문을 여는 학원은 없을까요? 학원에 가서 공부하는 건 싫지만 그곳에 가면 친구가 있거든요. 
엄마는 자주 나에게 이런 말을 했어요. 
“사랑하는 딸, 너에게 아빠를 빼앗은 것은 정말 미안하구나. 하지만 남편 없이 아이를 키우는 엄마도 좀 이해해주렴. 널 위해서란다. 너에게 피아노를 가르치고 싶고 너에게 좋은 옷과 음식을 주기 위해서란다.”
그럴 때면 엄마 눈에서 금방이라도 눈물이 쏟아질 것만 같았죠. 난 입을 꽉 다문 채 고개만 끄덕였어요. 엄마 눈에서 눈물이 쏟아지는 모습은 보고 싶지 않았거든요. 
난 꼬마 눈사람이 되고 싶었어요. 친구들이 놀러와 꼬마 눈사람과 놀아주길 바라면서 말이죠. 그래서 눈이 내리는 대로 다 맞았어요. 우산을 쓰지도 않았고 눈을 털어내지도 않았어요. 내 몸은 온통 하얀 눈으로 덮였어요. 난 정말 꼬마 눈사람이 된 것 같아 신이 났어요. 추운 것도 모를 정도로 말이죠.
다들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러 간 걸까요? 집 밖으로 나와 노는 아이들은 하나도 없었어요. 크리스마스이브에 혼자 놀고 있는 꼬마 눈사람이라니. 아무리 기다려도 친구들은 오지 않았어요. 가끔 부릉, 붕붕 자동차 소리가 들릴 뿐이었어요. 
 나는 꽁꽁 언 손을 호호 불어가며 며칠 전 산타할아버지께 쓴 편지를 생각했어요. 받을 수 없는 선물을 쓴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거든요. 
우리 반 아이들은 다들 어떤 선물을 받게 될까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어요. 수지는 인형의 집을 받고 싶다고 했고 준우는 동물 책을 받고 싶다고 했어요. 아이들은 대부분 장난감을 갖고 싶어 했어요. 하지만 난 아니었어요.
‘나는 크리스마스 선물로 친구를 갖고 싶어.’
아이들 앞에서는 말하지 않았어요.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을까 걱정되었거든요. 
그때였어요. 
“너였구나? 우리 캡틴 산타를 고민에 빠뜨린 아이가.”
난 화들짝 놀라 발라당 넘어져 엉덩방아를 찧었어요. 우리 집 건너편 담장위에 빨간 산타 옷을 입은 아이가 앉아있었거든요. 
“누, 누구……….”
“누구긴. 네 선물이잖아. 난 산타마을에서 온 산타수련생이야. 앨빈.”
아. 믿지 못하겠다는 그 눈빛은 제발. 산타마을에서 산타가 되기 위해 수련하고 있는 아이가 있다는 걸 어떻게 믿느냐고요? 심지어 그 꼬마 산타를 직접 만나기까지 했다는 건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요? 믿게 될 거예요. 그건 정말, 정말 사실이니까요. 
앨빈은 담장에서 펄쩍 뛰어 내려 나를 일으켜 줬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말했죠.
“완전 꼬마눈사람이잖아.” 
앨빈은 눈으로 뒤덮인 내 머리와 어깨를 털어주었어요. 정말 친절한 아이였죠.
“에이, 이렇게 추운 날 장갑도 없이 맨 손이야?”  
앨빈은 매고 있던 산타가방을 주섬주섬 뒤적이더니 빨간 장갑을 꺼냈어요. 
“산타 수련생들이 쓰는 장갑이야. 헤헤. 하나 더 가져오길 잘했네.”
앨빈은 얼어있는 내 손을 호호 불고는 빨간 장갑을 끼워주었어요. 나는 부끄러워 고개를 푹 숙였어요. 뻣뻣하게 굳어있던 내 손이 녹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따듯했는지 몰라요. 그 장갑은 지금도 내 보물 1호예요. 
앨빈은 산타가방을 다시 뒤지기 시작했어요. 이번에는 푹신한 방석과 담요를 꺼냈어요. 앨빈은 내 손을 잡고 펄쩍 뛰어 아까 그 담장위로 올라앉았어요. 내 몸이 붕 떠오르자 나는 그만 꺅 소리를 지르고 말았어요. 엉덩이 밑에 방석을 깔고 앨빈과 함께 담요를 덮었어요. 나는 부끄러워 푹 숙이고 있던 고개를 슬쩍 들어보았죠. 
항상 대문 앞에 앉아 땅바닥만 보다가 높은 담장위에 올라오니 절로 입이 벌어졌어요. 하얀 눈으로 뒤덮인 반짝거리는 세상에 눈이 부셨어요. 심장이 마구 내 가슴을 두드렸어요. 나도 모르게 “야호!”라고 소리를 질렀지 뭐예요. 앨빈은 큭큭 웃었어요. 나도 따라 크크 웃었어요. 
“네 선물이 되길 잘 한 것 같아.”
나는 앨빈의 말을 들으니 또 다시 부끄러워져 입을 꾹 다물었어요. 앨빈은 눈을 손바닥 가득 올려놓더니 내 얼굴에 후-하고 불었어요. 흩날리는 눈송이가 내 얼굴에 닿았어요. 그 순간 참지 못하고 또 까르르 웃어버렸어요. 나도 앨빈처럼 똑같이 해보았어요. 우리는 서로서로 더 많은 눈송이를 날리기 위해 계속 후-후-거렸죠. 눈 덮인 조용한 동네가 우리 웃음소리로 가득했어요. 
‘징글벨, 징글벨’ 
앨빈의 전화벨 소리였어요. 
“넵! 캡틴산타. 네.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죄송합니다. 놀다보니 보고하는 걸 잊었습니다.”
앨빈은 허리를 쫙 펴더니 큰소리로 씩씩하게 말했어요. 마치 군인아저씨 같았어요. 전화를 끊고 앨빈은 캡틴 산타에 대해 이야기를 들려주었어요.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던 어느 날, 캡틴산타는 걱정 가득한 얼굴로 밥도 먹지 못하고 있었대요. 알고 보니 그건 바로 내 편지 때문이었죠. 
“허허, 친구를 선물로 받고 싶다니.”
그 순간 앨빈은 캡틴산타와 눈이 딱 마주쳤대요. 
“옳지! 산타마을에서 여덟 살 꼬마산타는 바로 너뿐이구나.”
“캐, 캡틴. 설마 저, 저를.”
앨빈은 태어나서 산타마을을 한 번도 벗어나 본적이 없었대요. 앨빈은 생각보다 겁이 많은 아이였어요. 하지만 내 편지를 읽어보고는 결심을 했대요. 정말, 정말 큰 결심이었다고 했어요. 
“내가……. 불쌍해서?” 
나는 고개를 푹 숙인 채 기어들어가는 소리로 말했어요. 나는 산타에게 보내는 편지에 내가 얼마나 심심하고 외롭고 쓸쓸한지에 대해 가득 썼거든요. 
“뭐? 아니, 아니!” 
그때 강아지 멍돌이와 멍돌이 할머니가 대문을 열고 나왔어요. 멍돌이는 담장 위 우릴 보고 꼬리를 흔들며 짖어댔어요. 멍돌이 할머니는 깜짝 놀란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죠. 
“세상에. 거긴 어떻게 올라간 거니. 혼자서 이 추운 날 뭘 하고 있는 게야. 어서 내려오렴.” 
멍돌이 할머니는 두 팔을 벌려 나를 안으려고 했지만 난 머리를 세차게 흔들었어요. 멍돌이 할머니는 흥분한 멍돌이를 진정시키고 나서 혀를 끌끌 차며 가던 길을 갔어요. 
“앨빈, 멍돌이 할머니는 네가 보이지 않나봐.”
“당연해. 멍돌이 할머니는 산타를 믿지 않거든. 산타를 믿어야 산타를 볼 수 있어. 산타를 믿어야 산타의 선물도 받을 수 있고.”
앨빈은 계속해서 산타마을에 대해 들려주었어요. 편지 담당, 선물 담당, 루돌프 담당, 캡틴산타 보조 등 각자 맡은 임무가 나뉘어져 있다고 했어요. 앨빈은 바로 편지 담당이었죠. 편지담당을 하다보면 슬픈 일들이 많다고 했어요. 
지난 번 크리스마스에는 이미 세상을 떠난 엄마를 선물로 받고 싶어 하는 아이가 있었대요. 산타마을의 산타들이 모두 모여 회의를 할 정도로 심각했다고 했어요. 결국 산타마을에서는 천국의 문을 두드렸대요. 소식을 들은 아이 엄마는 눈물을 흘리며 대신 엄마의 편지를 선물로 보내달라고 했대요. 
“앨빈, 그 아이가 실망하지 않았어?”
“아니. 전혀. 그 아이는 편지를 읽고 또 읽고 잘 때도 안고 자면서 행복해 했어.”
그 아이를 만나보고 싶었어요. 난 엄마가 되어 주지는 못하지만 친구가 되어 줄 수는 있잖아요. 하지만 앨빈은 그 아이가 누군지 알려주지 않았죠. 그건 산타마을 일급비밀이래요. 
우리아빠는 산타를 믿을까요? 크리스마스가 다가올 때마다 고민에 빠져요. 아빠를 선물로 받고 싶다고 하면 산타가 아빠를 찾아갈 텐데 그때 아빠는 산타를 알아볼 수 있을까요? 
‘징글벨, 징글벨.’
앨빈의 전화벨 소리에요. 앨빈은 통화를 끝내고 이렇게 말했어요.
“날 부르는 전화야. 이제 그만 가야겠어.”
“벌써? 아직 놀지도 못했는데…….”
나는 울먹이며 앨빈의 얼굴을 봤어요. 앨빈은 따듯하게 웃고 있었어요. 
“곧 엄마가 오실거야.”
앨빈은 내 손을 잡고 담장에서 팔딱 뛰어 내렸어요. 내 몸은 담장을 올라올 때처럼 붕 뜨더니 어느새 땅으로 내려왔어요. 
우리는 하늘을 올려다봤어요. 구름 저 위로 썰매를 끄는 루돌프가 모습을 보였어요. 앨빈은 하늘을 향해 손을 흔들었죠. 
“꼬마눈사람, 내 이름 잊지 마. 우린 다시 만나게 될 거야.” 
루돌프가 끄는 썰매는 순식간에 앨빈 앞으로 왔어요. 바람이 불었어요. 눈이 휘날렸죠. 앨빈을 태운 썰매를 따라 눈길이 열렸어요. 난 눈이 부셔 눈을 뜰 수가 없었어요. 
내 두 손에는 여전히 빨간 장갑이 끼어있었어요. 앨빈은 그렇게 떠났어요. 
“딸! 추운데 여태 여기서 기다린 거야? 빨리 오려고 했는데…….”
엄마였어요. 앨빈의 말처럼 엄마는 금방 내게로 왔어요. 엄마의 두 손에는 선물 상자가 들려있었어요. 난 엄마를 와락 끌어안았죠. 엄마는 내 차가운 콧등에 입을 맞추고 빙긋 웃었어요. 엄마는 나를 번쩍 올려 안아주었어요. 나는 얼굴을 들어 하늘을 봤죠. 앨빈의 썰매가 지나간 눈길이 아직 그대로였어요. 
‘앨빈, 꼭 멋진 산타가 되길 바랄게.’ 
그날 이후 앨빈을 또 만났냐고요? 아니요. 
크리스마스이브 밤이면 그날 들었던 ‘징글벨, 징글벨’ 앨빈의 전화벨 소리가 울려 퍼져요. 나는 얼른 하늘을 올려다보고 두리번거리지만 썰매가 지나간 눈길을 보았을 뿐 앨빈은 만나지 못했어요. 하지만 믿어요. 앨빈은 멋진 산타가 되어 내 앞에 다시 나타날 거라는 걸.    
앨빈을 만난 뒤 알게 되었어요. 믿어야 한다는 걸요. 그게 무엇이든, 누구든! 
                                                     

 

 

■  동화  당선소감 /  이 복 순
글을 쓸 수 있게 도와주신 분들께 감사
 저는 어린 시절, 마음을 꺼내 보이지 못했습니다. 혼자라고 생각했습니다. 요즘말로 자존감이 바닥인 아이였던 모양입니다. 그런 저에게 책은 가족이었고 친구였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이야기를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어른이 된 저는 동화를 쓰기로 했습니다. 한겨울 꼬마눈사람이 되어 찬 손을 호호 불고 있을 아이들을 위해서요. 전 앞으로도 끊임없이 앨빈 같은 친구들을 꼬마눈사람에게 선물하려고 합니다. 더 이상 차가운 손을 호호불지 않아도 될 그런 따뜻한 이야기를요. 
 글을 쓰는 건 어차피 혼자 해야 하는 일이지만 혼자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합니다. 동화를 쓸 수 있게 도와주신 많은 분들, 어떻게 그 고마운 마음을 다 전할 수 있을까요. 
 한 마음으로 동화를 꿈꾸었던 어린이 도서관 동화모 선생님들, 먼 길 함께 가자고 말씀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금 이 씨앗이 언제고 싹을 틔울 것이라며 용기 북돋아주신 백은하 작가님 감사합니다. 넌 꼭 써야한다고, 무얼 믿고 저에게 그런 아낌없는 지지를 보내준 건지 모를 사랑하는 나의 친구들 눈물 나게 고맙습니다. 
쓰다가 막히면 두 아들에게 읽어주곤 했습니다. 아이들은 뒷이야기가 궁금하다며 빨리 쓰라고 재촉했습니다. 
전 그 재촉이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습니다. 나의 첫 독자가 되어 준 사랑하는 가족, 고맙습니다. 
동화를 쓰면서 행복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열리지도 않을 문을 홀로 두드리고 있는 건 아닌지 두려워졌습니다. 망설이고 뒷걸음질 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창작의 고통은 쓰고 있지 않을 때의 괴로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습니다. 이런 저를 알아봐 주시고 손잡아 주신 심사위원님과 동양일보 관계자 여러분께 진심을 다해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더욱 열심히 쓰는 것으로 많은 분들께 보답하겠습니다. 

 

● 1979년 충남 논산 출생.
● 쌘뽈여고 졸업. 
● 목원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 전 TV 구성작가(KBS ‘아침마당’, KBS TV ‘문화지대’, KBS ‘TV 책을 말하다’ 등 다수)

 

-동화 부문 심사평
동화적인 발상·차분한 문장 호감
하이덱거는 ‘문학은 사유를 통해 그 본질을 내세우며 언어예술의 본질은 진리의 증여’라고 정의하였다. 22회를 맞는 동양일보신인문학상이 작품의 양과 질적인 면에서 발전이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이번 동화는 응모편수가 전년도에 비해 두 배 가까이 늘어나 양적인 면에서 풍요로웠다. 소재 또한 다양해져서 동화의 탈경계를 보는 듯 했다. 그러나 동화를 심사하면서 늘 염려스러운 것은 동화 창작을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아닌가 하는 점이다. 이번 작품들 가운데도 문학적인 접근보다는 아이들을 소재로 한 소소한 생활소설 형태의 글이 대다수라서 아쉬웠다. 또 전체적으로 걸러지지 않은 성인용 단어와 오탈자가 많은 것도 지적사항이다. 
이 가운데 △‘초록색 편지’(송부선), △‘사슴공원을 뛰는 아이들’(이기범), △‘나는 요술쟁이’(이명숙), △‘되돌릴 수 있을까’(최미형), △‘꼬마 눈사람과 앨빈’(이복순). 5점을 최종심으로 올려놓고 정독을 하였다. 초록색 편지는 입원을 한 조카의 시각으로 병원의 모습과 이모와의 관계를 그린 따뜻한 동화였지만 내용이 너무 빈약한 것이 흠이었다. ‘사슴공원을 뛰는 아이들’은 해외여행을 떠나는 악동들의 재치있는 모습이 미소를 짓게 하는 작품이었으나 일상의 기록에 그친 감이 있었고, ‘나는 요술쟁이’는 산세베리아가 소이라는 소녀와 만나면서 우정을 나누게 되는 동화적인 발상의 자연스러운 작품이었으나 연결이 부자연스러운 부분들이 눈에 띄었다.
‘되돌릴 수 있을까’는 오줌을 싸고 등교한 주인공이 겪는 하루 일상과 엄마의 고마움을 적은 글로 표현력에 비해 소재가 단조로웠다. 마지막 작품인 ‘꼬마 눈사람과 앨빈’은 특별히 눈에 띄는 작품은 아니나 동화적인 발상과 주제를 일관되게 끌고나가는 힘이 엿보였다. 차분한 문장 역시 호감이 갔다. 새로운 작가의 등장을 축하하며 최종심에 오른 응모자들도 더욱 정진해 동심이 살아있는 동화를 쓰기를 기대한다.
■ 심사위원 : 유영선(동화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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