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각사 소장 능엄경에 남아 있어…번역 과정 보여주는 사료"

손으로 적은 가장 오래된 한글 글씨가 한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불교 경전에서 발견됐다.

문화체육관광부와 동국대의 지원을 받아 문헌 집성 작업을 하고 있는 동국대 불교학술원 ABC사업단은 경기도 고양 원각사(주지 정각 스님)에 있던 능엄경(楞嚴經) 권1,2에서 1461년 이전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한글 필사 글씨를 확인했다고 22일 밝혔다.

▲ 원각사(주지 정각 스님)에 있던 능엄경

현존하는 최고(最古)의 한글 글씨는 국보 제292호로 지정된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으로 1464년 발행됐다.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창제한 시기는 1443년 12월이다.

이 능엄경을 직접 보고 분석한 한국기술교육대 문리각 연구팀(정재영 교수, 안대현·하정수 연구원)은 "원각사 능엄경은 1401년 찍은 것으로 1461년 간행한 능엄경 언해의 저본(초고)"이라면서 한문을 우리말로 풀어 읽을 수 있도록 토를 붙여 표시한 '석독구결'(釋讀口訣)이 달려 있다고 설명했다.

1401년에 출간된 능엄경은 태조의 명으로 찍은 왕실본으로, 능엄경 경문(經文)에 계환 스님의 풀이를 더한 뒤 신총대사가 글씨를 써 제작했다. 국립중앙박물관과 통도사에 이때 만들어진 능엄경이 남아 있으며, 모두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후 1461년 세조와 신미대사의 교정을 거쳐 '능엄경 언해' 활자본을 교서관에서 발행했고, 이듬해 오자 등을 바로잡아 간경도감에서 목판본을 다시 찍었다.

정재영 교수는 원각사 능엄경에 대해 "능엄경 언해의 번역 사업에 이용된 것으로 보이는 묵서와 교정용 종이가 빼곡히 달려 있다"며 "경문과 풀이 부분에 붓글씨로 음차(音借·한자 음으로 우리말을 표기한 것)나 한글 구결을 달고, 여백에는 주석을 한문이나 한글로 적었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경문과 풀이 부분, 주석에 있는 한글은 능엄경 언해와 내용이 비슷하지만, 원각사 능엄경에는 한문으로 쓰인 부분이 언해본에는 한글로 돼 있는 점으로 미뤄 원각사 능엄경이 언해본보다 오래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강조했다.

▲ 손으로 적은 가장 오래된 한글 글씨가 한 사찰이 소장하고 있는 불교 경전 능엄경(楞嚴經) 에서 발견됐다.

이어 "원각사 능엄경의 필사본 서체와 능엄경 언해의 활자 서체가 유사하다"고 덧붙였다.

원각사 능엄경의 한글 글씨는 가느다란 붓을 이용해 초서체로 썼으며, 반치음(ㅿ)과 옛이응(ㆁ)이 남아 있는 점이 특징이다.

이번 조사에서는 1417년 전북 고창 문수사에서 간행한 '묘법연화경'(妙法蓮華經·법화경) 권1∼3과 권 4∼7도 확인됐다.

정 교수는 "문수사 법화경은 유일한 판본으로 조선 초기의 구결이 달려 있어 학문적 가치가 높다"고 말했다.

한국기술교육대 문리각 연구팀은 오는 23일 오후 동국대 불교학술원에서 이번 연구의 성과를 특강 형태로 공개한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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