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마을에 아들 셋을 둔 부부가 살았다. 아내가 시름시름 앓더니 신기(神氣)가 들었다. 신명나게 굿판을 쫓아다녔다. 남편은 아내가 들어오는 대로 작대기로 마구 때렸다. 아내는 남편 몰래 작두를 탔다. 손자 다섯 둘 때까지 남편과 아내의 쫓고 쫓기는 일이 계속되었다.
아내는 남편의 반대로 끝내 내림굿을 받지 못하였다. 집안은 허구한 날 싸움판이었다. 부부가 싸우고 부모와 자식이 싸우고 자식끼리 싸웠다. 손자들이 보고 자란 건 가족끼리 싸우는 모습과 서로 비난하는 말뿐이었다. 얼마 후 아버지가 밤중에 거리에서 비명횡사하였다.
그 후 몇 년 사이에 세 아들이 차례로 죽어갔다. 그리고 거짓말같이 세 며느리가 차례로 집을 나갔다. 할머니는 손자 다섯을 떠안고 단칸방에서 가난하게 살았다. 할머니가 죽자 손자들은 천지사방으로 흩어졌다.
‘아무리 끔찍한 죄를 지은 부모라도, 그 부모를 용서하지 않은 이가 번영하는 것을 나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다. 용서는 매우 어렵지만 대단히 중요한 우리 영혼에 대한 소명이다.’(헨리 크라우드/리더십 전문가)
살아남은 다섯 손자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말이다. 그러나 손자들이 조부모와 부모를 용서하기까지는 지난(至難)한 여정을 거쳐야 한다.
이들은 조부모와 부모로부터 증오심만을 유산으로 물려받았다.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경제적 도움도 받지 못하였다. 생각할수록 억울하고 분하여 원망하고 한탄할 거리만 가득하였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불구하고 손자들이 올바르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부모를 용서하고 조부모를 용서해야 가능해진다. 그렇지 못하면 자신들의 조부모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증오심으로 평생 마음의 감옥에 갇혀 살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손자들이 용서의 단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조부모의 갈등으로부터 부모의 갈등에 이르기까지 긴 고통의 원인을 살펴봐야 한다. 이 가정의 갈등의 원인이 되는 출발점은 할머니의 신내림이다. 신의 명령을 어긴 대가를 혹독하게 치러냈고 현재에도 그 영향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신을 거부한 할아버지가 죽고, 아버지 형제들이 죽었으며, 어머니들은 모두 그 집을 떠났다. 할아버지 세대와 아버지 세대와 손자 세대 삼대가 신벌(神罰)로 희생양이 되었음을 먼저 깨달아야 한다.
사랑의 신(神)이 있고 분열의 신(神)이 있다. 사랑의 신은 어버이 같은 마음을 가진 신이고 분열의 신은 어둠 속에서 암약하는 악의 씨를 뿌리는 신이다. 사랑의 신은 끝까지 기다리고 뉘우치게 하지만, 분열의 신은 끊임없이 싸움과 분열과 파괴를 노린다. 질투심과 시기심이 많아서 자신을 거역할 때는 반드시 해악을 끼친다. 교활하게 틈을 파고들어 각종 중독이나 음란에 빠지게 한다. 사람보다는 돈을 사랑하게 한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을 과거로 이끈다. 그리고 조상을 탓한다.
손자들이 할머니의 신을 이해한다면 조부모와 부모를 용서하는 실마리가 잡힐 것이다. 자신들의 가정을 파국으로 몰아넣은 신은 분열의 신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어둠을 어둠으로 물리칠 수 없듯이 분열의 신은 분열의 신으로 물리칠 수 없다. 어둠은 빛으로 물리치듯이 분열의 신은 사랑의 신으로 물리칠 수 있다. 자신들이 더 이상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 사랑의 신을 찾아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다.
신에 대한 이해가 용서의 출발점이라면, 조부모와 부모에 대한 ‘연민’은 용서 여행의 출발점이다.
그렇구나. 조부모님과 부모님 모두 분열의 신으로부터 희생당하였구나. 그래서 윗대의 어른들이 끝도 없고 깊이도 헤아릴 수 없는 고통 속에 빠져 살아 있었구나.
‘다른 사람의 상황이 내일처럼 깊이 느껴지고, 그들을 향한 관심이 생겨서 그 사람과 처지를 바꾼다거나 차라리 내가 겪었으면 하고 바랐던 적이 있었던가? 그것이 바로 연민이다.’(엘리스 휘톤/김미정, ‘용서’)
이런 연민 1%는 마중물과도 같다. 한 바가지의 마중물로 땅속의 무한량의 물을 퍼 올리듯이 조부모와 부모의 쌓이고 쌓인 응어리를 퍼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조부모와 부모님에 대한 분노와 원망의 감정을 해소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용서하여 건강한 자기애를 갖게 될 것이다. ‘용서를 통해 우리가 얻는 가장 큰 유익은 바로, 이제 더 이상 과거에 희생되지 않는다고 우리 스스로 확신을 갖고 말할 수 있다는 점이다.’(프레드 러스킨, ‘용서’) 부모를 용서하는 어렵고도 긴 여정을 하는 동안 질기디 질긴 과거의 끈을 놓아 버리고 희망의 끈을 잡고 앞으로 나아가게 될 것이다.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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