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NS라는 것이 참으로 기특하다.
늦은 밤 낯선 카톡이 날아와 안부를 묻는다. 이게 누구인가. 까마득히 잊고 살던 초등학교 시절의 친구가 아닌가. 은행지점장인 아버지를 따라 이 도시로 이사 왔다가 졸업 전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간 친구. 그렇게 잠깐의 인연으로 만났지만, 고등학교 시절, 대학교 시절, 간간이 소식을 주고받다가 결혼과 함께 연락이 끊겼던 친구. 그 친구가 사이버상 어디선가 내 흔적을 찾아 안부를 전해온 것이다.
서로 사는 곳과 살아 온 방식이 달라 쉽게 대화가 될 것 같지 않았지만, 문자로 나누는 대화는 곧 그 간격을 메워버렸다. 아이들 얘기, 사업얘기, 여행얘기, 종교얘기를 하다가 갑자기 친구가 침묵모드로 변했다.
실제로 만나서 눈을 맞추는 대화라면 이럴 때 무슨 일인지 추측이라도 하련만 같이 침묵으로 기다릴 수 밖에. 휴대폰을 닫을까 할 때쯤 친구가 다시 문자를 보내왔다. “나 고백할게 있어. 3년 전 남편이 먼저 갔어.”
순간 친구는 그 말이 하고 싶었던 것임을 느꼈다. 잘 나가는 사업의 대표였던 친구남편은 어느 날 아침 평소처럼 출근한 뒤 영영 집에 돌아오지 못했다고 했다. 멀쩡하게 출근한 남편이 쓰러졌다는 연락을 받고 병원으로 달려갔을 땐 이미 의식불명상태였다는 것. 그로부터 갑자기 바뀌어버린 일상으로 친구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이제 교회를 나가며 봉사활동을 통해 평안을 찾고 있다는 친구의 얘기를 들으며, 요즘들어 갑자기 이렇게 세상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에 충격을 받았다. 연 전엔 아파트 뒷동에 사는 젊은 남자가 회사에서 쓰러져 눈을 감았다는 소식이 들리더니, 며칠 전엔 아파트 옆 라인에서도 비슷한 얘기가 들리고, 무엇보다도 건강하던 여고선배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것은 아직도 그 충격이 가시지 않고 있다.
죽음의 이야기가 자주 귀에 와 닿는 것은 나이 탓일까.
문득 이렇게 아무런 준비나 예비도 없이 죽음을 맞는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 두려움이 앞선다. 어느 날 죽음이 갑자기 나에게 찾아온다 해도 후회가 없으려면 어떻게 살아야할까. 친구의 고백은 스스로 성찰하는 기회를 준다.
그래서일까, 96세 김형석 노교수의 충고가 마음에 담긴다.
김 교수는 인생을 되돌릴 수 있다면 젊은 시절로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지나고 보니 인생의 절정기는 철없던 청년이 아니라, 무엇이 소중한지를 진정으로 느낄 수 있던 시기인 60대 중반에서 70대 중반이라며, 나이가 드니까 나 자신과 내 소유를 위해 살았던 것은 다 사라지고, 남을 위해 살았던 것만이 보람으로 남는다고 했다.
세상에서 가장 성공했다는 사람, 스티브 잡스도 죽음을 앞두고 비슷한 얘기를 했었다.
자신은 사업에서 성공의 최정상에 도달하였지만, 일을 빼면 기쁨이 거의 없었다고. 병상에 누워 돌이켜보니, 그토록 자부심을 갖고 있던 ‘일’과 ‘부’는 죽음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고 의미가 없는 일이었다고.
그가 남긴 말은 가슴을 저리게 한다. “저는 저의 삶을 통해 얻게 된 부를 가져갈 수 없습니다. 제가 가져갈 수 있는 것은 아름다운 기억들뿐입니다.” 그러면서 그는 또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침대가 무엇입니까? 바로 ‘병상’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장 비싼 침대에서 마지막 삶을 마감한다.
그 침대에 눕기 전, 할 수 있는 일들이 얼마든지 있음에도 그 일을 미뤄둔 채 쓸모없는 일들에 매달리다가 더 중요한 것들을 놓쳐버린다. 더 중요한 것이란, 인간관계일 수도 있고, 예술일 수도 있고, 어릴 때부터 꾸어 온 꿈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천재는 또 말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부가 가져다주는 환상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사랑을 느낄 수 있게 하는 감각을 넣어주셨다”고.
그렇다. 죽음은 예고없이 오고, 누구에게나 예외가 아니지만, 사랑은 끝이 없고 한계가 없는 것이다. 새해벽두, 우리는 비싼 침대를 멀리하고 인생에서 무엇이 소중한지를 깨달아가며, 자신의 삶에서 중요한 일을 찾아가자. 그 모든 것은 자신의 마음과 자신의 손에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