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00지방법원 민사법정실. 판사와 조정위원들이 앞자리에 앉아 있다. 그들 앞에는 이혼소송을 청구한 사십대 중반의 부부가 마주보고 앉았다. 그들 부부는 아들 딸 남매를 두었단다.

조정위원 한 분이 남편에게 질문을 던졌다.

“왜 이혼을 결심하게 되었나요?”

“저 여자와는 결혼생활을 더 할 수 없습니다. 저 여자가 교회에 미쳐서 나도 몰래 전세보증금 4000만 원을 빼내어 교회에 헌금으로 바쳤어요. 그날그날 겨우 먹고 사는 우리 형편에 교회에 미친 여자와 어뗳게 삽니까? 차라리 이혼하는 게 나을 것 같아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아내가 교회 나가면서 자녀교육과 가정살림을 모두 등한시 했나요?”

“가정살림이나 자녀교육은 흠잡을 데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그 놈의 교회에 미쳤습니다. 새벽기도를 하루도 안 빠지고 나가고요, 일요일 수요일 금요일 아주 교회에 나가삽니다. 저게 사람입니까?”

“그걸 모르고 결혼했습니까?”

“알고 결혼했습니다. 결혼 당시 저도 교회에 잘 나갔지요. 지금은 안 나간 지 오래 되었어요.”

“만약 이혼하시면 두 자녀의 장래와 교육 문제는 물론 가족 전체에 심리적 타격이 심각하다는 사실을 아셔야 됩니다. 물질적으로 잃는 것보다 훨씬 더 타격이 크지요. 지금은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미운 정 고운 정 다 들었는데 아내와의 결별은 고려해보심이 좋을 듯 하네요.”

다른 조정위원이 아내에게 물었다.

“왜 남편과 상의도 없이 전세보증금 4000만 원을 헌금하여 가정이 파탄나게 했나요?”

“지금까지 무슨 일을 하든지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하나님께 맡기고, 그분께 매달려 보려고 했습니다. 제가 남편과 상의 안하고 헌금한 것은 저의 잘못입니다.”

“지금이라도 남편에게 용서를 빌어보시지요.”

아내는 한참 허공을 응시하더니, 딱딱한 그 시멘트 바닥에 얌전히 무릎 꿇었다. 그리고 남편을 향해 떨리는 음성으로 용서를 빌었다.

“여보, 당신을 힘들게 해서 미안해, 나 마지막으로 한 번만 용서해주면 안 돼?”

남편이 지그시 아내를 바라보더니 서서히 다가가 아내의 손을 잡고 일으켜 세웠다. 남편의 눈에서 소리 없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아내는 어깨를 들썩이며 흐느껴 울었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판사도 울고 조정위원들도 울고 방청객도 울었다.

법정은 눈물의 홍수로 넘실거렸다. 순하고 순한 부부의 용서하고 하는 화해하는 모습이 아름다웠다. 사랑과 신뢰가 묻어나왔다. 겸손한 자세로 고통을 털어내는 모습이 존경스러웠다.

 

부부가 합력하여 선(善)을 이룬 모습 보기 좋았다. 부부의 마음이 하나가 되면 쇠도 끊어진다는데(同心斷金), 저들 부부의 앞길에는 어떤 험한 시련도 문제가 될 것 같지 않았다.(임한용의 수필, ‘여보 나 한 번 용서해주면 안 돼?’)

‘여보 나 한 번…’의 가장 큰 미덕은 화해의 중개자가 등장한다는 점이다. 분열의 중개자가 불신의 기둥으로 떠받치는 다리라면, 화해의 중개자는 정의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사랑의 다리이다. 화해의 중개자는 갈등 관계를 화해의 관계로 연결하고, 과거의 세계에서 미래의 세계로 연결한다. 어둠을 빛으로, 절망을 희망으로, 죽음을 생명으로 변화시키고, 무기력을 자신감으로, 미움을 사랑으로, 원망을 용서로 변화시킨다.

‘여보 나 한 번…’의 화해의 중개자는 조정위원이다. 이혼소송을 냈던 부부는 조정위원과 문답을 하면서 성문처럼 굳게 닫혔던 마음의 빗장을 푼다. 부인은 남편에게 용서를 빌고, 남편은 부인을 용서한다. 분노의 감정이 연민의 감정으로 바뀌자, 부부는 손을 잡고 눈물을 흘린다. 준엄한 법정은 화해의 장으로 변하여 감동의 눈물로 출렁인다. 위기의 부부는 믿음의 부부로 변하여, 쇠를 끊을 만큼 단단한 믿음의 부부로 새로 태어난다. 부처님도 부러워할 만큼 마음 맞는 부부로 거듭난다.

이 부부가 이처럼 화해의 중개자를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아내의 헌금사건 때문이다. 물론 아내가 남편과 상의도 없이 전세금을 빼내어 헌금한 것은 폭력일 수 있다. 그러나 폭력에도 등급이 있음에 유의하자. 저급의 폭력은 과욕과 허세를 배경으로 하고 있지만 고급의 폭력은 선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아내의 폭력은 그러므로 고급폭력이다. 남편은 눈이 어두워 아내의 폭력에 잠재된 가족 사랑을 헤아리지 못하였다. 아내의 가족사랑은 하느님에 대한 온전한 믿음이었다. 온전한 믿음이 있었기에 온전히 의탁할 수 있었던 것이다.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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