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가 대문을 연지도 어느새 20일째다. 눈 깜짝 할 새에 시간은 또 쏜 살같이 지나갔다. 올해는 병신년(丙申年) 붉은 원숭이의 해란다. 원숭이는 사람과 가장 닮은 동물이어서 세상의 어떤 동물보다도 친근감을 느끼며 볼 때마다 신기하다.

원숭이는 외모만 사람을 닮은 게 아니고 지능지수가 사람을 제외한 동물 중에서 가장 높다. 원숭이나 침팬지 같은 유인원종류는 사람의 IQ를 100으로 보았을 때 80 정도라고 하니 사람이 만물의 영장을 자처한다면 원숭이는 만물의 부영장 쯤 되는 셈이 아닐까.

원숭이를 보면 생김새부터 그 하는 짓이 웃음을 자아내고, 재동이라고 해야 할까, 귀염성이 있어 친밀감을 느끼게 하며 한번 키워 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하지만 원숭이는 우리나라에 서식하지 않는다. 동물원에나 가야 볼 수 있으며 그것도 중국이나 일본에서 들어온 것이다.

초등학교 때 원숭이를 보지도 못한 채 원숭이 노래부터 익혔다. 원숭이 궁둥이는 빨가, 빨가면 사과, 사과는 맛있어, 맛있으면 바나나, 바나나는 길어, 길으면 기차, 기차는 빨라, 빠르면 비행기, 비행기는 높아, 높으면 백두산 -이렇게 낱말 이어가기를 하다가 갑자기, 백두산 뻗어내려 반도삼천리/ 무궁화 이 동산에 역사 반만년/ 대대로 이어 사는 우리 삼천만/ 복 되도다 그 이름 대한이로세. 하며 씩씩하게 노래를 불렀다. 60년도 훨씬 지난 어린 시절고무줄뛰기를 하면서 익힌 노래인데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는 게 신기하다. ‘원숭이’도 ‘바나나’ 도 그 시절엔 익숙하지 않은 낱말이었기 때문일까. ‘대한의 노래’는 어린 마음에도 가슴 뭉클한 감동과 함께 애국심이랄지, 민족이랄지 하는 도도하고 상기된 감정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었다.

원숭이 궁둥이가 빨간 것은 왜 그럴까. 설화에 의하면 게와 원숭이가 떡을 만들어 먹다가 다툼이 일어났다. 원숭이가 떡을 가로채 나무 위로 올라가서 게를 약 올렸다. 떡을 혼자 먹으려다 실수로 땅에 떨어뜨리고 말았다. 게가 얼른 떡을 주워 굴속으로 도망쳤다. 원숭이는 나무에서 내려와 엉덩이로 게의 굴을 막고 방귀를 뀌어댔다. 그때 게가 앞발로 원숭이의 엉덩이를 꼬집어 뜯었다. 원숭이 엉덩이는 털이 뽑힌 채 빨갛게 되었단다. 그래서 게의 앞발에는 아직도 원숭이 엉덩이에서 뽑힌 털이 붙어 있다나. 원숭이를 제대로 자세히 본 것은 몇 해 전 뱃부에 갔을 때 일본 최대의 자연생태동물원 다카사키야마에서였다. 그 곳에는 1300여 마리의 원숭이가 사람보다 더 강한 가족애를 보이며 사는 모습에 가슴 뭉클했다. 추운 날씨에 부부가 새끼를 가운데 놓고 서로 기대어 체온을 나누며 몸을 녹이는가하면 어미가 새끼를 업고 가는 모습, 서로 이를 잡아주고 긁어 주는 모습, 더러는 혼자 토라져 고민에 빠져 있는 등 인간의 삶과 다를 것이 없었다. 식사 시간이 되니 그 많은 원숭이가 군중이 운집하듯 모여 들었고 그 속에서 질서를 지키고 사는 모습도 아름다운 감동이었다.

원숭이가 나무를 타는 모습은 놀랄 만치 유연하고 민첩하다. 예부터 동작이 재빠르다는 뜻의 ‘잔나비’라고 부르기도 했다. 『서유기』의 손오공처럼 원숭이가 잡귀를 물리치는 수호의 힘을 지녔다는 믿음도 있다. 그래서 그런지 전통 미술작품 속에 원숭이가 많이 등장하며 장수와 다산 등 좋은 의미로 남았다. 신라 사람들은 토우 원숭이를 부적으로 가지고 다니거나 무덤의 부장품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당시 원숭이 상이나 조각은 다른 12지(支) 동물과 함께 무덤을 지키는 호석(護石)으로 쓰인 경우가 많았다. 문방사우인 벼루나 연적에 또는 인장(印章)에 원숭이가 자주 등장하며, 서재로 쓰였던 사랑방의 기물로 자리를 차지했다.

원숭이의 모성애는 사람 못지않다. 새끼 원숭이가 죽을 경우 어미 원숭이는 몇 날 며칠 사체를 끌어안고 빼앗기지 않으려고 한다. 창자가 끊어질 듯한 슬픔을 일컫는 ‘단장(斷腸)’도 원숭이 고사에서 유래했다. 환온의 부하 하나가 원숭이 새끼 한 마리를 붙잡아서 배에 실었다. 그런데 그 원숭이 어미가 새끼를 쫓아 백여 리를 뒤따라오며 슬피 울다 죽었다. 죽은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갈라 보니 너무나 애통해 창자가 토막토막 끊어져 있었다는 얘기다. 옛날 명사들의 일화를 담은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나오는 내용이다.

원숭이가 좋은 의미로만 해석되진 않았다. 사람을 흉내 낸다고 해 간사하고 잔꾀가 많다고 여겨 기피하기도 했다. 자기 이익을 위해 교활한 꾀를 써 남을 속이고 놀리는 것을 이르는 말로 조삼모사(朝三暮四)가 있다. 중국 송(宋)나라의 저공(狙公)이 자신이 키우는 원숭이들에게 먹이를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를 주겠다고 하자 원숭이들이 화를 내므로, 아침에는 네 개, 저녁에는 세 개를 주겠다고 바꾸어 말하니 기뻐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원숭이의 단순함을 비웃는 말이지만 속이는 저공이 나쁜 것이지 원숭이를 탓할 일은 아니다.

올해는 원숭이의 지혜로움과 재주는 본받고 배우되 잔꾀는 경계하고 타산지석으로 삼아 실수로 나무에서 떨어지지는 않도록 조심하는 한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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