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정 청주YWCA 사무총장

 

학창 시절 공부도 잘하고/특별 활동에도 뛰어나던 그녀/여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입시에도 무난히/합격했는데 지금은 어디로 갔는가 (중략) 크고 넓은 세상에 끼지 못하고/부엌과 안방에 갇혀 있을까/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

문정희의 시인의 ‘그 많던 여학생들은 어디로 갔는가'를 읽는 내내 안타까움과 애잔함의 감정이 든다. 1990년대 후반의 시지만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40대의 필자에겐 여전히 유효하다. 가끔씩 똑똑하고 능력있었던 내 친구들을 떠올리며 누구의 도움으로, 어떻게 30대 40대를 극복하고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얼마 전 학벌의 유리천정, 여성의 유리천정, 출신의 유리천정을 깨고 성공했다는 여성인사는 모 정당에 입당하면서 “나처럼 노력하면 된다고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출신이 어디이던, 학벌이 어떠하던, 오늘 열심히 살면 정당한 대가와 성공을 보장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합니다”라고 기자회견을 했다고 한다. 내 주변에는 정말 훌륭한 여성들이 많다. 사회에서 여러 활동을 눈부시게 하고 있는 분들도 많이 있지만, 육아와 가사 일에 경력을 전환한 사례도 많이 있다. 이것은 의지나 능력, 또한 한 개인만의 문제는 아니다. 뿌리 깊은 여성과 남성의 결과적 불평등은 누구 탓이라고 해야 하는가.

여성에게 출산과 육아가 미치는 영향은 거의 절대적이다. 여성의 고용률(이하 통계청, 2014)은 51.3%인데 비해 남성은 74.0%로 그 차이가 20% 이상이다. 그런데 더 눈여겨 볼 것은 여성과 남성의 연령별 추이의 차이이다. 우리나라 여성 고용률은 OECD 국가 중 유일하게 일본과 더불어 M자형 곡선을 그리고 있다. 낮아지는 가운데 부분이 30대 출산, 육아시기와 일치한다.

물론 필자는 모든 사람들이 노동시장에서 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출산 육아 살림의 전 영역은 사람을 사람답게 하고, 생명을 돌보는 무엇보다 귀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귀한 일을 어느 한 성에게 강요한다거나, 혹은 사회적 상황이 어느 한 성이 담당할 수 밖에 없는 사회라면 아직 우리사회는 50%에게 불평등한 사회이다. 퇴근 후 돌봄노동을 감수해야 하는 것도 불편한데 심지어 아이가 아파도 엄마 탓, 아이가 성적이 떨어져도 엄마 탓, 남편이 살 조금 빠져도 아내 탓이라고 하는 그 시선을 감수하고 일을 붙들고 있기란 속된말로 뻔뻔해야 가능한 것이다.

남녀의 차이를 떠나 각각의 사회 구성원들이 제 삶을 제 바람대로 사는 것, 이런 기본이 모든 정치인이 이야기하는 행복사회일 것이다.

30대 후배 두 명이 비슷한 시기에 둘째아이를 임신했다고 한다. 첫째아이야 어떻게든 버텨봤지만 둘째까지는 힘들겠다고 한다. 함께 오래도록 일하고 싶었다. 그녀들이 갖고 있는 지혜와 분별력, 일에 대한 책임감과 열망이 사회와 가족 내의 불평등한 시선 속에 움츠러들지 않길 바란다.

축하의 마음과 더불어 안타까움과 애잔함을 가져야 하는 이 마음이 참 불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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