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순자의 성악설 보다는 맹자의 성선설을 믿고 싶어 하는 인간들의 보편적인 기대가 허망한 것이고 자가당착인지도 모른다.

인간의 노동력 절감을 위해 발명한 화약이 대량살상 무기가 되고, 인류복지를 위해 쓰여야할 원자력이 가공할 폭탄으로 바뀌어 평화를 위협하고 있으며, 가정의 복지를 위한 보험이 가족 살해의 빌미가 되는 세상이니, 인류를 창조한 신이 놀라 기절할 일이다. 아니 용서와 축복을 내리던 신이 은총의 손을 거두고 저주의 징벌을 내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신은 노아의 대홍수 이후, 인류파별의 징벌을 아직은 유보하고 있다. 이 극악한 사회에 그래도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사랑과 자비, 너그러운 베풂으로 세상을 정화해 가는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불신시대, 그리고 신의 염원’ 중에서)

 

안수길(77·뒷목문학회장) 소설가가 최근 칼럼집 ‘불신시대, 그리고 신의 염원’을 발간했다. ‘비껴보기 뒤집어보기’에 이은 두 번째 칼럼집이다.

책에 실린 115편의 칼럼은 2005년부터 2010년까지 안 소설가가 동양일보에 게재해왔던 글이다. 그는 동양일보가 창간하던 지난 1991년부터 20년이 훌쩍 넘는 세월 동안 논설위원으로 독자들과 만나오며 세월의 흐름을 함께 해 왔다. 유려한 문체 속에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해박한 지식을 녹여낸 그의 칼럼은 독자들에게 세상을 보는 바른 방향을 제시해왔다. 6개월 전 그의 칼럼 집필 중단 소식이 아쉽게 느껴졌을 독자들에게 이 책은 희소식으로 다가온다.

안 소설가는 “잡문에 ‘칼럼’이라는 이름을 붙여 지면을 어지럽혀 온 게 여러 해 됐다. 전문 칼럼니스트들이 실소할 만큼 두루 부끄러운 글이지만 낱장으로 떠도는 게 애처로워 책으로 묶으려니 이 또한 헛된 일인지 싶다”며 “허나 못난 자식이라고 외면하기 어렵듯 글도 그런가 보다”고 밝혔다.

‘16대 국회가 난장판이라서 17대 국회에는 새사람 뽑아서 보낸다고, 대폭 물갈이를 했다. 그러나 성스럽다는 의사당, 국회 본회의장 돌아가는 꼴은 난장판 그대로 여전할 뿐이다. 고함과 삿대질, 욕설 여전하시고 떠밀고 당기고 곤두박질하는 육탄전 여전하시고, 비산하는 서류뭉치가 축제일에 꽃가루 날리듯 하는 진풍경 역시 여전했다. (‘의원 자질론 역설’ 중에서)’

10년 전 저자가 조소했던 풍경들은 현재도 그대로 되풀이 된다. 연일 싸움을 일삼는 국회와 독도 영유권 분쟁, 종군위안부 문제(‘일본의 부아지르기’, ‘인도주의와 종군위안부 증거’), 출산율 감소와 노인인구 증가 문제(‘내 새끼’의 방생과 노후) 등 상당수의 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안타까움과 분노가 담긴 ‘역설적인 한담’들은 그냥 웃자고 한 얘기로 흘려버리기에는 그 안의 뼈가 너무 단단하다. 칼럼 곳곳에 박혀있는 저자의 메시지는 2016년의 현재에도 유효하다.

안 소설가는 “소재가 그때그때 국민들의 관심사였다지만 중복감에 기시감을 느끼는 얘기들이 적잖다”며 “내 시각의 한계 탓이겠지만 사회에 잠복된 적폐와 불신이 쳇바퀴처럼 반복되고 혁신을 외면한 채 정체의 늪에 갇힌 탓은 아닌가 싶다. 늪에서 썩어나는 건 탄식과 분노에 찬 서민의 가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저자는 1940년 청주 출생으로 40년 간 교직에 몸 담았으며 교장으로 정년 퇴임했다. 1969년 ‘월간문학’ 신인상을 수상했으며, 충청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이 당선되며 문단에 나왔다. 충북소설가협회장, 한국문인협회 청주지부장, 청주시1인1책발간추진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저서로 단편집 ‘멀고 먼 장송’, ‘포물선’, 중편집 ‘공명찾기’, ‘갈 곳 없는 사람들’, 장편소설 ‘잠행(전 3권)’, ‘천사의 깊고 편한 잠’ 등이 있다.

푸른나라. 372쪽. 1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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