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10여년 전만 해도 와인은 서민들과 그리 친하지 않은 음료였다. 도도하고 까다로운 연인 같던 와인이 아무 때고 불러낼 수 있는 친구처럼 쉽게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가격을 대폭 낮추면서도 질을 높인 와인들을 주변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게 되면서부터다. 한결 편안해진 모습으로 생활 깊숙이 스며들기 시작한 와인은 이제 소주만큼이나 친숙해진 술이 됐다.

합리적인 가격대에 낮은 도수의 와인은 온 가족이 함께 모이는 설 명절에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는 술이다. 한국의 전통 음식은 그 종류가 매우 다양해 어울리는 와인을 찾기도 그리 어렵지 않다. 특히 명절 음식의 경우 특유의 기름진 맛을 깔끔하게 잡아주는 등 의외의 조화를 이룬다.

 

●갈비찜에는 레드와인, 생선전에는 화이트와인

갈비찜, 불고기, 산적 등 지방과 단백질 함유량이 높은 육류는 레드와인이 잘 어울린다. 진한 풍미가 육류의 맛을 한층 더 깊게 하고 달짝지근한 양념으로 둔감해진 미각을 깔끔하게 잡아준다.

김시동 충북농업기술원 와인연구소장은 “레드와인은 과일향이 풍부하고 탄닌감이 강하지 않아 명절음식인 돼지고기 수육이나 육전 등과 잘 어울린다”며 “스위트(단맛) 와인은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이 둘러 앉아 한과, 다식, 모듬 과일 등을 안주로 따뜻하고 정감있는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준다”고 말했다.

생선이나 흰 육류에는 화이트 와인을 마신다는 것이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이다. 생선전이나 굴전, 해물파전 등 해산물을 이용한 전 요리에는 드라이한 화이트 와인이 제격이다. 생선구이, 조개구이 등에도 신맛과 떫은맛이 적당히 있는 화이트 와인을 마시는 것이 좋다. 화이트 와인의 독특한 산미가 생선 맛과 조화로운 앙상블을 이룬다. 대표적인 설 음식인 떡국과 나물류에도 화이트 와인이 생각 외로 잘 어울린다.

당도가 높은 한과나 약과는 달콤한 스위트 와인과 찰떡궁합이다. 그러나 적절한 산미를 포함하지 않은 스위트 와인을 고른다면 너무 달아 쉽게 질릴 수 있으니 주의해야 한다.

충북도농업기술원 와인연구소가 운영하는 와인소모임 ‘와인살롱(회장 안성분)’은 지난 1월 ‘국산와인과 어울리는 명절 음식’을 주제로 한 모임을 진행하기도 했다.

와인살롱은 와인과 음식에 관심 있는 와이너리 업체, 교수, 도예가, 목공예자, 외식업체, 직장인 등 다양한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는 모임이다. 이날 회원들은 와인과 어울리는 각종 전과 갈비를 만들고 토의하는 시간을 가졌다.

와인살롱은 지난해에는 표고버섯, 삼겹살 등과 어울리는 와인을 주제로 모임을 진행했다. 올해는 결혼, 졸업, 야유회 등을 테마로 한 음식을 개발하고 그 결과를 리플릿으로 제작할 예정이다.

와인소모임 회원인 지명순 영동대 호텔음식조리학과 교수는 “국산와인과 어울리는 우리 음식을 발굴하고 발전시켜 국산와인의 저변 확대와 와인 문화 형성에 기여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앞으로도 지역 농산물을 이용한 다양한 와인 관련 음식을 개발하고 나누는데 노력하겠다”고 밝혔다.

 

●온 가족과 가볍게 즐길 수 있는 영동 와인

영동은 충북 최대의 와인 생산지다. 1996년 ‘영동포도가공영동조합법인’으로 시작한 영동 와인 산업은 20년의 짧은 역사에도 불구하고 와인전문가들과 소비자들로부터 ‘영동=와인’이라는 이미지를 단단히 각인시키고 있다. 2016년 현재 1개의 기업형 와이너리(대형 와인공장)와 43개의 농가형 와이너리(중소규모 와인공장)가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 와이너리에서는 연간 50만병의 수제 와인을 생산해 국내에 유통하고 있다. 포도의 품종은 크게 다르지 않지만 각 와이너리마다 독특한 향과 맛을 지닌 다양한 와인을 탄생시킨다.

영동에서 생산, 판매되는 와인은 대부분 적포도인 캠벨얼리를 이용한 레드와 로제(핑크)와인이다. 일부 와이너리에서는 청포도인 청수나 나이아가라로 만든 화이트 와인을 판매하기도 한다.

이중 도란원의 ‘샤토미소(5회 한국와인품평회 대상)’, 여포농장의 ‘여포의 꿈 화이트(광명동굴 대한민국 와인 페스티벌 와인품평회 대상)’, 불휘농장의 ‘시나브로 청수 화이트와인(2015 아시아 와인트로피 골드 메달)’, ‘시나브로 컬트 스위트(2015 한국와인 베스트 셀렉션 품평회 대상)’, 컨츄리농원의 ‘컨츄리 산머루 스위트(2회 한국와인대상 다이아몬드상)’ 등은 지난해 열린 각종 품평회에서 수상하며 그 품질의 우수성을 인정받았다.

영동와인 홈페이지(http://ydwine.org/main)를 통해 영동에서 생산되는 와인과 연락처, 주소 등을 상세하게 알 수 있다. 홈페이지를 통한 구입도 가능하며 생산자로부터 와인의 특징에 대해 자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다.

윤향식 와인연구소 품질관리팀장은 “영동 레드와인은 국내에서 오래 전부터 식용으로 이용한 포도를 사용해 선호하는 과일향과 탄닌감이 약한 가벼운 맛을 지니고 있다”며 “주로 스위트 와인이 판매가 잘 되는 편이다. 와인을 자주 접하지 않은 가족도 함께 둘러 앉아 즐길 수 있어 명절음식과도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이어 “영동에서 생산하는 화이트 와인은 상큼한 신맛과 단맛을 선호하는 소비층을 중심으로 소비가 확대되고 있으며, 과일이나 한과 등 가벼운 후식과도 잘 어울린다”고 말했다.

 

●와인 알고 즐겁게 마시기

와인은 알면 알수록 그 깊고 진한 매력을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술이다. 충북농업기술원 와인연구소로부터 더 맛있게 와인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들었다.

와인을 마실 때는 와인 전용 잔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향이 밖으로 퍼지지 않도록 하기 때문. 덕분에 더욱 다양하고 강한 향을 즐길 수 있다. 와인을 마실 때는 손가락을 가지런히 해서 스템(와인을 마실 때 쥐는 부분)을 살며시 잡는 것이 좋다.

마실 때는 느긋하게 오감으로 마신다. 먼저 눈으로 와인의 색, 투명도, 점도 등을 보며 스파클링와인의 경우 기포를 본다. 코로 향을 맡아 와인의 다양한 아로마를 느끼고 이를 통해 생산지역, 포도품종, 숙성도 등을 판단할 수 있다. 입으로는 단맛, 신맛, 떫은맛을 느낀다.

와인을 따를 때에도 종류에 따라 다르다. 일반적으로 레드와인은 화이트와인이나 스파클링 와인보다 큰 잔에 마시는 것이 좋다. 레드와인은 잔의 1/4, 화이트 와인은 잔의 1/3, 스파클링 와인은 기포가 올라오는 모습을 잘 볼 수 있게 긴 모양의 글라스에 2/3정도를 따르는 것이 좋다. 다 마신 후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한 두 모금 쯤 남았을 때 다시 잔을 채워주는 것이 매너다.

와인셀러를 갖추고 있는 집은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이럴 경우 냉장고나 김치냉장고에 보관하면 된다. 20도 이상의 장식장에 보관하면 부피가 늘어나 와인이 유출되거나 품질이 나빠질 수 있다. 특히 여름철 뜨거운 차 안이나 트렁크에 보관하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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