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연기 논설위원·한국교통대 교수

(홍연기 논설위원·한국교통대 교수)우리나라 사람은 새해를 두 번 맞이한다. 한 번은 양력설이고 또 다른 한번은 음력설이다. 사회적으로는 양력설을 새해라고 하지만 우리 마음속의 진정한 설은 음력설, 즉 설날이다. 그럼에도 지금의 설날이 있기까지에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설날의 수난은 1895년 을미개혁 이후 음력이 폐지되고 양력이 도입되면서 시작되었다. 일제는 명절을 두번 지낸다는 이중과세를 이유로 구정(지금의 설날)을 탄압하였다. 1949년에는 ‘관공서 공휴일에 관한 규정’에 의해 양력 1월 1일을 신정이라고 하여 3일간 연휴로 지정하였는데 그 이유가 모든 선진국들은 신정을 쇠는데 우리만 구태의연하게 구정을 쇤다는 이유였다.

이후 산업화와 경제발전을 명목으로 구정(지금의 설날)은 더욱 천대 받게 되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고집스럽게 구정을 진정한 설날로 지내왔고 그 결과 1985년에 ‘민속의 날’이라는 웃지 못할 명칭으로 하루를 겨우 쉬기도 하였다. 1989년 ‘민속의 날’이 ‘설날’이라는 원래 명칭을 찾으면서 지금과 같은 3일간의 휴일을 보장받을 수 있었다. 지난 100여 년간 설날의 우여곡절은 우리나라의 부침과 그 괘를 같이 한다고 하겠다.

설날은 한동안 멀리 떨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자신의 근본을 확인하고 일상에 지친 마음을 치유하는 시간이다. 누군가는 설 연휴의 교통체증을 이유로 경제적 손실이 크다고는 하지만 명절 교통체증까지 각오하면서 고집스럽게 고향으로 향하는 이유는 위로 받고 싶음이 아닐까? 그래서 우리는 고집스럽게 설날을 지켜왔다. 그런데 요즘 말로 ‘힐링’의 시간이 돼야 할 우리의 설날이 누군가에게는 고통이 되고 있다는 점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최근 온라인 취업포탈 사람인에서 구직자와 직장인 1,455명을 대상으로 ‘설날에 가장 듣기 싫은 말’에 대해 조사한 결과를 발표한 바 있다. 구직자의 경우 ‘아직도 그대로야? 취업 못했어?’를 가장 듣기 싫은 말로 꼽았다고 한다. 그 다음으로는 ‘앞으로 뭐 할거니?’, ‘언제 결혼할래?’등이 있었고 심지어는 ‘취업 못해도 몸 관리라도 해’도 있었다고 한다. 직장인도 예외는 아니어서 이들이 듣기 싫어하는 말의 대부분은 연애와 결혼과 관련된 것이라고 한다. 이 모든 말들이 관심에서 비롯되었다고는 하나 그 말을 듣는 젊은이들을 배려한 말이라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요즘의 청년 구직자들의 구직난은 과거 어느 때 보다도 심각하다. 대졸자를 기준으로 보면 과거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대학에서 취업을 걱정하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러나 외환위기 이후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취업의 보증수표가 되지 못하면서 구직자들의 구직난은 심화되기 시작했다.

요즘 청년들을 두고 이런 저런 말들도 많지만 우리나라 유사 이래 지금의 청년들처럼 처절하게 구직을 준비하는 청년들은 없었을 것이다. 노력하면 잘 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노력 정도가 아니라 ‘노오오오력’을 하고 있기에 그런 말들이 별로 위로가 될 수는 없다. 혹자는 지금의 청년들을 위로하기 위해 아프니까 청춘이라고 하지만 청춘들이어서 아파해야만 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청년들에게 미래에 대한 구체적인 모습을 제시할 수 없으면서 막연히 잘 될거라는 기대를 갖고 아픔을 당연하게 생각하면서 노력만이 살길이라고 말하는 것은 기성세대가 청년세대에 가하는 희망 고문 그 이상도 아닐 것이다.

청년들이 사회에서 처한 상황이 이럴 진데 굳이 설날까지 친척의 관심이라는 이유로 이들에게 듣기 싫은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일상에 지친 이들에게 굳이 미래에 대한 계획을 강요하기에 앞서 그저 힘이 될 만한 덕담을 해주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위로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한편으로 청년들도 기성세대들도 작금의 상황이 어떤지 익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기도 하다. 굳이 덕담까지는 아니더라도 말없이 어깨한번 두드려 주는 것도 위로가 될 것이다. 그래서 치열한 경쟁 속에 지친 그들의 신심을 이번 설날연휴 때만이라도 다시 추스릴 수 있도록 지나친 관심보다는 따뜻한 격려를 보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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