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기황 시인

긴 설 연휴가 끝났다. 대체휴일까지 합쳐서 앞뒤로 넉넉한 설 명절연휴를 보냈다.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고 TV에선 어느 채널을 돌려도 설 특집을 방영하느라 시끌시끌하다. 뉴스도 귀성길, 귀경 길 소식으로 예년과 다름없이 분주하다.

130만이나 되는 인파가 설 명절연휴에 국내를 떠나 해외여행을 떠났다는 뉴스도 새삼스럽지 않을 만큼 외견상으로는 넉넉하고 풍성하게 느껴지는 설 명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긴 연휴기간을 보내면서 사회전반이 외롭고 쓸쓸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

충북사회복지공동모금회는 ‘희망2016나눔캠페인’ 성료식을 통해 충북지역 ‘사랑의 온도탑’이 5년 연속 100도를 넘어섰다고 밝히면서 한편으론 힘겨웠던 모금과정을 토로한다.

‘독목불성립(獨木不成林)-홀로 선 나무는 숲을 이루지 못한다’는 말뜻이야 누가 모를까마는

침체된 경기만큼이나 ‘독(獨)’해지고 있는 사회현상이 ‘사랑의 온도탑’의 온도로서 나타나고 있는 것이리라.

어찌 보면 명절증후군도 함께 나누지 못해 생기는 마음의 병이 아닐까 싶다.

시집 식구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고독(孤獨)’한 상황이 마음의 ‘독(毒)’이 되어 생기는 병리현상으로 봐도 될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며느리의 전유물이던 ‘명절증후군’이 이제 시어머니에게로 옮겨가고 있는 중이다.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다”는 우스개가 ‘며느리 살이’를 하는 요즘 시어머니들 사이에선 그냥 하는 말이 아니다.

‘관계’의 변화에서 오는 스트레스 중에 ‘이별’로 인한 외로움만한 게 있을까.

변진섭의 ‘홀로 된다는 것’의 가사가 그럴싸하다.

‘이별은 두렵지 않아/눈물은 참을 수 있어/하지만 홀로 된다는 것이/나를 슬프게 해’

2014년 우리에게 잔잔한 감동을 전해주었던 다큐멘터리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도 홀로 된다는 것에 대한 슬프고도 아름다운 노부부의 사랑얘기를 풀어내고 있다.

작은 강이 흐르는 강원도 횡성의 어느 산골 마을, 98세 조병만 할아버지와 곱디고운 89세의 할머니가 76년을 한 결 같이 사랑하며 살아온 날들이 눈부신 영상으로 펼쳐진다.

젖은 낙엽처럼 기력이 다해가는 할아버지와의 이별을 준비하며 할머니는 절절한 마음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석 달만 더 살다 가면 을매나 좋겠수. 함께 손잡고 저 다래재를 넘어가면 을매나 좋겠수.”

설 명절이 끝났다.

두 번의 새해인사와 두 번째의 다짐을 하게 된다.

다시 분주한 일상으로 돌아가 깊게 깔려있는 우울을 털어버려야 한다. 혹시라도 명절에 만났던 ‘관계’ 속에서 어긋났던 일들이 있었다면 ‘다시’ 회복하는 탄성을 가져야 한다.

홀로 외롭지 않아야 몸도 마음도 독(毒)이 생기지 않는다.

세뱃돈보다 몇 갑절 푸근하게 느껴지는 은퇴신부님의 덕담이 생각난다.

첫째 “끊임없이 도전하되 욕심 부리지 마라.”

영어성경 필사(筆寫)에 이어 다시 라틴어성경 필사에 도전하고 있는 노신부님의 열정이 놀랍다.

“기간을 정하지 않고 하는 일, 좋아서 하는 일이라서 훨씬 좋아, 나이 든 사람들의 특권이지.” ‘나이 듦’은 여유로운 삶의 시작이라고. 젊었을 때는 좋은 말씀, 좋은 글귀 하나라도 꼭 ‘써 먹어야지’ 하는 욕심 탓에 온전히 소화하지 못했지만, 지금 나이에선 자신의 양식으로 삼을 수 있어 좋다고.

둘째, “소통하는 삶을 살기 바랍니다.”

남을, 특히 젊은이를 가르치려 하지 말고 지적하지 않으면 소통할 수 있다. 자신의 틀에 맞춰 가둬놓고 보게 되면 ‘다름’이 보이는 것이 아니고, 자신과 ‘틀림’이 보이게 된다.

젊은이의 것은 젊은이의 것으로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볼 때 상대도 나를 알게 된다.

SNS는 소통의 수단이지. 세대 간 단절의 상징이 아니라는 것도. 고령화 사회, 초고령화 사회를 마냥 두렵게만 받아들이지 말 것이다.

두 번째 새해를 보내며 이 사회가 더 이상 독(獨)해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을 갖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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