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선 동양일보 상임이사

점심식사 시간. 숟가락을 들다가 문득 소위 요즘 유행하는 ‘수저 계급론’이 생각나서 눈여겨 보았다. 평범한 스테인레스 재질의 숟가락이다.

그런데 이 숟가락은 어느 계급에 속할까.

최근 수저로 부모재산과 가정환경 등을 등급으로 나눠 비교하는 수저계급론이 유행이다. 등급별로 말하자면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그리고 흙수저 순이란다.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나 은수저를 물고 태어난 사람은 성장과정에서부터 취업까지 막힘이 없다. 그러니까 탄생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얘기다. 이에비해 흙수저족은 머피의 법칙처럼 안되는 일쪽으로만 일이 진행된다. 그래서 새로운 계급이 형성된다는 것이다. 흙수저라니, 누가 만든 말인지 참으로 씁쓸하다.

수저계급론이 확산되면서 최근엔 아예 구체적으로 재산까지 수저로 구분을 해놓았다. 금수저 정도가 아니라 그 위에 다이아몬드, 플래티늄 수저까지 있다는 것이다.

플래티늄수저는 자산이 1000억을 넘거나 연수입이 30억을 넘는 상위 0.01%를 말하며, 인원은 4천 명이란다. 다이아몬드수저는 자산 30억 또는 연수입 3억을 넘는 상위 0.1%의 4만 명이 해당되고, 금수저는 자산 20억 또는 가구 연 수입 2억을 넘는 상위 1%, 38만 명. 은수저는 자산 10억 또는 연수입 8000만이 넘는 4인가정 중산층으로 추산하며, 동수저는 자산 5억 또는 연수입 5500만의 중산층 기준, 놋수저는 자산 1억 연수입 3500만, 플라스틱 수저는 자산 5000만 또는 연수입 2000만 그리고 그 이하는 흙수저란다.

최근 우리 식으로 분류하면 흙수저 그룹에 속하는 샌더스가 미국 대선에서 새로운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는 소식이다.

전국적 인지도도 떨어지고, 무소속 정치인으로서 당내 기반도 전혀 없이 ‘민주적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무명의 70대 노정객인 버니 샌더스는 같은 민주당 후보로 대결하는 힐러리 클린턴과는 수저 금수저로 비교된다.

최고의 명문대와 많은 재산, 퍼스트레이디, 상원의원, 국무장관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닌 백인 특권층 여성인 힐러리를 금수저라고 한다면, 홀로코스트를 피해 뉴욕 브루클린의 빈민가로 도망쳐 가난한 페인트 판매원으로 생계를 유지한 폴란드계 유대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샌더스는 출생부터가 흙수저였다.

그러나 샌더스는 자신을 흙수저라고 생각한 적이 없다. 다만 세상의 불공평을 바로 잡는 일에 헌신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실패를 거듭하며 버몬트주에서 지사와 상원 의원에 도전해 상취하고, 연방 하원 의원을 거쳐 연방 상원 의원을 지내고 있다.

버몬트주 벌링턴 시장 재임시 ‘호숫가 호화 호텔’ 대신 ‘시민의 호수’를 만들고, 대형 식료품 체인 대신 소비자가 운영하는 협동조합을 만들어 성공시키는 등 일관되게 서민을 위해 노력한 것은 어쩌면 흙수저 출신이었기에 가능한 일일 수 있다.

그의 정책을 들여다보면, 대형 금융기관 해체와 금융 규제 강화, 공공 의료보험 확립, 자유무역 반대 등 현재 미국 보통사람들의 불만을 정확히 짚어내고 있기에 돌풍을 일으킬 수 있는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분석하고 있다.

물론 이제 막 시작한 대선 초입에서 일으킨 돌풍으로 대선 전체를 예측할 수는 없다.

아직 샌더스는 비록 뉴햄프셔에서 크게 이기긴 했지만, 다음 경선에서 힐러리와 지속적으로 맞붙어야 하고, 이렇게 해서 민주당 최종 후보가 된다고 해도 최종 선거에서 공화당 대표와 다시 싸워야 한다.

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되든, 되지 못하든 샌더스의 돌풍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사람은 누구나 태어날 때 수저를 물고 나온다. 그리고 그것은 같은 색깔 같은 재질 같은 모양의 수저이다.

생명이라는 재질, 부모의 사랑이라는 색깔, 인권이라는 모양까지....세상의 흙수저들이여. 스스로 폄하하고 자조하지 말라.

세상의 모든 것은 흙으로부터 생겨나고 흙으로 돌아간다. 흙으로 만든 수저는 고온에 구우면 도자기수저가 된다. 설사 흙수저라 하더라도 흙수저가 더 멋진 수저임을 보여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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