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영수(편집국 취재부 부국장)

▲ 지영수(편집국 취재부 부국장)

“선거에 관심 가질 여유가 없어요. 맨날 지들끼리 쌈질만 하고…. 다 똑 같은 놈들 아녀?”, “먹고살게나 해줘요. 애 대학 등록금 대기도 버거워요”
20대 총선을 앞두고 설 민심 파악과 선거운동을 위해 지역구를 찾았던 더불어민주당 박병석(대전서구갑) 의원이 자영업을 하는 한 상인으로부터 들은 얘기다.
충남 보령중앙시장을 찾은 새누리당 김태흠(보령·서천) 의원도 ‘답답한 국회’에 대한 쓴 소리를 들었다. 한 상인은 “정치인들 꼬라지가 사람이 할 짓이요? 이권 다툼이나 하고 말이야…. 이런 것들은 반성해서 없어져야 하지 않냐 말여요”라고 대뜸 목소리를 높였다고 한다.
이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다른 상인도 “국회가 세금 먹는 하마여 하마”라고 거들어 김 의원이 “얼굴을 들지 못할 정도였다”고 한다.
더불어민주당 한범덕(청주 상당) 예비후보는 “시장과 거리에서 만난 유권자들이 경제가 너무 어려워 서민들이 살기 힘들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며 “취업을 앞둔 집안의 경우 ‘어렵게 대학까지 가르쳤는데 취업을 못하니 정말 답답하다’고 하소연 하는 사람들이 의의로 많았다”고 전했다.
새누리당 송태영(청주 흥덕을) 예비후보는 “명절기간 만난 주민들이 정치권에 대한 불신을 넘어 무관심이 심각한 수준 이었다”고 말했다.
이처럼 충청지역 국회의원과 예비후보들이 4.13 총선을 2개월 앞둔 지난 6~10일 설 명절 기간 전해들은 민심은 기성 정치에 대한 불신과 무관심이었다.
선거의 계절에 현역 의원이나 국회의원 예비후보들이 몰려다니며 자기 당의 지지를 호소했지만 ‘우리부터 좀 살게 해 달라’, ‘싸움 좀 그만하고 일 좀 하라’는 유권자들의 분노와 질책이 부메랑으로 되돌아왔다.
정치가 유권자의 문제를 해결해 주지 못하면 유권자도 정치에 냉정해지는 법이다.
상황이 이런데도 여·야는 포장지를 바꾼 정도의 재탕이거나 퍼주기식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공약만 남발, 이번에도 정책 선거는 구호에 머물게 됐다.
선거 이슈가 여당은 ‘진박 논쟁’, 야권은 분열 속의 진흙탕 싸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더민주당은 최근 청년 일자리 70만개 창출과 고교 무상교육 등을 주요 공약으로 내놨다. 연간 5만명에게 월 60만원씩 6개월간 취업활동비를 지급하고 쉐어하우스 임대주택 5만가구와 신혼부부용 소형주택 5만가구를 공급하겠다고 약속했다.
항목마다 수천억원에서 수조원의 돈이 필요한 일들이지만 재원마련 대책은 알 길이 없다.
실효성도 의문이다. 청년을 위해 공공 일자리를 늘리고 고용 의무할당제를 도입하지만 기업여건은 거꾸로다. 올해부턴 정년이 연장되고 통상임금 부담이 커졌다. 여기에 청년고용을 강제로 할당하면 버틸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지 의심스럽다.
‘가계부담 완화를 위한 새누리당의 약속’은 맹탕 수준이다. 8개 공약 중 7개가 기존 정부안을 활용했거나 지방자치단체가 시행하는 정책과 비슷하다.
현재 후보가 난립하고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서도 예비후보들이 앞 다퉈 장밋빛 공약을 쏟아내고 있다. 유권자의 시선을 끌려고 욕심내다보니 실현 가능성이 낮은 공약을 남발하고 있다.
제천·단양에 출사표를 던진 한 예비후보는 제천시와 단양군의 행정통합에 이어 인근 강원도 원주까지 단일 행정구역으로 통합하는 방안을 내놨다.
행정구역 통합은 역사·지리적 측면과 지역주민 간 이해, 정부 입장 등이 얽혀 여간 복잡한 일이 아닌데도 강원도 지자체까지 끌어들여 통합하겠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한 공약이다.
정치권이 관심을 갖고 정책을 개발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렇다고 해도 나라 곳간을 아랑곳 하지 않거나 현실성 없는 약속을 홍수처럼 쏟아 내다보니 표만 노린다는 지적을 받을 수밖에 없다.
지난 대선 때 쏟아낸 복지 포퓰리즘의 후유증으로 대한민국은 지금 몸살을 앓고 있다. 박 대통령의 공약인 누리과정 무상보육이 대표적인 사례다. 아이들을 볼모로 삼아 정부, 국회, 지방의회, 교육감이 한 치의 양보 없이 연일 치고받고 싸움질이다.
공약발표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 눈높이에 맞춘 정제되고 실현 가능성이 높은 공약을 유권자 앞에 내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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