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직 1동 닷컴’, ‘육거리 시장 이야기’ 발간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내가 얼마나 배꽃같이 살았는가하면, 한날은 집에 갔더니만 애가 “엄마, 저녁을 못 먹었어.” 이러더라고요. 지금 마흔여섯 살 먹은 애가 “저녁을 못 먹었어.” 이러더라고요. 그러면서 “슈퍼에 가서 라면 하나 외상 달라 그럴까?” 이러더라고요. 그래서 “아가, 안 돼.” 그랬죠. 그러니 “엄마, 왜 안돼?” 이래요. (중략) “우리 애기, 우리 애기. 배가 고파도 참자. 그냥 엄마가 소금물 한 그릇 타줄게. 그냥 먹고 말자.” 하고. 그렇게 나는 살았어요. 그래도 그 때는 애들이 크는 재미로 힘든 줄 모르고 살았어요. (‘사직1동 닷컴’ 우정임씨의 구술 중에서)

 

●사직1동 닷컴

삶이 그대로 책 한 권인 청주 사직1동 사람들, 골목 깊숙이 잊혀져간 이들의 이야기를 담아 낸 책 ‘사직1동 닷컴’이 나왔다.

이 책은 사직1동 골목 1,2세대들의 이야기를 실은 구술 자료집 ‘여기 꼭두배기집 저 밑 뽕나무밭’, ‘딱지 둘이 딱지 동무’와 맥락을 같이 한다. 2013년부터 매년 구술자료집을 통해 사직1동의 이야기를 전해 오던 청주 흥덕문화의집이 지난해는 잡지 형태로 이 책을 펴낸 것. 2015 문화의집 생활문화 활동 지원사업 ‘골목은 강으로 흐른다’의 일환으로 발간됐다.

묵직한 구술 자료집의 무게를 벗고 ‘사직1동 동네 사용설명서’라는 타이틀을 단 이 책에는 22개 통장이 주민 편집위원으로 참여했다. 소소한 서민들의 일상 속에서 숨겨진 보물들을 캐는 것은 편집위원들의 몫이었다.

특집으로 골목을 지키고 있는 사자 문고리에 주목했다. 사직동 골목의 오래된 대문마다 달려있는 사자 문고리는 하나도 같은 모습이 없다. 공통점은 이제는 서커스 무대에 오를 힘도 없어 그저 철창 안에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는 늙고 병든 사자처럼 부식됐다는 것. 이빨 빠진 사자, 엄숙한 표정 속에 위용 있는 사자, 수염과 갈기가 하얗게 센 사자 등 저마다 제각각의 모습을 한 사자들이 클로즈업돼 독자들 앞에 펼쳐진다. 사자의 표정을 주제로 한 글이 곁들여져 사진을 한껏 살린다.

‘가게열전, 맛집열전’이라는 타이틀 아래 백양세탁소, 화선장, 개명제화, 아산파크, 자유카페, 로터리다방에 얽힌 사연들도 만날 수 있다. 가출 청소년들에게 짜장면 한 그릇을 먹이며 살살 구슬러 결국 집에 돌아가게 했던 전 중국집 주인의 이야기며, 봐도 못 본 척, 들어도 모른 척 해야 했던 다방 주인 이야기들이 구술하는 이의 말투 그대로 감칠맛 나게 펼쳐진다.

이종수 흥덕문화의집 관장은 “사자는 거의 고미술품처럼 골목의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어쩌면 대문 안 집주인들의 삶과 닮았고 얼굴마저 닮은 듯 보였다. 사자와 함께 내는 사직1동닷컴에는 작은 박물관전을 비롯해 오래 골목을 지켜온 분들의 눈물 나고 정겨운 이야기들이 넘친다. 주민 편집위원들의 발과 입이 만들어준 사직1동만의 소중한 문화자산”이라고 밝혔다.

 

●육거리 시장 이야기, 육감

 

‘육거리 시장 이야기, 육감’ 역시 ‘사직1동 닷컴’과 흡사한 형태를 띤 일종의 구술집이다. 청주 육거리 시장을 소재로 한 잡지 형태의 이 책은 충북작가회의가 진행하고 있는 ‘충북의 문학지리-장소의 기억, 청주를 말하다’ 사업의 일환으로 선보이게 됐다. 충북작가회의 회원인 김덕근·소종민·이종수·정연승·정민씨가 작업에 참여했다.

책의 첫 머리에서 정연승 소설가는 “내 마음이 불안하거나 조급해지면 육거리 시장을 간다. 대형매장에 비하면 육거리 시장은 부잣집 헛간만도 못하다. 그러나 육거리 시장을 한 바퀴 돌고나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여유로움을 얻을 수 있다”고 밝힌다.

육거리 시장 사람들의 여유와 넉넉한 인심, 늘어진 시간을 깨우는 활기와 생생함이 책장 가득 묻어난다.

책은 먼저 시장의 하루 풍경을 비춘다. 상인 등으로 구성된 시민 편집위원들과 충북작가회의 회원들이 포착한 육거리의 풍경들이 독자들에게 생생한 질감으로 다가온다. ‘또다시 공순이가 된 아줌마도/칠순이 넘은 이장 할아버지도/몽골 색시와 배 맞춘 대머리 아저씨도/진양조에서 휘몰이까지/더러는 엇모리로 건배를 하는/송진내 나는 삶의 옹이가 있다’는 장문석 시 ‘육전반상’이 육거리 시장의 풍경과 어우러진다.

가덕순대, 금탑미용실, 북일톱집, 석교닭집 등 ‘요즘 육거리 시장’ 상인들의 이야기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져간 ‘옛 육거리 시장’ 이야기도 들을 수 있다.

가게 앞에 붙인 ‘문을 닫아 미안합니다. 무릎 수술합니다’라는 쪽지며 고추 그림과 함께 고추 따지 말라고 써 붙인 쪽지가 정감 있게 느껴진다. ‘나는 국산’이라 자랑하는 미역줄거리, ‘안 매운 애고추’, ‘중간 매운 풋고추’ 등의 팻말을 달고 있는 고추들의 모습도 앙증맞다. 눈 뜨고 코 베어 가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 비닐봉지에 물건을 담아 가고 앞에 놓인 돈통에 알아서 값을 지불하라는 빵집의 풍경은 너무 정스러워 어쩐지 낯설기까지 하다.

이종수·이정민·한태호씨의 ‘사진이 있는 글’이 책의 깊이를 더한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닌, 청주의 과거이자 현재인 육거리시장의 미래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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