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릭 이 사람 - ‘단재기행’ 발간한 김하돈씨

(동양일보 조아라 기자) 역사 속에서 스러진 단재 신채호 선생의 발자욱을 더듬어 새겨가는 책 ‘단재기행’이 발간됐다. 독립운동가이자 교육자, 언론인, 역사학자인 단재 선생의 행적을 좇는데 길라잡이가 될 책이다. 단재문화예술제전추진위원회가 순국 80주년(오는 2월 21일)을 맞아 펴낸 이 책은 해외 독립운동가에 대한 최초의 기행서적이기도 하다. 이 책의 집필을 맡아 단재의 형형한 정신과 숨결을 불어 넣은 것은 김하돈(53·사진) 시인이었다.
단재문화예술제전추진위원회는 2013년부터 2년에 걸쳐 단재의 행적을 따라 청주, 대전, 중국, 일본 등 국내외 수많은 지역을 답사했다. 허원 서원대 교수를 단장으로 최옥산 베이징대외경제무역대학 교수, 반병률 한국외국어대 교수, 박걸순 충북대 교수, 김주현 경북대 교수, 김하돈 시인 등이 조사에 참여했다.
‘마음도 쉬어가는 고개를 찾아서’ 등을 발간한 기행작가인 김 시인은 이들의 조사보고서를 답사기로 재탄생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는 5~6년 전부터 추진위가 실시하는 유적지 답사에 참여해 단재백일장·역사퀴즈대회 입선자 10명 등과 함께 매년 중국을 오가기도 했다.
김 시인은 문헌이나 관련 자료를 통해 확인 가능한 거의 모든 공간을 찾아내 글을 쓰고 사진을 곁들였다. 정확한 주소 뿐 아니라 GPS 좌표 등도 빠짐없이 기록해 책 한 권만으로 ‘단재로드’ 답사가 완벽하도록 했다. 평소 사용하는 문체 대신 간략하고 정제된 문체를 사용, 명확하게 정보를 전달해 독자들이 현장에 접근하기 쉽도록 했다.
김 시인은 “그동안 단재 선생에 관한 연구는 책으로만 1000여권 이상이 될 정도로 굉장히 많지만 막상 선생이 태어난 곳부터 돌아가신 곳까지 현장을 연결하는 작업은 돼 있지 않다”며 “그동안 인물 중심으로만 연구가 이뤄져 왔었고 부정확한 것도 많았다. 이를 바로 잡기 위해 아주 객관적으로, 가능한 있는 자료를 최대한 종합해 현장성과 사실성에 기초해 글을 쓰고자 했다”고 말했다.
충북작가회의 회원인 그는 20여년 전부터 홍명희, 오장환, 정지용 등 충북의 작고 문인을 조명하는 작업에 참여해 왔다. 유일하게 남아있는 오장환 시인의 사진을 세상에 알린 것도, 김복진 조각가의 원적부를 찾아낸 것도 김 시인이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단재를 꼽아요. 이유가 뭘까 생각해 봤는데 아마도 처음부터 끝까지 변절하지 않고 초심을 지켰기 때문 아닐까 싶습니다. 지식인들은 가끔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좌절도 하잖아요. 그런데 단재 선생은 시종일관 한 길을 전차처럼 달려온 인물입니다. 머리로 독립운동을 하는 것이 아니라 분노하고 실천하고 바로 실행에 옮겼어요.”
그는 2013년 순국 77주년을 맞아 발간된 추모 헌정시집 ‘광장을 꿈꾸다’를 기획해 엮어낸 바 있다. 신경림·이기형·문병란씨 등 원로시인부터 젊은 시인에 이르기까지 70여명이 작업에 참여했다.
김 시인은 “시인들에게 한 인물에 관련된 시를 써서 며칠까지 보내달라고 하는 것은 아무리 가까워도 어려운 일”이라며 “그럼에도 많은 분들이 흔쾌히 응해 뜨거운 가슴으로 시를 써서 보내주신 이유는 바로 단재였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감옥에서 병이 깊어져서 보증인 한 사람만 세우면 내보내주겠다고 했지만 나가지 않고 돌아가신 분이 바로 단재 선생”이라며 “근대사에 수없이 훌륭한 분이 많지만 그 분의 삶은 거의 독보적으로 눈에 띌 만큼 단호한 삶이었다”고 강조했다.
유적지를 답사하는 과정에서 문동학교 초기 교사로 사용했던 고령신씨 소안공과 종갓집, 청용리에 산재해 있는 단재 선생 직계 조상들의 묘역, 천안의 신기선 집터, 서울 삼청동 가옥 자리 등을 발굴했다. 단재 선생이 미결수 신분으로 2년 여간 수감생활을 했던 다롄형무지소의 위치를 새롭게 확인해 책에 수록할 수도 있었다. 3000여권 발행된 ‘단재기행’은 전국 도서관, 학교 등에 배포된다. 김 시인은 단재로드가 활성화될 경우 지역의 정체성을 만드는 데도 기여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상황은 사실 그 시절이나 내용적으로는 같아요. 대립각은 점점 커지고 나라는 반쪽으로 나뉘어 싸우고 있어요. 그런 점에서 단재는 여전히 유효합니다. 단재로드는 이 시대 우리가 걸어야 할 길입니다. 단재를 알고 그가 간 길을 따라 걷는 것은 단순히 독립운동가의 유적지를 찾아가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헤쳐 가는 것입니다.”
▶글/조아라·사진/최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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