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 강연 

김소월 보편적 슬픔 표출 독자들에 공감·위로 안겨줘 
정지용 ‘현대시의 아버지’ 우리말의 시적 유효성 표현

“김소월은 그리움과 슬픔의 정서를 통해 인간 회복을 호소한 민족시인입니다. 반면 정지용은 우리말을 찾아서 닦고 조직하는데 시 인생을 바친 20세기 최초의 직업시인이죠. 1902년생 동갑내기인 이들이 다른 시대인처럼 느껴지는 것은 작품 세계의 차이가 빚어내는 착시 현상일 것입니다.”

유종호 전 연세대 석좌교수는 최근 김소월의 ‘진달래꽃’과 정지용의 ‘정지용 시 전집’을 주제로 ‘2015 오늘을 성찰하는 고전 읽기’ 강연을 펼쳤다.

유 전 석좌교수는 두 시인을 같은 해에 태어나고 사망한 마르크스와 투르게네프(1818~1883)와 비교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김소월과 정지용이 동갑이라는 사실을 의외라고 느낄 것”이라며 “이들의 차이는 사회적 총화로서 인간의 개성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유 전 석좌교수는 김소월이 정지용에 비해 다작(多作)했지만 김소월의 작품 성취도는 높낮이가 고르지 못했던 반면 정지용은 상대적으로 고른 편이었다고 평가했다.

그는 한국의 대표적 시인이었던 두 사람이 모두 불행하게 세상을 떴다는 것을 공통점으로 들었다.

유 전 석좌교수는 “김소월은 자살설이 정설로 굳혀졌고 북으로 간 정지용은 정치와 전쟁의 와중에서 최후를 맞았다”며 “반면 미당 서정주는 86세로 천수를 다하고 900편에 이르는 걸출한 시편을 남겼다. 미당의 상대적인 행운은 김소월과 정지용의 불운을 부각시켜 준다”고 말했다.

그는 동시 ‘엄마야 누나야’, ‘말’에서 두 시인의 차이가 단박에 드러난다고 주장했다.

그는 “김소월의 ‘엄마야 누나야’는 옛 가락에 의탁해 동심을 드러내고, 정지용의 ‘말’은 개성적이고 독창적인 면에서 자연스럽게 인지의 충격을 준다”며 “이러한 면이 두 시인 사이에서 세대 차를 느끼게 하고, 이는 많은 작품에서 그대로 발견된다”고 강조했다.

유 전 석좌교수는 두 시인의 작품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우선 그는 김소월의 ‘초혼’, ‘예전엔 미처 몰랐어요’, ‘차안서선생 삼수갑산’, ‘옷과 밥과 자유’ 등을 예로 들며 “김소월은 인간의 보편적인 슬픔을 표출하며 독자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안겨줬다”고 해석했다.

이어 “그는 인간 삶의 본원적인 슬픔에 대해 깊은 통찰을 보여주진 못했다”면서도 “그의 시는 이념의 명시적 표출을 멀리했기 때문에 거부감을 주지 않고 호소력을 갖는다”고 덧붙였다.

그는 김소월의 대표작 ‘진달래꽃’에 대해서도 “조국의 산천에 지천으로 피어 있어 상징이 될 수 있는 진달래꽃으로 조선주의를 밝혔다”며 “이는 그가 천성의 시인이었음을 말해준다”고 평가했다.

유 전 석좌교수는 정지용에 대해서는 대표작 ‘향수’에 대해 “일제 한자어를 마구잡이로 빌려 쓰던 1920년대에 정지용은 주류 사회에서 배제된 토박이말을 찾아내 그것을 시어로서 조직하는 일을 선도했다”며 “토박이말의 시적 유효성을 보여주며 부족 방언의 순화에 크게 기여했다”고 말했다.

이어 “시가 우리말로 빚어진다는 것을 직관적으로 통찰하고 방법적으로 자각한 그는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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