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구 획정안 국회 제출 필리버스터 정국 중대 고비

여야가 테러방지법 처리를 둘러싸고 무한대치를 이어가면서 오는 29일 열릴 예정인 국회 본회의 개최 여부 전망이 불투명해지고 있다.

정의화 국회의장이 지난 23일 테러방지법을 본회의에 직권상정하자 더불어민주당이 법안 표결을 저지하는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에 돌입, 28일까지 엿새째 '필리버스터 정국'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은 거듭된 여야 지도부 회동과 접촉에도 돌파구가 마련되지 않자 아예 협상 채널을 당분간 끊겠다는 입장이다.

더민주가 요구하는 테러방지법의 추가 수정은 법안의 취지를 무력화하는 만큼 결코 받아들일 수 없으며, "불법 선거운동과 '기록경신 경쟁' 이상의 의미가 없는 필리버스터를 즉각 중단하는 게 유일한 해법"이라는 것이다.

새누리당 원유철 원내대표는 이날 "직권상정된 테러방지법 수정안은 여러 차례 야당의 요구를 반영한 것인데, 이를 또 고치자는 건 '누더기 법안'을 만들자는 것"이라며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잘라 말했다.

새누리당이 이처럼 강경한 이유는 필리버스터에 대한 여론의 피로도가 커지면서 비판이 높아지고 있으며, 4.13 총선 선거구 획정안이 국회로 넘어오면 야당도 이를 처리하기 위해 필리버스터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원 원내대표는 전날 TV 프로그램 녹화를 위해 더민주 이종걸 원내대표와 만난 자리에서도 "필리버스터를 계속 할 테면 하라. 야당 스스로 포기할 때까지 지켜보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누리당은 선거구획정안이 이날 국회에 제출될 만큼, 당초 예정대로 29일 이를 처리하기 위해 필리버스터가 중단되면 곧바로 테러방지법을 표결하고, 법제사법위원회를 통과한 북한인권법, 사이버테러방지법과 함께 획정안을 담은 공직선거법을 처리한다는 방침이다.

더민주는 이에 맞서 "필리버스터에 마지노선은 없다"며 '필리버스터 여론전'으로 새누리당을 압박하는 한편, 협상을 통해 테러방지법의 절충안을 마련하는 '투트랙' 전략을 고수하고 있다.

테러방지법 중 국가정보원의 조사권과 추적권을 규정한 조항을 삭제하고, 현재 겸임상임위인 국회 정보위원회를 전임 상임위로 바꿔 국정원에 대한 국회의 견제 및 감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는 게 더민주의 주장이다. 다만, 무분별한 감청에 대한 우려가 해소되면 다른 부분은 타협의 여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더민주는 그러나 내부적으로 필리버스터를 언제 끝내야 할지 고민을 거듭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러방지법에 대한 당내 강경파의 반대를 무릅쓰고 필리버스터를 중단, 본회의에서 테러방지법이 표결되도록 용인하는 것도 쉽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내에선 필리버스터가 지지층 결집에 어느 정도 효과를 낸 만큼 연착륙 방안을 찾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현재 기조대로라면 필리버스터를 이어가는 게 도움이 되는 측면도 있지만, 이는 정치적·물리적 부담이 따를 수밖에 없다.

더민주 원내 관계자는 "우리가 필리버스터라는 '달리는 호랑이 등'에 올라탄 것일 수도 있다"면서 "지나치게 정치적으로만 수습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역풍이 불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필리버스터 정국은 선거구 획정과 맞물려 종착점이 가시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는 28일 4.13 총선에 적용될 선거구 획정안을 국회에 제출하면서 필리버스터 정국도 중대 고비를 맞을 것으로 전망된다.

필리버스터가 중단돼 테러방지법에 대한 표결이 실시되고, 곧바로 획정안을 담은 선거법이 본회의에서 처리되면 정부·여당이 강조해 온 '노동개혁 4개 법안'과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 등 나머지 쟁점법안은 후순위로 밀릴 공산이 크다.

'총선 모드'로 전환할 여야가 법안 처리를 위해 임시국회를 다시 소집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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