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일보)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5:13) 소금 같은 사람은 세상에서 꼭 필요한 사람이라는 뜻이다. 바닷물은 2.8%의 소금이 녹아 있다. 적은 양의 소금이 녹아 있는 바다는 어머니의 양수처럼 생명을 품는다. 사람의 몸에도 2.8%의 소금이 필요하지 않을까. 2.8%의 사랑이 필요하지 않을까.

어떤 음식에든 소금이 필요한 것처럼 세상 어디에서든 필요한 것이 사랑이다. 소금이 있어 음식을 썩지 않게 하는 것처럼 세상은 사랑이 있어 썩지 않는다. 소금으로 발효시킨 음식은 시간이 지날수록 겸손한 사람과 같으며 소금이 물에 완전히 자신의 몸을 녹이듯 자신의 몸을 바치는 헌신적인 사랑은 세상을 밝히는 빛이다.

모든 음식은 소금의 짠맛으로 간을 해야 제 맛이 난다. 어떤 음식이든 소금이 필요하듯이 사랑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하다. 에덴의 동쪽 끝에서 서쪽 끝까지, 요람에서 무덤까지, 왕자에서 거지까지 소금 같은 사랑으로 채워져 있다.

사랑은 숨길 수 없다. 그래서 누구에게나 보이고 아무데서나 보인다.

사랑은 정말 아무데서나 보인다. 플랫폼에서도 보이고 벤치에서도 보이고 뱃전에서도 보인다. 잘 생긴 남자 탤런트 사진 앞에서 발걸음을 옮기지 못하는 할머니의 가슴 속에서도 보이고, 산속에서 혼자 하는 사랑도 보인다. 그런 사랑을 볼 때면 괜히 내 가슴이 설레인다. ‘알프스 산 속에서 양을 돌보는 목동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 궁금하다. 그 중에서도 주인집 스테파네트 아가씨가 어느 축제에 가서 누구하고 춤을 추었는지가 제일 궁금하다. 일 개 목동인 네가 주인 집 아가씨를 궁금해 해서 무엇하느냐고 누가 묻느다면 나는 지금도 할 말이 있다. 그때 내 나이 스무 살이었다고. (알퐁도오데 ‘별’)’

전철 안에서 사람들이 시끄럽게 떠들어도 깨소금처럼 재미있는 이야기가 있다. 어느 부인이 친구에게 남편이 바람피우는 얘기를 할 때면 결말이 궁금하여 끝까지 듣고 싶어진다. 타인의 사랑 이야기는 파국의 강도가 심할수록 재미있다. 마치 듣고 있는 사람이 몰래 사랑하며 엔돌핀이 솟아 나오는 듯하다.

간이 잘 배인 사랑이야기는 언제 들어도 간고등어처럼 맛있다.

“달밤에는 그런 이야기가 격에 맞거든.” 조 선달 편을 바라는 보았으나 물론 미안해서가 아니라 달밤에 감동하여서였다.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갓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뭇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팔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메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공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 길이 좁은 까닭에 세 사람은 나귀를 타고 외줄로 늘어섰다. 방울소리가 시원스럽게 딸랑딸랑 메밀밭께로 흘러간다. 앞장 선 허 생원의 이야기 소리는 꽁무니에 선 동이에게는 확적히는 안 들렸으나, 그는 그대로 개운한 제멋에 적적하지는 않았다.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장돌뱅이 허 생원이 은은한 달빛 아래 물레방앗간에서 울고 있는 성 서방네 처녀를 만났던 것인데. 이십년 동안 그를 길 위에서 버티게 한 힘은 단 하룻밤의 사랑이었다. 해마다 메밀꽃 필 무렵이면 메밀꽃처럼 수많은 사람들이 봉평을 찾는다. 그곳에 가면 잃어버린 사랑을 되찾을 수 있을까, 꿈같은 사랑을 다시 이룰 수 있기를 바라면서. 소금을 뿌려놓은 듯이 숱한 사랑이 이 광막한 세상을 살맛나게 한다.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들이 새벽녘까지 속삭이듯, 사랑하는 사람들의 지칠 줄 모르는 속삭임은 ‘모차르트보다 아름답다.(이상의 ‘날개’에 나오는 구절)‘ 참기름을 바르고 소금을 뿌려 구워내는 김처럼 맛있다.

<청주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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