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우 시인

 

최동호 시인이 새로 엮은 『서정시학』에서 출간한 『정지용 시집 2015』 의하면 정지용의 작품은 시 167편과 산문 168편이다. 이중에 일본어 시는 47편이며 우리말로 옮겨진 영시(英詩)도 65편이 된다.

정지용의 일본어 시는 그 동안 일본의 시인 기타하라 하쿠슈가 발행한 잡지 『근대풍경』에 발표된 것들이 주로 알려져 왔다. 그런데 2014년 일본의 구마키 교수에 의하여 『자유시인』에 실린 시 19편과 산문 3편, 번역시 1편 그리고 『도시샤대학 예과 학생회지』에 실린 시 17편이 새로 쏟아져 나와 일본어 시만 47편으로 모아진 것이다.

이 작품 속에는 다른 매체에 이중으로 발표되었거나 한국어로 다시 발표된 것들을 제외하면 새롭게 확인된 것은 시 11편과 산문 3편, 번역시 1편인 셈이다. 특히 『도시샤대학 예과 학생회지』에 실린 작품들은 그 동안 전혀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것들이 많이 섞여 있었다. 이 작품들은 정지용 시인을 일제의 강압이 두려워 주로 순수서정의 글을 쓰고 말았다고 하는 일부의 평가들을 휴지조각으로 만들기 충분한 것들이다.

“어울리지 않는 기모노를 입고 서툰 일본어를 지껄이는 내가 참을 수 없이 외롭다. … …조선의 하늘은 언제나 쾌청하고 아름답다. 조선의 아이들 마음도 당연히 쾌청하고 아름답다. 걸핏하면 흐리기 쉬운 이 마음이 저주스럽다. 추방민의 씨앗이기에 잡초와 같은 튼튼한 뿌리를 가져야 한다. 어디에 심어도 아름다운 조선풍의 꽃을 피워내야 한다.”

이 글 「일본의 이불은 무겁다」는 1925년 11월에 발간된 『도시샤대학 예과 학생회지』에 들어 있다. 이 작품은 「센티멘털한 독백」에 들어 있는 글 3편 중 하나이다. 정지용 시인은 자신을 추방민으로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희망은 소멸되지 않은 씨앗인 상태이다. 시인은 이 씨앗은 어디에 심어도 아름다운 조선풍의 꽃을 피워야한다고 강변한다.

자신의 국토에서 추방된 한 젊은이는 일본의 기모노를 입고 서툰 일본어를 지껄이는 자신의 모습에 참을 수 없는 외로움을 느낀다. 이 환멸과 비애는 급기야 자신의 유년시절을 환기시킨다. 언제나 아름답고 쾌청한 조선의 하늘과 그 아래 마음껏 뛰놀고 있는 조선 아이들의 마음은 쾌청한 것이었다. 이는 바로 현재의 자신과 대비되는 조선 유년시절의 추억인 것이다.

일본의 이불은 온돌방을 사용하는 조선의 이불과는 비교할 수 없이 두껍고 무겁다. 그는 이 이불을 덮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정지용에 있어 실상 일본 이불은 강요된 현실에 해당한다. 그는 두껍고 무거운 일본 이불에 짓눌려 있다. 정지용 시인은 이런 저주스런 현실을 조선의 쾌청한 하늘과 쾌청한 조선의 아이들과 대비시킨다. 그리고 곧바로 조선풍의 꽃을 피워야한다고 강변한다.

정지용 시인의 일본어 데뷔작은 1925년 잡지 『가(街)』에 발표된 「신라의 자류(자榴)」이다. 이 시는 “아아 자류알을 알알이 비추어 보며 / 新羅千年(신라천년)의 푸른 하늘을 꿈꾸노니.” 로 끝을 맺고 있다. 여기서의 자류를 김학동은 석류(石榴)의 오자로 파악했으나 필자는 박사학위 논문에서 ‘일본에서는 석류를 자류로’ 부르고 있음을 밝힌 바 있다. 이 시의 제목은 「신라의 자류」로 되어 있다. 우리 역사를 잘 알지 못하는 당시 일본인들에 있어, ‘신라천년’은 별도의 학습이 필요한 단어였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지용은 주석도 달지 않고 신라천년을 환기시키려고 하고 있다.

정지용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향수」를 1923년 3월경 국내에서 썼으며, 교토의 도시샤 대학에 5월 3일에 입학하게 된다. 원래 4월이 입학인데 수속 관련하여 한 달 가령 늦어진 것이다. 그가 일본에 가서 얼마 지나지 않아 『근대풍경』의 기성작가 코너에 작품을 실을 수 있게 된 것은 우연이나 운이 아니었다. 그는 유학을 가자마자 서툰 일본어로 인하여 습작단계 시인으로 비춰지기도 하였다. 그는 새 경향의 시들 만나 실험 시를 쓰며 조선풍의 꽃을 피우려하였다. 그 정서의 밑바닥에는 조국을 잃어버린 조선 청년의 아픔과 조국에 대한 향수가 배어있음을 우리는 알게 된다.

정지용의 일본 땅에서 피웠던 아픈 꽃들의 향기가 그를 한국 현대시의 아버지로 불리게 하였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