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편집상무

(김영이 동양일보 편집상무)세상이 조용하지를 않다. 4.13 총선이 다음달로 성큼 다가왔지만, 각 당이 각 계파별 이해득실만 따져 공천에 몰두하다보니 파열음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온다. 4.13 총선은 앞으로 4년간 우리 사회, 국가의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정치적 사건이다. 그런만큼 정치권은 국민들에게 희망과 기대를 걸 메시지를 던져주어야 한다.

그런데 각 당에서 진행중인 공천작업을 보면 희망은 찾아 볼 수 없다. 공천권이라는 막강한 권한을 미운털 박힌 놈 찍어내는 수단으로 전락시켰을 뿐이다.

새누리당은 현직 당 대표인 김무성 의원을 경선에 넘겼다. 당 대표로 인정하기 싫어하는 청와대와 친박계열의 의중이 드러났다고 봐야겠다. 사사건건 친박계와 부딪친 그를 내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다행으로 여기라는 ‘선심성 경선’으로 느껴질 정도다.

관심은 유승민(대구 동을·3선) 의원의 공천여부지만 15일 발표한 7차 공천결과에서도 보류됐다. 5선 이재오 의원과 3선 안상수 의원 등 비박계 중진들과 류성걸, 김희국, 이종훈, 조해진 의원 등 ‘유승민계 4인방’, 정권초기 박근혜 대통령과 충돌하며 장관직을 던졌던 3선 진영 의원 등이 무더기 공천 탈락됐다. 비박계 공천학살이다.

더불어민주당의 공천 내홍 마찬가지다. 정청래(서울 마포을) 의원을 컷오프시켜 열혈 지지자들을 등 돌리게 해 놓고 이번엔 친노좌장 6선인 이해찬(세종) 의원마저 잘랐다. 김종인 대표는 이를 두고 ‘정무적 판단’이라고 했다.

안철수가 친노패권 청산을 요구하며 당을 뛰쳐나갔으니 김 대표로서는 이 참에 친노를 솎아내 당을 확실히 장악할 필요를 느꼈을 거다. 그런데 이유가 군색하다. 그저 정무적 판단이라니 중차대한 선거를 너무 안이하게 생각하는 건 아닌지 모르겠다. 선거에서 중요한 건 의석인데 과연 이번 컷오프가 대안있는 컷오프인지 의문이다. 스포츠는 2, 3등에게도 메달과 상금이 주어지지만 선거에선 2, 3등이 무의미하다. 그저 패자일 뿐이다. 그래서 후보를 결정할때는 아주 큰 흠결이 없는 이상 당선 가능성을 우선하는 게 기본이다.

연장선상에서 충북에서도 일부 예비후보들이-중앙 정치권의 거물들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의외의 정치적 학살을 당해 시끄럽다. 대표적인 게 청주 청원의 권태호(새누리당·변호사)·이종윤(더민주·전 청원군수) 예비후보다.

문제는 이들의 분노가 다른 사람도 아닌 경쟁자들 때문에 격해졌다는 사실이다. 이 예비후보는 중앙당 비대위원으로 활동하는 변재일(3선) 현 의원이 작용해 자신을 컷오프시켰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선에서 붙으면 질 것 같으니까 창피 안 당하려고 자신을 희생양으로 삼았다고 울분을 참지 못했다.

권 예비후보 역시 증삼살인(曾參殺人·증삼이 사람을 죽이다. 헛소문도 여러 차례 반복되면 사실처럼 된다는 것을 비유)이라는 고사성어를 인용하며 상대후보의 흑색비방을 강하게 성토했다.

그는 “한 후보가 수없이 허위 비방성 보도자료를 남발하고 심지어 기자회견과 중앙당 투서 등을 통해 ‘증삼살인’을 일삼았다며 이런 ‘나쁜 후보’는 엄중히 심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쁜 후보로 지목된 사람은 오성균(변호사) 예비후보다.

권 예비후보는 공천배제 소식을 듣고 처음엔 이를 수용하려 했다고 한다. 그런데 오 예비후보가 선거구민들에게 보낸 문자메시지가 불을 질렀다. 그는 경선에 진출한 것을 ‘비리검사에 굴하지 않고 단호히 맞서 싸워 기어코 이겨 낸 강단있는 정치인’이라고 자신을 치켜 세운 것. 그러면서 권 예비후보를 졸지에 ‘비리검사’로 만들었다.

그런데 2003년 청주에서 검찰 최악의 ‘몰카사건’이 터졌을 때 오 예비후보가 변호사로서 TV카메라 앞에 서서 주범 김 모 검사를 변론하면서 열변을 토하던 모습이 생생하다. 비리검사를 변호한 것이다.

36년을 검사로 지낸 권 예비후보에게 ‘평검사 강등 이유를 공개하라’고 압박한 후배 변호사. 이어 그에게 뒤집어 씌운 비리검사 낙인은 참을 수 없는 모독이 됐다. 특히 권 예비후보가 강공으로 선회한 배경엔 이들의 인간 관계가 자리한다. 이들은 한 고향(청주시 북이면)에서 태어나 시골에서는 흔치않은 사법시험 선·후배 사이다. 권 예비후보는 9기(사법연수원), 오 예비후보는 28기여서 기수로 따지면 까마득한 관계다.

이번 공천탈락 파동을 보면서 이름 뜻에 합당한 삶, 즉 이름에 걸맞는 뜻 옳고 곧게 세우는 참 삶을 산다는 게 쉽지 않음을 절감했다. 그렇더라도 유권자는 증삼살인, 부관참시(죽은 사람에게 가하던 극형) 같은 험악한 말이 안 나오는 선거가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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