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 공천논란 침묵엔 "국정비협조 의원과 비타협" 무언의 메시지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1일 "퇴보가 아닌 발전을 위해 이제 국민께서 직접 나서주시기 바란다. 국민의 힘이 대한민국을 바꿔놓을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 이례적으로 정치권을 성토하는 메시지를 담아 던진 말이다.

이를 두고 당시 친박계 핵심인사는 "자기 정치를 해온 정치인들을 향해 국민이 맞서 일어나야 한다는 함의를 담고 있는 것"이라는 해석을 내놓았다.

그 뒤 새누리당은 공천 내전에 휩싸였다. 살생부 논란, 윤상현 의원 막말 파문에 이어 '3.15 공천학살'로 지칭되는 비박(비박근혜) 의원들의 공천탈락 사태가 터졌다.

그 사이 박 대통령은 '경제행보'에 올인했다. 총선개입 및 '진박(眞朴·진실한 친박) 후보' 지원이라는 논란에도 불구하고, 창조경제 활성화와 일자리 창출이라는 메시지를 앞세우고 영남지역 핵심 거점인 대구와 부산을 잇따라 방문했다.'

▲ 박근혜 대통령이 17일 청와대에서 열린 '지능정보사회 민관합동 간담회'에서 모두발언하고 있다.

대신 박 대통령을 비롯해 청와대 참모들은 공천논란에 대해선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하지만, 여권 핵심인사들은 박 대통령과 청와대의 침묵에는 "정부 출범 이후 그동안 국정에 협조하지 않았던 의원들과는 타협하지 않겠다"는 단호함이 배어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국민의 힘이 바꿔놓을 것"이라는 박 대통령의 3.1절 기념사가 시사하듯 20대 총선을 계기로 국정운영의 틀을 확 바꿔놓겠다는 강력한 의지가 자리잡고 있다는 관측인 셈이다.

청와대는 '국정책임 공천'이라는 틀로 이번 사태를 바라보고 있다고 한다. "박 대통령에게 반기를 든 사람은 모두 탈락했다", "'박근혜당'으로 만드려는 것이냐"는 비판이 쏟아지지만, "집권여당 의원은 국정을 함께 책임져야 한다"는 기준으로 공천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다.

청와대 의중을 잘 아는 여권 핵심 관계자는 "이번 공천은 '책임공천'이라는 기준에서 철저히 심사된 것"이라며 "여당은 국정책임이 강조되는 공천이어야 한다. 국민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을 뽑아준 만큼 비판과 분란을 감수하고 국정을 책임지고 하겠다는 의지가 반영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당정간 분란과 혼선을 일으킨 사람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집권여당 구성원으로서 국정에 책임있는 역할을 다하지 않은 사람은 떠나면 된다. 굳이 국회의원을 하고 싶다면 무소속으로 출마하면 된다"고까지 언급했다.

여권 주류가 전하는 '책임 공천론'은 지난해 6월 박 대통령이 유승민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내놓았던 '배신의 정치' 심판론과 놀랍도록 닮아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박 대통령은 당시 국회법 개정안에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 전 원내대표를 겨냥해 "여당 원내사령탑도 정부 여당의 경제살리기에 어떤 협조를 구했는지 의문이 가는 부분"이라며 "정치는 국민의 대변자이지 자기 철학과 정치적 논리에 이용해선 안되는 것"이라고 비판했었다.

하지만, 이번 공천파문으로 최대 승부처인 수도권에서 역풍이 불고, 공천에서 탈락한 여당 의원들이 무소속으로 출마해 생환할 경우 박 대통령 국정운영에 더욱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관측도 심심치 않게 나온다.

그러나 이에 대해 친박계 한 인사는 "그동안 박 대통령은 국민을 위해 책임있게 일을 해내겠다는 사람만 있다면 아무리 소수라도 문제가 없다고 생각해왔다"며 "공천탈락자 가운데 지금까지 한껏 누렸던 분들도 있다. 국민이 이런 분들에 대해선 대충 넘어가지 않을 것"이라고도 반박했다.

무엇보다 "국민이 평가할 것"이라는 함의를 담은 여권 주류의 이같은 인식은 "결국 이번 총선도 박 대통령이 구심점이 돼 치를 수 밖에 없다"는 관측과도 연결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끈다.

이는 작년 6월 "배신의 정치는 반드시 선거에서 국민께서 심판해주셔야 한다"고 했던 박 대통령이 공천 파문으로 얼룩진 총선 정국에서 '무언의 정치'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주목되는 지점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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