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경자 수필가

어린 시절, 그때는 이웃 간의 정이 매우 돈독했었다. 별난 음식이라도 하면 이웃과 같이 나눠 먹는 따뜻한 마음이 있었다. 또한 기쁜 일이나 슬픈 일이 있으면 이웃과 함께 했다. 그러하기에 가족처럼 끈끈한 정이 오갔던 이웃사촌이다.

그러나 요즈음은 어떤가? 산업화의 발달로 그 시절에 있었던 미풍양속이 사라진지 오래다. 아파트, 빌라 등 공동주택이 늘어나면서 서로의 사생활을 드러내지 않아 이웃 간의 소통을 가로막고 있다. 누가 사는지도 모르고 이웃 사람을 믿을 수도 없고 말이나 행동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이렇게 단절된 문화 속에서 살다보니 사람들의 심성은 극도로 개인주의로 변했다.

신문 지상이나 방송매체를 통해 보는 사건 사고들을 볼 때마다 소름이 돋고 가슴이 서늘해진다. 아주 사소한 일에도 격분하고 공격적인 태도를 나타내어 공공의 평화를 해치는 끔찍스러운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이런 세태 탓인지 요즘 차도에서 벌어지고 있는 보복운전이나 난폭한 운전자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운전을 하는 난 그 모습을 목격할 때마다 덜컥 겁이 난다. 안하무인으로 야만적인 행동으로 폭력을 휘두르는 일이 얼마나 사회질서를 파괴하는지 모르는 모양이다. 보복운전이나 난폭운전으로 인하여 재산 피해가 큰 것은 물론 귀한 생명을 앗아가기도 하고 상해를 입힌다. 이렇게 위험한 일인 줄 왜 모르는지 안타까운 일이다.

어느 날 운전을 하며 상가가 있는 복잡한 도로를 지날 때 일이다. 초등학생 서너 명이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중이었다. 차를 멈추고 아이들이 무사히 건너기를 기다렸다. 곧 바로 이어 자전거를 끌고 건너는 어린이가 있어 계속 정지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 어린이가 지나가고 난 뒤에 차를 서서히 움직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뒤에 섰던 차가 중앙선을 넘어서 내 차 옆에 와 경적을 크게 울렸다. 깜짝 놀라 창문을 열고 바라보니 운전자의 표정이 마치 성난 사자 얼굴 그대로이다. 그 험상궂은 얼굴로 입에 담지도 못할 욕설을 마구 퍼부어댄다.

어디 그뿐인가. 벌겋게 상기된 얼굴로 삿대질까지 해댄다. 그리고는 내가 말할 틈도 주지 않고 쏜살같이 가버렸다. 너무 황당하여 그의 차를 바라보며 나는 쓴 웃음만 날렸다.

그 일로 가슴이 콩닥콩닥 뛰고 운전을 할 수 없어 길옆에 주차하고 한참을 진정하느라 힘들었던 일이 있다. 이런 일을 겪고 나니 겁이 나고 걱정이 되어 운전하기가 왠지 두렵다. 운전을 하다 상대방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감정을 참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큰 상처를 준 적은 없는지 새삼 가슴에 손을 얹어 보기도 한다.

연령층이 다양하고 운전 습관이 제각기 다른 운전자들이다. 이런 다양한 운전자들이 무리하게 끼어들기라든지, 특별한 이유 없이 가다 서다를 반복한다든지, 고의적으로 밀어붙이기를 하는가하면 급정거 등으로 상대 운전자를 위협하는 일이 대로 변에서 일어나고 있다. 운전자의 분노를 유발하여 언어폭력은 물론 난투극까지 행하니 끔찍스럽기만 하다.

아무리 화가 나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끼치려는 행위는 자신뿐만 아니라 상대방 운전자와 그 가족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힐 수 있는 행위다. 이러한 운전자의 잘못된 운전 습관과 상대 운전자의 입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데서 비롯된다고 본다. 극도로 개인화된 각박한 사회 환경과 어려워진 경제, 사회적으로 고도화 된 생존 경쟁이 빚어낸 고약한 심성이 아닌가 싶다.

매사를 참지 못하고 즉흥적으로 대하니 참으로 비참하고 서글픈 일이다. 좀 더 나아닌 이웃을 돌아보고 배려하는 시민의식이 성숙한 사회가 이뤄졌으면 한다.

도로 위의 무법자를 단속과 처벌이 강화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 생각된다. 그렇지만 강제성보다는 운전자가 상대방을 이해하고 양보하며 배려하는 운전 자세가 필요하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생각한다면 밝은 운전문화가 이루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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