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편집상무

(김영이 동양일보 편집상무)더불어민주당에 요 며칠새 긴장감이 돌았다. 김종인 대표의 사퇴설까지 흘러나와 당 분위기는 폭풍전야다.

발단은 비례대표 후보 순위다. 김 대표는 자신이 2위로 배정된 것에 대해 당 안팎에서 비난이 거세지자 지난 21일 당무거부에 들어가 22일엔 사퇴설도 흘러나왔다. 그를 화나게 한 것은 자신을 노욕(老慾)으로 치부했기 때문이다.

더민주가 지난 20일 발표한 일부 비례대표 후보들은 누가봐도 도덕성이나 정체성에 대해 의심받기에 충분하다. 1번으로 내정된 박경미 홍익대 교수는 제자 논문 표절 의혹을 샀고 박종헌 전 공군참모총장은 아들이 비리에 연루된 방산업체에서 근무했다. 또 김숙희 서울시의사회 회장은 2012년 한 인터네 사이트에 “자살로 자신의 과오를 묻어버린 대통령”이라며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을 비난하는 글을 올린 사실이 드러났다. 심기준 강원도당위원장은 설악산 케이블카 사업 추진으로 강원시민단체연대회의에서 낙천 대상자로 지목됐다.

반면 그동안 야당 비례대표 후보로 중요하게 배치됐던 청년, 장애인, 농어민, 험지 등 사회적 약자를 대변할 후보들은 대거 축소됐다. 당헌·당규를 위반했다는 지적도 있다. 영입공천이 갑작스럽게 진행되면서 검증 시스템이 작동되지 않았다는 지적과 함께 지도부의 밀실 공천 의혹 파문이 확산됐다.

특히 김 대표의 2번 셀프공천에 대해서 말들이 많았다. 일각에선 정 하려면 끝번호를 맡아 국민들에게 결연한 승리의지를 보여 줬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선이 되면 비례대표로만 다섯번째 금배지라는 점을 부각했다.

아무리 전권이 있다해도 당헌·당규를 어기고 당의 정체성·상징성·도덕성에 맞지 않는다면 비판받는 것은 당연하다.

이 과정에서 욕심있는 노인으로 폄훼됐다고 김 대표는 생각하는 것 같다. “내가 큰 욕심이 있어서 한 것처럼 그렇게 인격적으로 사람을 모독하면 나는 죽어도 못 참아”라고 분통을 터뜨린데서 그의 심경을 엿볼 수 있다.

지난 1월14일 더민주의 선대위원장 및 비대위원장으로 전격 영입된 김 대표.

김 대표가 지난 대선때 박근혜 후보를 도운 경력 때문에 일부 친노인사들은 그의 영입에 거부 반응을 보였지만 풍전등화에 몰린 당을 우선 살려야 된다는 절박감에 대놓고 반발하지는 못했다.

김 대표는 두달여만에 누란(累卵) 위기의 더민주를 안정화시켰다. 구원투수로 들어와 ‘나를 따르라’ 천하를 호령했고 그 덕분에 더민주의 국민 지지도는 회복해 갔다.

공천과정 내내 그의 결기는 당사자 모두를 숨 죽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당 대포’ 정청래(서울 마포을) 의원을 컷오프시킨 것은 그의 강골을 보여준 대표적 사건이다. 6선의 친노좌장 이해찬(세종) 의원도 내쳐 허를 찔렀다. 마땅한 대안도 없이 공천탈락시킨 것은 김종인 표의 대미였다.

그러면서 새누리당을 탈당한 진영 의원을 영입해 또 한번 그의 무한질주를 보여줬다. 장관 재직시 정책적 대립각을 세웠다가 청와대에 밉보여 컷오프된 그를 영입한 것은 한편의 드라마와 같았다.

하지만 질풍경초(疾風勁草)와 같던 그가 당무거부와 사퇴라는 배수진을 쳤다. 이를 보는 더민주 지지자와 일부 국민들은 가슴이 철렁했다. 내분을 잘 추스려 나가는 판에 ‘김종인식 절벽공세’가 몰고 올 후폭풍이 걱정됐기 때문이다. 다 된 밥에 재 뿌리는 것은 아닌지 하는 우려가 그거다.

하지만 김 대표가 중차대한 시기에 사퇴라는 배수진을 치고 당무를 거부한 것은 낡은 정치의 답습이다. 우리는 그동안 많은 정치 지도자들이 수 틀리면 당무거부를 하는 모습을 종종 봐 왔다.

더민주의 기득권 세력들이 김 대표의 서슬퍼런 공천칼에 눌려 찍 소리 못했던 것은 자신들의 잘못을 알고 있어서다. 야당 역할을 잘 했으면 김종인이라는 소방수를 데려 올 필요가 없었다. 김 대표의 독주가 계속될 때 세게 비판하거나 저항하지 못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김 대표와 각을 세웠다가 (그가 당을) 떠나면 어떡하나 그게 두려웠던 것이다.

어찌됐든 김 대표가 이런 당내 분위기를 이용해 사퇴 배수진을 치고 나와 당 장악을 확실히 할지는 몰라도 국민들 눈엔 무책임한 행동, 엄포정치로 비쳐질 수 있다. 정치도 과유불급(過猶不及)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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