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 디카시집 ‘초록세상 하늘궁궐’ 발간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살랑이는 봄바람의 유혹을 떨치고 마음을 가라앉히는 차 한 잔의 여유처럼 정갈하고 반듯한 시들이 독자들의 마음을 다잡아 준다. 이상범(81·사진) 시인의 5번째 디카시집 ‘초록세상 하늘궁궐’이 발간됐다.

여섯 행의 짧은 시, 그 속에 담긴 시상을 찍은 사진은 꽃, 이슬, 이끼, 새, 사람 등 세상 살아있는 것들이 가진 생명력을 아름답게 비추고 있으며, 깨진 유리나 돌에서 그것들이 가진 추상과 기하학을 찾아내 보여준다. 그는 이렇게 세상을 이루고 있는 초록빛 자연이나 푸른 하늘 등에서 느낀 경이로움을 짧은 시를 통해 독자들과 공유하고 있다.

이 시인은 “디카시는 디지털시대에 필름이 아닌 메모리칩을 통해 얻어낸 모든 영상에서 출발한다” 며 “이 가운데 시를 함축한 영상은 사진의 원형을 그대로 사용하거나 기호화해 디자인한 영상을 시와 결합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티 한 점 없는 자연의 모습을 담아 보여줄 수도 있지만, 이 시인은 어떠한 문제 혹은 특징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 자연을 촬영해 그 속에 담긴 의미, 형상을 이끌어내 시와 연결했다.

모두 시 ‘경이로운 성층권’은 ‘기창가의 아기 눈빛’이란 제목의 사진과 함께 실렸다. 무한한 하늘 세상과의 첫 만남에서 느끼는 경외감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시인은 개화하기 직전의 다육식물 자재옥에서 폼페이 베수비오 화산이 폭발 속 돌이 돼버린 모자(母子)의 모습을 목격했고 그것을 ‘화석이 된 모자상’으로 보여준다.

시 ‘조각가 하늘손’에서는 돌에 새겨진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무늬를 ‘하늘손’이 조각해 놓은 것이라고 표현했다.

아프리카 왕관 독수리의 모습을 통해서 정자관을 쓴 옛 시대 늙은 재상의 모습을 포착했고 이 모습을 시 ‘팔순의 노 재상’을 통해 풀어낸다.

사진과 시의 결합은 독특한 재미를 준다. 시의 소재가 된 것들을 눈앞에서 생생히 볼 수 있게 해주고 또 소재가 시 속에서 어떻게 표현됐는지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날 것’ 그대로 실린 사진들도 있지만 컴퓨터 프로그램을 사용해 배경이나 줄기부분을 지운 것들도 있다. 남길 것만 남겨 보여주는 이 작업은 독자들로 하여금 고졸미(古拙美)를 느끼게 한다.

책의 뒷부분에는 시인 이지엽(경기대 교수)씨의 해설이 실려 있다. 이 교수는 작품해설을 통해 “사진과 시적 상상력이 만나는 자리, 평범함을 넘어서는 시적 상상력, 동태적 이미지와 시적 긴장감이 이 시인의 작품에 녹아있다”고 평했다.

이 시인은 1935년생으로 1963년 시조문학 천료, 1964년 신인예술상 수석상, 1965년 조선일보 신춘문예 당선으로 문단에 등단했다. 한국문학상, 중앙일보시조대상, 육당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이호우문학상, 고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시집 ‘별’, ‘신전의 가을’, ‘풀꽃시경’ 등 23권의 시집을 출간했으며 한국시조시인협회 회장, 한국문인협회 시조분과 회장 등을 역임했다.

고요아침. 154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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