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TV 팩션사극 ‘육룡이 나르샤’가 우리 사극의 단골 주인공 이방원을 또다시 새롭게 해석하며 지난 22일 막을 내렸다.

지난해 10월 5일 12.3%로 출발해 방송 내내 경쟁작들을 멀찌감치 제치며 월화극 시청률 1위를 이어온 ‘육룡이 나르샤’는 마지막회에서 자체 최고인 전국 시청률 17.3%를 기록했다.

같은 시간 경쟁한 MBC TV ‘화려한 유혹’은 12.4%, KBS 2TV ‘베이비시터’는 3.5%로 집계됐다.

● 새로운 이방원 상 그려

‘육룡이 나르샤’는 박상연-김영현 작가에게는 실험성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장이었다.

팩션을 내세워 상상력을 발휘했고, 자신들의 전작인 ‘뿌리깊은 나무’와 ‘선덕여왕’에 등장했던 인물과 조직을 다시 끌어와 적재적소에 녹이며 세 작품을 하나로 꿴 작업은 새로웠고 전작들과 비교해보는 재미도 줬다 .

특히 권력욕을 불태운 혈기 왕성한 청년 이방원의 모습과 그의 변화를 강렬하면서도 낭만적으로 그린 점은 이 작품의 포인트.

그간 이정길, 유동근, 김영철, 백윤식, 안재모, 장혁, 안내상 등이 연기해온 역대 이방원의 모습은 냉혹했고 카리스마가 넘쳤으며 광기어린 모습으로 일맥상통한다.

반면 유아인이 연기한 ‘육룡이 나르샤’의 이방원은 정의와 명예를 중시하는 소년에서 낭만적인 청년을 거쳐 권력욕의 화신으로 변모하는 과정에서 다채로운 빛깔을 뿜어냈다.

그렇다고 이방원의 잔혹함이 덜어진 것은 아니다. 역대 사극보다 이방원이 직접 손에 피를 묻히는 장면을 더 많이 배치해 청춘스타 유아인은 더욱 잔인해져야했지만, 드라마는 이방원이 정도전을 직접 베기 전의 장면 등에서 고뇌하는 정치인과 군주의 모습을 배치해 낭만적인 그림을 그려냈다.

● 여말선초 격동기 솟구치는 욕망 표현

‘육룡이 나르샤’는 ‘육룡’ 대신 무협이 날아올랐다.

고려말, 조선초 격동기 사방에서 솟구치고 부딪히는 갖가지 욕망들을 정치인들의 입바른 비전과 꿈으로 제시하기도 했지만, 그 과정은 지난했고 지루했던 게 사실이다.

대신 드라마는 무협에서 방점을 찍었다. ‘뿌리 깊은 나무’에 등장했던 늙은 무림고수 이방지(변요한 분)의 청년 시절이 그려진 ‘육룡이 나르샤’는 이방지를 비룻해 무휼(윤균상)과 척사광(한예리), 길태미·길선미(박혁권) 등 저마다 한가락하는 무술 고수들의 칼싸움을 호쾌하게 그리며 시선을 잡았다. 실제로 시청률이 상승하는 지점도 칼들이 춤을 추는 무협이 펼쳐질 때였다.

초반에는 삼한제일검이지만 글램룩 가수 저리가라하는 화려한 분장과 여성스러운 몸짓의 길태미가 화제의 중심에 섰다면, 후반에는 누구든 붙으면 죽임을 당할 수밖에 없는 최고의 무술 고수이자 여자인 척사광(한예리)이 긴장감을 유발했다.

이방지와 무휼의 성장 속에서 박혁권이 1인2역을 펼친 길태미와 무명의 무사 길선미의 대비가 이뤄지고 이들이 시시때때로, 그리고 갖가지 이유로 검을 부딪치게 되는 모습은 복잡한 정치 입씨름을 잊게했다.

정도전과 정몽주는 저마다의 정치적 이상과 보국안민을 위해 충정어린 열변을 토내했지만, 그들도 정권을 잡기 위해 술수와 모략을 일삼았다면 무사들의 칼싸움에는 오로지 정직한 실력의 대결밖에 없었다.

마지막회에서도 드라마는 이방지와 척사광, 무휼과 길선미의 물러설 수 없는 대결에 이어 이방지-척사광-무휼의 3각 대결을 잇따라 배치하면서 그동안 까먹었던 속도감과 호쾌함을 만회해갔다.

특히 이방지-척사광-무휼의 3각 대결은 춤추듯 유려하게 합을 맞춰 극의 클라이맥스를 멋지게 찍었다.

● 산만하고 느린 전개로 20% 못 넘어

‘육룡이 나르샤’가 화려한 스펙에도 시청률 20%를 넘지 못한 것은 산만하고 느린 전개 탓이다.

‘육룡’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데다, 거기에 더해 반촌을 중심으로 한 민초들의 삶에도 포커싱을 맞추면서 해야할 이야기와 조명해야할 인물이 너무 많아져버린 것이다.

그 과정에서 ‘육룡’은 막판이 되도록 이방원을 제외하고는 날아오르지 못했고. 번민만을 거듭하다가 제풀에 쓰러지기도 했다.

반면, 드라마는 앞장서 무소불위로 걷는 이방원을 내세우면서도 하향식 서술에 머물지 않고 여말선초 백성들의 마음과 혼란에 스포트라이트를 비췄다.

분이(신세경), 무휼, 이방지 모두 새로운 세상을 꿈꾸며 달려왔지만 끝내 자기가 믿었던 세상이 펼쳐지지 않은 것에 좌절했고, 너무 많은 피를 본 이방원의 변화를 지켜보며 무릎이 꺾였지만, 역사는 어느 한사람이 만드는 게 아니고 모두가 모여서 흘러가는 것임을 드라마는 말했다.

조선 3대 왕이 된 태종 이방원은 마지막회에서 자신을 떠난 분이 등을 향해 “너희는 참 어렵다. 바라지도 않고 내 손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백성이 그러하듯”이라며 외로워했다.

산만한 와중에도 백성의 모습과 저력을 의미있게 비춘 것이 이 드라마의 미덕 중 하나로 남을 듯 하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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