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희 논설위원·참례신학대 교수

어떻게 세상의 빈 자리를 나무로 채울 생각을 하셨어요, 하나님을 만나면 여쭤보고 싶다고 누가 그랬다. 그 묻는 자리에 있다면 덧붙여 여쭙고 싶었다. 그리고 어떻게 그 나무에 꽃이 피게 하시고 또 열매도 맺게 할 생각을 하셨어요. 서 있는 것만도 멋진데 잎이 무성해져서 세상을 초록으로 덮고, 꽃피고 열매 맺어 우리가 보고 즐기고 따먹도록 하셨나요. 시각만으로도 충분히 훌륭한데 우리 살 공기를 정화하고, 마음을 위로하고, 먹을거리 공급하도록 창조하셨나요, 하나님. 하도 경이로워서요, 라고.

학교 도서관과 강의동 건물 사이에 목련 나무가 있다. 목련나무는 지대 높은 도서관과 평지인 강의동 입구 가까이 바람 적고 햇빛 많은 곳에서 기분 좋게 잘 자라있다. 키가 훌쩍 크고 가지도 모양 좋게 잘 벌었다. 잎 무성한 철 둥글둥글한 그늘 만들 때 그 아래 서서 지면에 생기는 그림자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나른하게 평화롭다. 나무 아래 만나기로 하고 아직 오지 않는 이를 기다릴 때 돌연 장난기 같은 기록 본능이 발동해도 좋다. 처음에는 화면에 나무를 넣었다가 나뭇잎 배경에 얼굴을 슬쩍 들이미는 겸연쩍은 일도 해볼 만하다. 꽃송이가 깨끗하게 매달려 있는 봄철 나무 아래는 말할 것도 없이 또 좋다. 무엇보다 이 목련 나무는 꽃이 일찍 피니 해마다 대견했다. 아직 썰렁할 때 일찌감치 꽃을 피우는데 202강의실은 목련 나무가 창으로 가득 들어오는 자리여서 꽃을 보며 수업을 할 수 있었다. 이번 학기도 수업 중간 창에 가득 막 피어난 개운한 얼굴들을 보고 깜짝 기뻤다. 창문 가득 휘황한 꽃송이들, 아름다운 시절 기쁨 가득한 시간들에 전염, 학생들도 와아, 함성을 기르고는 곧 고요해졌다. 우리는 잠시 같은 정서였을지, 봄꽃이 주는 위안과 안도, 겨울이 끝났음과 봄이 확실하게 와있다는 그런. 불손한 기후를 견뎌 낸 위안과 앞으로는 대기가 순할 거라는 기대어린 안도의 그런.

춘흥이 도처에 넘치는지 점심 먹고 조금 걷기도 하자고 졸업 뒤 학교에 남은 제자가 분홍빛이었다. 오후 강의로 부담이 되지만 웃음을 거절하기는 어려웠다. 도서관 뒷길로 순순히 따라 나서 보니 꽃들이 곳곳에 피어나고 있었다. 걸으면 보이는 것들이 얼마나 많은지 풀도 나무도 사람조차도 달리 보이는 게 당연할 일. 공간이 사람에게 미치는 영향 같은 얘기를 하고 나서였을까. 좋은 경치 속에 사는 고마움에 대한 부분이었던가, 꽃봉오리 유독 붉게 진한 벚나무 아래를 지나고 있었다. 다시 와서 이 꽃들을 봐줘야 한다고, 만개하면 우리가 이 나무의 노고를 알아서 알아줘야 한다고 옆에서 강조했다. 봄꽃들은 힘든 시간 견뎌서 피니 먼저 피는 꽃만 대견해 하지 말자는 말로 들려 알았다고, 그러겠다고 대답하는데 봄 산책은 걷다 멈추는 게 절반인 모양, 몇 송이 덜 핀 목련 나무들이 모여 있는 곳에 멈춰 섰다. 목련은 참 장하게 피지, 했더니 그럼요 그럼요 반응이 과했다. 어떤 교수님이 목련은 정말이지 아름답게 피는데 지는 모습이 지저분하다고, 사람도 그런 이가 있다고 하셨다고. 그래 많이들 하는 이야기지, 그렇다고는 해도 미련 남기지 않는 것처럼 꽃이 송이 째로 툭 떨어져 땅에 뒹구는 일이나 가지에 남아 마지막 남은 힘을 다해 버티는 일이나 목숨이 지는 절실한 일이라면, 그렇다면. 삶의 방식이 아니라 운명에 관한 방향으로 생각이 향하는 일은 많이 나가는 것이기는 하지만. 때가 되면 져야 하는 목숨, 운명의 슬픔에 대하여, 멋지게 박차고 나가는 일이 아름답더라도 찌질한 시간을 버티고 견뎌야 하는 것이 목숨의 일이고, 멋진 삶만 중한 것도 아니고 보면. 어쨌거나 우리는 명분 나는 선택을 하고 싶고, 할 수 있기 바라는 것도 사실이니, 충만한 봄볕 아래 봄빛 같은 젊은이와 지속한 주제는 아닐 터. 어느 먼 곳까지 목련 피는 걸 보러 갈 일 없고, 기껏 학교 교회 집에 주로 다니는 것이 고작이고 보면 내가 아는 세상에서 가장 먼저 피는 목련꽃은 강의동 옆 그 꽃이리니. 세상에서 가장 먼저 피는 목련꽃과 짧게 피고 지는 봄꽃 보는 이른 봄날 이런 저런 생각들 들춰 쌓는 모양 빠지는 짓은 말기로 했다. 위안과 안도까지만 가기로, 봄은 짧고 꽃 호사 사치스럽게 누리기도 바쁜 좋은 시절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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