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7회 무영문학상 수상작 조해진 ‘여름을 지나가다’

 

(동양일보 김재옥 기자)조해진씨의 장편소설 ‘여름을 지나가다’가 17회 무영문학상 수상작으로 선정됐다.

‘여름을 지나가다’는 올해로 문단 데뷔 12주년을 맞은 조해진 소설가의 장편소설로 여름 한 철 빈 상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젊은이들의 행장기를 다룬 작품이다.

무영문학상은 흙의 작가 이무영(李無影·1908~1960) 선생의 문학 혼과 작가 정신을 기리기 위해 동양일보가 주관하고 음성군이 후원해 2000년 제정된 문학상이다. 수상자에게는 500만원의 상금이 주어진다.

17회 무영문학상은 2015년 3월부터 지난 2월까지 1년 동안 발표된 기성작가의 소설 중 중·장·단편에 관계없이 치열한 작가정신을 가진 역량있는 작품을 선정했다. 심사는 김봉군·김주연·유종호 문학평론가가 맡았다.

시상식은 오는 15일 오전 11시 무영 선생의 고향인 충북 음성군 읍성읍 한불로 이무영 생가에서 열리는 23회 무영제 행사장에서 개최된다.

 

"여름에 빗댄 청춘

재개발·노동자 문제 등 시대의 깊숙한 아픔과 인간에 대한 성찰 그려

내가 써내린 한줄 문장 어느 누군가의 삶에 잔잔한 울림 됐으면…"

 

수상자 인터뷰

조해진(41·서울) 소설가가 17회 무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조씨의 작품 ‘여름을 지나가다’는 심사위원들로부터 정통의 형식 속에서 시대의 깊숙한 아픔을 절제된 감정, 그러면서도 속 깊은 감성으로 묘사한 수작이라는 호평을 받았다.

다음은 작가와의 일문일답이다.

-소설 ‘여름을 지나가다’는 어떤 계기로 탄생했나.

“도시를 부유하는 청춘의 이야기를 담은 ‘아무도 보지 못한 숲’(2013) 출간 이후에 청춘에 대한 작품을 한 번 더 쓰고 싶었습니다. 작품 속 인물들이 지나가는 여름은 청춘의 비유인 셈인 거죠. 폭염과 폭우, 태풍 같은 다양한 날씨가 공존하지만 아직 열매를 맺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러니까 가시적인 성과가 없다는 점에서 여름이란 계절이 저에겐 청춘의 느낌과 유사했습니다. 청춘의 이야기를 담되 현실적이면서도 철학적으로 쓰고 싶었습니다. 도시의 거주지 문제, 재개발이나 노동자 문제 등을 직면하고 싶었고 한편으로는 유한한 존재일 수밖에 없는 인간에 대한 성찰도 담고 싶었습니다. 그런 고민 속에서 곧 철거될 가구점과 소규모 놀이공원에서 만나고 겹치는 인물들을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작품을 세상에 내 놓을 때 어떤 기분이 드는지.

“여러 기분이 듭니다. 단 하나의 기분일 때는 없었습니다. 홀가분하면서도 아쉽고, 아쉬우면서도 두려우며, 두려우면서도 애틋하죠. 문학은 상업적 성취에 연연해선 안되겠지만 요즘은 독자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욕심도 생깁니다. 저와 함께 작업한 에디터나 출판사가 노동한 보람을 느낄 수 있을 정도, 나아가 능력 있는 작가들의 책들이 계속 출간될 수 있도록 독자의 관심을 받으면 좋겠습니다.”

-작품을 구상할 때 특별히 의식하는 것이 있다면.

“제 작품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 독자들 저마다 이 세계를 의심하는 질문 하나를 마음에 품는다면 작가로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을 것입니다. 답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작품을 쓰려고 노력합니다.”

-평소 이무영 선생 또는 그의 작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농민소설의 기원이자 대가라고 알고 있습니다. 가끔 노년의 삶을 상상해보는데, 한적한 농촌에서 식물들과 공존하며 집필하는 모습은 그 가능한 모습 중 하나입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그 분에 대해 더 많이 알아가겠습니다.”

-소설가가 되겠다고 결심한 것은 언제부터였고, 어떤 계기가 있었는지.

“어렸을 적부터 유일한 꿈은 글을 쓰는 사람이었고 그 외엔 생각해 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저에게 글을 쓰는 사람이 곧 소설가는 아니었습니다. 소설가는 너무 먼 곳에 있는 아득한 존재 같았습니다, 대학에서 소설창작 강의를 들었을 때 의외로 호평을 받아 계속 쓸 수 있는 힘을 얻었습니다. 또 선배 소설가인 이순원 선생의 독려도 한 몫 했습니다.”

-이번 수상작을 통해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세상이 타인의 고통에 점점 무감해지는 것 같습니다. 타인의 고통에 나 자신이 연루되어 있다는 걸, 그들의 고통에 빚을 지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조금만 더 의식하면 좋겠습니다.”

-현재 구상하고 있는 작품과 앞으로의 계획은.

“타인의 고통, 소통과 유대, 이런 주제로 작품 활동을 해왔습니다. 요즘은 어떤 근원에 대해 관심이 많습니다. 근원을 찾아가는 역사소설을 쓰고 싶은 소망이 있습니다. 그런 장편을 구상중에 있고 그와 별개로 올해엔 세 번째 작품집을 엮을 계획입니다.”

 

 

 

줄거리

‘여름을 지나가다’는 민, 수, 연주 등 세 인물이 여름 한철을 지나가는 내용이다. 민과 수는 곧 폐허가 될 수의 아버지 가구점에서, 수와 연주는 철거를 앞둔 쇼핑센터 옥상에서 가까스로 소통하지만 미래를 장담할 수 없는 그들의 소통은 불완전하다.

민은 회계사로 안정된 삶을 살고 있었으나 결혼을 앞둔 애인이 회계 감사보고서를 맡았던 회사가 아니라 그 회사에서 해고하려는 노동자 편에 서면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본의 아니게 애인의 내부고발을 폭로하는 역할을 하면서 이별을 하게 되고, 그사이 노동자의 자살을 겪으며 죄책감을 안고 퇴사한다. 그리고 현재 그녀는 충동적으로 선택한 직업인 중개사무소 보조원 일을 하며 불안한 주거로 흔들리는 다양한 사람들을 목도한다.

한편 수는 평범한 대학생이지만 아버지의 무모한 사업으로 신용불량자가 된다. 휴학 중인 그는 돈이 되는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오래된 쇼핑센터의 옥상에 마련된 소규모 놀이공원에서 일을 하게 되고, 그곳에서 연주를 만난다. 수는 가난하지만 건강하게 생활하는 연주에게 끌리지만 자신에게 미래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다가가진 못한다.

 

 

심사평

 

17회 무영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조해진씨는 인간이 처한 안팎의 고통을 찬찬히 살펴보고 그것을 고전적인 문체로 보여주는 단정한 소설가로 평가돼 왔다.

특히 갖가지 실험적인 구문들이 난해하게 얽혀있기 일쑤인 작금의 많은 젊은 소설들 가운데에서 이렇듯 야무진 문법은 그 자체로 독특하고 소중하다.

전통의 편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정확성의 문체는 자신의 소설에 대한 확실한 자신감의 표현이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러한 능력의 바탕 위에서 등단 이후 불과 10년 남짓한 활동기간 소설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와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등 적지 않은 좋은 작품들이 나온 것으로 보인다.

수상작은 장편 ‘여름을 지나가다’이다.

6월에서 8월에 이르는 여름 한 철 빈 상가를 중심으로 벌어지고 있는 젊은이들의 행장기(行狀記)라고 할 수 있는 이 작품의 내용은 얼핏 보아 무의미한 일상이다.

그러나 작가는 지극히 비주관적인, 거의 즉물적이라고 할 수 있는 문체로 묘사하고 있는 의미 없는 젊은이들의 일상이 얼마나 비극적인 감성과 연결된 것인지, 그리고 그것들이 결국 알바와 비정규직에 의존한 오늘날 젊은이들의 삶이 지닌 피폐성을 나지막한 오열의 목소리로 전해준다.

그 목소리에는 고발과 위로가 함께 담겨있다.

선정과정에는 조해진씨 보다 많은 작품들을 쓴 선배, 그리고 그를 추격하고 있는 여러 후배 소설가들이 더불어 거론되었다.

그러나 정통의 형식 속에서 시대의 깊숙한 아픔을 절제된 감정, 그러면서도 속 깊은 감성으로 묘사하고 있는 조씨를 비켜가거나 넘어서는 일은 가능하지 않았다.

조씨의 수상을 축하한다.

<심사위원 유종호·김주연·김봉군>

 

수상소감

일단 기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많이 부끄럽습니다. 문학 앞에서는 그저 늘 부끄럽습니다. 새삼 다짐합니다.

세상의 박수를 받지 않아도 쓰면서 스스로 즐거워하며 책상을 지키는 작가로 남겠다고, 끈기 있게 세상에 질문을 던지는 작가가 되겠다고 말입니다. 다시 신발끈을 묶은 뒤 의연하고 강하게 단련되는 길을 걷겠습니다.

그 길의 끝에 단 하나의 문장만이 검은 나무처럼 서 있다 해도 저는 행복할 것입니다. 그 문장이 누군가의 삶에 잔잔하고도 잊히지 않는 파문을 일으키길 늘 바라고, 또 바랍니다.

격려를 보내주신 심사위원 선생님들께, 그리고 무영재단과 동양일보사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약력

△1976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국문학과 졸업

△2004년 ‘문예중앙’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작품집 ‘천사들의 도시’ ‘목요일에 만나요’

△장편소설 ‘한없이 멋진 꿈에’ ‘로기완을 만났다’ ‘아무도 보지 못한 숲’ ‘여름을 지나가다’

△2010년 대산창작기금, 2013년 신동엽문학상, 2014년 젊은작가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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