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1세의 정호승 시인(왼쪽), 정호승 시비(오른쪽)

(동양일보 박장미 기자) 올해로 정호승(鄭昊昇·1916~?) 시인 탄생 100주기를 맞았다. 정 시인은 암울한 일제강점기, ‘모밀꽃’ ,‘망두석’ 등 민족과 고난을 서정으로 승화시킨 많은 작품들을 남겼다. 특히 그의 비판적인 농민시는 당시대 어두웠던 농민들의 현실을 아름다운 감성으로 잘 묘사하고 있다.

정 시인은 아버지 정운익(鄭雲益)과 어머니 이순세(李淳世)씨의 3남 1녀중 장남으로 충주시 교현동(당시 충주군 충주면)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영택(英澤).

1935년 서울에서 소설가 지봉문과 동업으로 종로 4가에 ‘경충무역사’라는 운수사업체를 운영했다. 그 건물 2층에 조선문학사를 열어 1930년대의 대표적 문예지 ‘조선문학’을 이무영, 지봉문과 함께 발행한다.

서지학자 백순재씨는 ‘조선문학’에 대해 “당시 조선문학의 광장이라 할 만큼 중진 작가들의 작품을 게재하는 한편 경향주의 문학을 배제하고 순수문학의 터전을 닦는 데 공헌했다”고 ‘한국문학대사전(문원각,1973)’의 해제에서 밝혔다.

당시 문단에 큰 족적을 남긴 ‘조선문학’은 1939년 통권 19권까지 발행됐다. 정 시인은 1937년 6월호까지의 발행인이었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으로는 시 ‘모밀꽃1·2’, ‘망두석’, ‘불안이 풀리든 날’, ‘복숭아’, ‘그 어떤 풍경’ 등이 있다. 특히 ‘모밀꽃’은 아들 태준(작곡가·시인·전 충주여고 교장)씨가 곡을 붙여 아름다운 가곡으로 재탄생됐다.

광복 직후 사회주의 사상으로 옥고를 치르기도 했으며 6.25 한국전쟁 중에 월북했다. 가슴에 스며드는 농민시로 문학계에 큰 업적을 남겼으나 ‘민족분단’이란 비극적 상황은 그의 업적을 폄훼하는 결과로 나타났다.

1988년 정부가 납·월북 작가 해금 조치를 취하고 나서야 그의 작품 출판이 가능해졌다. 이후 1995년 유족에 의해 온누리출판사에서 시집 ‘모밀꽃’이 발간됐으며 정 시인을 기리기 위한 ‘호승시문학상’이 2002~2007년 개최됐다. 2013년 6월에는 정 시인의 시비가 충주시 가금면 창동리 청금정에 세워졌다.

태준씨는 “100주년을 기념해 정호승 연구 논문들을 엮어 책으로 발간할 예정이며 작고한 충청지역 근·현대 시인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부친과 부친의 후배인 권태응 시인의 작품들에 곡을 붙여 추모의 밤 행사를 가질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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