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기 환자에 집착적으로 헌신하는 호스피스 간호사

(연합뉴스)죽음은 모든 인간이 도달하게 될 불가피한 종착역이지만 죽음만큼 생각을 꺼리게 되는 주제는 없다.

‘칸의 총아’ 미셸 프랑코 감독은 영화 ‘크로닉’(chronic)에서 바로 이 죽음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할지 진지하게 고민할 것을 제안한다.

데이비드(팀 로스)는 죽음을 앞둔 환자들을 돌보는 호스피스 간호사다. 누구보다도 성실하게 환자들을 보살핀다.

환자들이 갑작스럽게 내뱉은 토사물이나 지린 변도 묵묵히 닦아 낸다. 그가 환자와 가족보다도 더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

그런 데이비드는 독특한 습성이 있다. 자신이 맡은 환자의 가족인양 행사하는 것. 때로는 아픈 아내를 잃은 남편이 되었다가 때로는 투병 중인 형을 그리워하는 건축가가 된다.

말기 환자에 대한 헌신적인 봉사와 괴상한 환자가족 행세는 그의 ‘불행한 과거’에 기인한 것으로 보인다.

영화는 그 불행한 과거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데이비드와 딸, 데이비드와 전 부인간 대화에서 간접적으로 언급될 뿐이다.

데이비드의 불행한 과거를 아는 한 환자가 그에게 ‘무언가’를 요구한다. 그리고 영화는 충격적인 결말로 끝이 난다.

‘크로닉’은 친절한 영화가 아니다. 기승전결 이야기 구조가 뚜렷하게 드러나지 않고 사건의 원인과 결과가 명확히 설명되지도 않는다.

영화는 이러이러한 일이 있었다는 것을 관객들에게 보여주고는 관객 스스로 생각하게 한다. 그래서 카메라 움직임이나 쇼트의 구성이 단순하다. 대개 카메라는 고정돼 있고 클로즈업은 거의 없다. 카메라가 어떤 부분을 보라고 강요하지 않고 프레임 속 인물들의 언행을 단순히 전달할 뿐이라는 의미다. 영화의 상영시간이 94분인데 영화의 전체 쇼트는 97개로 적은 편이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감독의 이런 의도가 집약돼 있다. 미셸 프랑코 감독은 “이 결말로 끝내기 위해 94분의 러닝 타임 중 90분을 사용했다”고 밝힐 정도다.

감독은 자신의 할머니와 간호사간 실제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의 할머니는 뇌졸중으로 쓰러져 반신 마비로 여생을 침대 위에서 보내야 했다. 호스피스 간호사가 가족 대신 매일 할머니를 지극 정성으로 도왔다.

그 간호사는 할머니가 숨진 후에도 장례식과 애도 기간 할머니 가족의 곁을 지켰다.

감독은 그런 간호사의 헌신적인 행동에 감동해 간호사와 많은 이야기를 나눴고, 간호사가 불치병 환자와 자신의 감정에 대해 털어놓은 이야기의 상당 부분을 이 영화에 반영했다고 한다.

14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9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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