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기영 논설위원·영동대 교수

영국에서 그린벨트가 구체화된 것은 1935년부터이다. 런던도시계획위원회는 공공녹지와 레크리에이션 공간을 제공하려는 목적으로 런던주위에 환상녹지대 설치를 제안하게 되고, 이로 인해, 1938년에는 런던지역에만 적용되는 그린벨트법이 제정된다. 주로 여가활동과 농경 용도만으로 토지의 이용을 제한하고자 하였으며, 이를 위해 공공 및 민간 토지소유주와 협정을 체결하였다.

그린벨트 법이 영국 전역에서 실시된 것은, 1947년 도시 및 농촌계획법에서 지방정부의 그린벨트를 포함한 개발계획 수립의무를 부여하면서 부터이다. 1950년대 중반 이후에는 그린벨트의 성격이 변모하기 시작한다. 시 외곽 녹지의 경제적 가치를 깨달은 주민들과 시 외곽에 여가 및 휴식 공간을 필요로 하는 도시민들은 정부에 녹지를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린벨트를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환경친화적 개발방안을 모색하도록 압력을 행사하였다.

1970년대 이후에는 대도시권 쇠퇴와 도심 재개발이 새로운 사회문제로 대두되면서, 그린벨트 개발론자들의 목소리가 강화된다. 투기적 개발을 목적으로 한 개발업자들이 개발허가를 얻기 위해 토지관리를 의도적으로 소홀히 하여 녹지대를 변형시키는 등 그린벨트 훼손이 증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린벨트 보전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공고하고 개발압력도 상대적으로 낮아 영국 그린벨트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는 여전히 높다.

영국에서 그린벨트는 초기에는 개발을 억제하고 토지를 보존하는데 초점을 두었으나 점차 효율적 이용이 강조되고 있다. 특히 도시민을 위한 여가공간으로서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것이 전반적인 추세이다.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활동에는 야영, 자연학습장 뿐만 아니라 골프장, 축구장의 설치가 허용되어 보다 광범위하게 지역내 주민에게 편익을 제공하도록 장려하고 있다.

영국의 그린벨트 관리는 철저한 자치단체 중심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신청한 그린벨트 지정요청에 대해 중앙정부는 단지 허가권만을 가지며 허가 후 일체의 관리책임은 전적으로 자치단체에 있다. 지방자치단체는 일반적으로 여가공간의 확보, 생활환경의 쾌적성 증대를 위해 그린벨트 지정면적을 확대하고자 노력한다. 동시에 지역주민들도 그린벨트내 주택이 쾌적성으로 인해 다른 주택에 비해 오히려 주택가격이 높기 때문에 그린벨트의 확대 및 보전을 희망하고 있다. 반면 중앙정부는 저소득층의 주택용지 확보, 도시지역의 경제회복 등의 이유로 그린벨트 확대에 매우 소극적일 뿐만 아니라 오히려 부분 해제를 유도하고 있는 실정이다. 토지이용상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농경지와 레크리에이션 및 공익사업이다. 특히 대도시 중심의 저소득층이 사는 지역 주민을 위해 그 필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극장, 박물관, 전시관 등과 같은 문화시설, 축구장, 골프장, 스키장 같은 스포츠시설, 야영장, 하이킹코스, 산책로, 자연학습장 등과 같은 레크리에이션 시설들이 허용되고 있다.

영국에서도 그린벨트 경계설정은 워낙 이해관계가 첨예해 최종적으로는 자치단체, 중앙정부, 주민과 개발업자들간의 정치적 협상과 실용주의적 사고에 의해 결정되어진다. 그린벨트 지정 및 관리과정에서 중앙정부와 자치단체 사이에 발생하는 갈등을 조정자 제도라는 독특한 제도를 통하여 해결하고 있다. 그린벨트와 관련된 갈등문제 해결을 공권력에 의존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 하면서 중립적인 제3자를 통하여 공익과 사익을 조정하는 비공식적인 방법이 바람직하다고 제안된 바 있다. 이 같은 제안을 영국의 농촌위원회가 받아 들여 조정자제도가 체계화 되었다. 그린벨트 지정지역에 조정자를 임명하면 조정자는 위원회를 구성하여 그린벨트와 관련된 여러 사항을 조정 및 중재하게 된다.

영국에서 그린벨트는 도시주변의 레크리에이션 기회를 제공하거나 농촌경관을 제공하는 등 자연경관을 보호하면서도 지역민의 여가공간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접근성과 개방성은 그린벨트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공원을 산책로 등으로 개방하고 운동을 할 수 있는 장소들을 마련하고, 보행과 자전거 이용증대를 위해 쾌적한 환경을 조성하는 노력들이 대표적이다. 때문에 주민들은 개방녹지와 자기 지역에 대해 높은 자부심과 선호를 보이고 있다.

영국의 그린벨트는 도시의 외연적 확산 방지 및 녹지 보호를 위해 국가가 인위적으로 대상지역을 선정하였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그린벨트제도와 흡사한 면이 많다. 그러나 영국의 경우 그린벨트가 지역주민들의 지지에 의해 더욱 확대되어 왔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의 제도와는 큰 차이가 있다. 이는 무엇보다 지역민들이 그린벨트가 여가공간 확보와 생활환경의 쾌적성에 긍정적 역할을 한다고 인식하기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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