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제시보다는 악재 수습에 정치공학적 판짜기에 주력

4.13 총선은 유권자들이 기준으로 삼을 만한 이슈나 정책 대결이 사실상 전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2012년 19대 총선 때는 그나마 경제민주화, 복지 논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이 '뜨거운 감자'가 됐지만 이번에는 그런 쟁점조차 없었다는 것이다.

여야 각당은 선거전 내내 각종 악재를 수습하고 서로에게 유리한 판을 짜기 위한 정치적 공학적 셈법에 집중했고, 막판에 "미워도 다시 한번"을 외치며 '읍소' 모드로 지지층을 자극하는 경쟁으로 선거운동을 마무리했다.

막판 네거티브 과열·혼탁 양상도 재연됐고, 이슈와 정책이 사라진 자리에 구호와 프레임, 정치공학만 남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공천 파동 '악재'로 출발한 새누리, 막판 '읍소' 전략 = 야권 분열로 당초 180석까지 장담했던 새누리당은 극심한 공천 내홍으로 전통적인 지지층마저 고개를 돌린 최악의 상황에서 선거전에 돌입했다.

텃밭인 영남에서조차 당 후보가 공천 탈락 후 무소속으로 출마한 후보는 물론 야당 후보에게도 지지율이 밀리는 상황이 속출했고, 투표장에 나오지 않겠다는 50∼60대가 늘어나면서 원내 과반은 커녕 130석 안팎에 불과한 성적을 얻을 수 있다는 우려마저 나왔다.

집권여당으로서 미래 비전과 국정 방향을 제시하는 전략을 내놓기 보다는 선거 중반을 넘어서면서 새누리당은 '반성 모드'로 전환했고, 선거 운동 기간 내내 읍소와 사과를 거듭하며 지지층 결집을 호소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된 31일 0시 서울을 시작으로 12일까지 13일간 136개 지역을 다니며 지원 유세를 이어간 김 대표는 가는 곳마다 자성모드를 이어갔고, 당에서도 '반다송(반성과 다짐의 노래)'을 선보이며 당내 계파 갈등이 해소됐다고 어필하는데 주력했다.

새누리당은 국정 운영의 발목을 잡는 '야당 심판론'과 여당 과반의석 실패시 '대한민국 위기론'을 내세우며 박근혜 정부 성공을 위해서는 과반 확보가 절실하다고 호소하는 전략으로 일관했다.

그나마 경제사령탑으로 영입된 강봉균 중앙선대위원장이 내세운 '한국판 양적완화' 공약이 논쟁거리로 부상했지만 선거 이슈를 주도하지는 못했고, 나머지 공약들도 재원 확보 방안이나 불투명한 선심성 포퓰리즘이라는 지적을 피해가지 못했다.

●더민주, 새누리와 싸우랴·국민의당 저지하려 = '경제민주화의 상징'으로 영입된 김종인 선대위 체제는 친노 핵심 인사 공천 배제로 국민적 관심을 모았지만, 김종인 대표의 비례대표 2번 공천 파동과 당 중앙위의 비례대표 순위 조정 파동을 거치면서 역풍에 휘말린 상태에서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비례대표 공천 파동은 상승세를 타고 있던 호남 지지세를 거꾸로 되돌렸고, 그 틈을 국민의당이 파고들며 호남 여론은 급속히 악화되는 쪽으로 돌아섰다.

더민주는 수도권의 '일여다야(一與多野)' 구도를 바꾸기 위해 후보단일화 요구로 끈질기게 주장하고 국민의당을 압박했지만 별다른 성과가 없자, 투표용지 인쇄일(4일)을 앞두고서야 "여당에 맞설 수 있는 후보를 밀어달라"는 소극적 투표 단일화론으로 전환해야 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행보도 논란이 됐다. 국민의당이 호남의 반문(반문재인)정서를 자극하면서 문 전 대표의 호남권 유세를 놓고 김 대표와 문 전 대표측간의 이견이 공개적으로 표출되며 혼선을 노출하기도 했다.

결국 문 전대표는 김 대표를 설득한 끝에 지난 주말 광주를 비롯 호남지역을 전격 방문, 정계은퇴와 대선 불출마 선언이라는 배수진까지 치면서 호남 민심을 되돌리려 안간힘을 썼다.

호남 민심 반전을 위해 긍정적인 방문이었다는 평가이지만, 호남의 판세 자체를 뒤집을 수 있을지는 투표함을 열어봐야 알 일이다.

정장선 총선기획단장은 총선전 마지막 주말인 지난 10일 "100석도 어렵다. 거대 여당 출현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우려했다.

●국민의당 '야권 단일화' 압박 뿌리치고 '마이웨이' = 국민의당은 창당 전부터 각종 설화와 시도당 창당대회 과정의 폭력사태 등 악재가 잇달아 터져나오면서 안철수 상임 공동대표의 더민주 탈당 직후 치솟았던 지지세를 깎아먹었다.

더민주의 야권 통합 제의에 안철수-천정배-김한길 '트로이카'가 한때 흔들렸고, 결국 야권연대에 대한 견해 차이로 김한길 선대위원장이 당직을 사퇴하는 등 선대위 체제에 균열이 가해진 상태에서 선거운동에 들어갔다.

그러나 안 대표는 공식 선거운동 돌입 이후에도 지속된 더민주는 물론 진보진영의 야권후보 단일화 압박을 뿌리치고 '제 3 정당론'을 끝까지 고수하면서 지지율 반등의 계기를 다시 마련했다.

선거 초반에는 호남에 당력을 총집중했고, 이후에는 '녹색바람'의 수도권 확산 전략에 집중했다. 이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국민의당 상승세가 확인됐고 안 대표는 "깜짝 놀랄 만한 결과도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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