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 동양일보 편집상무

(김영이 동양일보 편집상무)엄살과 허세, 종북몰이가 판 친 20대 총선이었다. 여·야할 것 없이 단체로 무릎꿇고 석고대죄 하는 모습이 익숙할 정도다. 선거를 앞두고 북한이 또 무슨 짓을 하려나 우려했지만 의외로 조용했고, 오히려 우리 쪽에서 막바지에 북한을 활용한 의심을 거둘 수 없게 한 선거였다.

충북은 새누리당의 8개 선거구 싹쓸이 가능성에 더불어민주당이 그것만은 막아달라고 애원하는 형국으로 반전됐다. 특히 청주권 4석 가운데 상당을 제외한 서원·흥덕·청원 3개구 선거 결과가 더욱 주목된다. 이들 선거구 결과에 따라 새누리 싹쓸이냐, 더민주 선방이냐가 가려지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 어느 당이 몇 석을 차지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영남, 그중에서도 대구의 민심이 어떻게 흐를 지가 관전포인트가 아닐까 싶다.

대구·경북(TK)은 전통적으로 새누리당 텃밭이다. 박정희에서부터 전두환(대구공고 출신), 노태우 전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3대에 걸쳐 내리 대통령을 배출한 곳이다. 그러니 그쪽 사람들의 자존심, 다시말해 ‘대통령은 우리 것’이라는 패권적 행태는 무의식 속에 잠재해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대구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 삼성라이온즈가 코리안 시리즈에 진출해 안방에서 패하면 대구 관중들은 난동을 피우곤 했다. 우승은 당연히 우리 건데 그렇지 못한 것에 대한 반발심리, 즉 패권의식의 발로로 여겨진다.

이런 곳에 총선을 거치면서 변화의 바람이 감지되고 있다니 한국 정치 미래를 위해 바람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변화가 고질적인 영·호남 극단정치를 청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면 욕심일까.

이번 총선에서도 대구는 새누리당의 ‘비박계 학살공천’이라는 국민적 반감이 없었다면 선거 결과가 과거와 다를 바 없을 것이다. 워낙 단단한 콘크리트 지지층이다 보니 새누리당이 대구에서 한석이라도 잃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할 일이다.

그런데 새누리당은 이런 콘크리트 지지율을 너무 믿고 조자룡 헌칼 휘두르듯 비박계를 작살내고 진박후보를 내세웠다. 막대기만 꽂아도 당선될 거라는 오만함의 극치를 보여주다 큰 코 다치게 생긴 것이다.

새누리당에서 쫓겨나 대권 후보로 급부상한 유승민(무) 후보는 일찌감치 당선을 확정지었다. 역시 새누리당에서 공천배제된 유승민계인 류성걸, 권은희 후보도 진박 후보들과 접전, 격변을 예고하고 있다. 새누리 탈당파인 주호영 무소속 후보도 마찬가지다. 오히려 관심은 진박후보들이 국민의 선택을 받느냐, 못받느냐로 기운 느낌이다.

여기에 더민주 김부겸, 더민주에서 탈당한 홍의락 무소속 후보도 여론조사에서 우위를 보이고 있어 선거결과를 더욱 흥미진진하게 만들고 있다.

대구의 국회의원 의석 수는 12석이다. 4년전인 19대 총선에선 새누리당이 싹쓸이 했다. 그런데 이번엔 양상이 달라 최악의 경우 6석이 날라갈 판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근혜 대통령의 정치적 고향에서 판세가 이상해지자 후보들은 뿌리깊은 ‘박정희 정서’를 자극하거나 박근혜 식물정부를 들먹이며 이반된 대구민심을 돌리려고 애썼다. 심지어는 ‘미워도 버리지만 말아달라’며 무릎꿇고 사죄하기에 이른다.

박근혜 정부도 여지없이 선거개입 의도를 드러냈다. 박대통령은 지난달 10일 대구의 진박후보들이 고전하는 지역구를 찾았는가 하면 이달초엔 충북과 전북을 하루만에 방문했다. ‘경제행보’라는 청와대의 해명은 차라리 ‘창조선거행보’로 들렸다.

정부도 지난 8일 해외 북한식당에 근무하던 북한 종업원 13명의 집단 탈출을 대대적으로 알린 데 이어 북한 정찰총국 대좌 등 북한 고위층의 국내 망명을 뒤늦게 공개했다. 정부가 탈북·망명 사실을 공개하고 신속히 시인한 것은 이례적이다. 그래서 ‘선거용’이라는 지적을 받는다.

이러한 엄살과 북풍몰이가 대구에 어떤 영향을 미칠 지가 관건이다. 사실 대구에서의 무소속 돌풍은 비박계 학살공천에서 비롯된 정치적 파동에 기인한 것이지 대구 정서의 구조적 변화가 가져온 것이라고 속단하기는 이르다.

대구사람들이 투표하러 가면서 ‘우리가 남이가’ 할 것인지, 선거과정에서 보여준 변화의 바람을 한국정치의 미래로 승화시킬지는 그들 손에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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