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창선 시인

“양심은 나를 성장시키는 영혼의 소리입니다. 때문에 양심을 버리고서는 우리는 성공할 수 없습니다.”

대단한 일이다. 인천의 한 고등학교에서 무려 62년간 무감독시험을 실시해왔다는 기사는 매우 감동적이었다.

무형문화재 등록을 추진하기위해 이 학교 출신 동문 교수들이 ‘무감독시험 60년의 성과와 의미’라는 제하의 연구용역도 마쳤다고 한다. 이 보도를 읽으면서 양심(良心)이라는 단어를 네이버 사전에서 찾아보았다. ‘[명사]사물의 가치를 변별하고 자기의 행위에 대하여 옳고 그름과 선과 악의 판단을 내리는 도덕적 의식’이라고 정의 되어 있다. 이러한 내용이 강조되는 교육이라면 어두운 마을의 밤길에 지갑을 떨구고 왔어도 안심할 수 있을 것이다.

학교에 근무를 하다보면 한 학기에 몇 차례 시험감독을 해야 한다. 대부분의 대학들은 상대평가의 방법으로 성적을 산출한다. 시험이 시작되기 전 조금 일찍 강의실에 들어가서 학생들에게 책상의 줄을 맞추라느니 모든 짐을 들고 일어나서 줄을 바꿔 앉으라느니 잔소리를 한다. 이때 나는 조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한다. 학생들을 모두 잠정적 부정행위자로 몰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해서다. 그러나 당사자들은 아무 불평이 없고 당연하다는 표정이다. 오히려 안도하는 눈빛이다. 그 안도의 눈빛 속에서 나의 미안한 마음이 잠시 위로를 받는다. 학생들과 무언의 합의 하에 나는 철저한 감시자가 되어 고요한 강의실을 이리저리 휘젖고 돌아다니기까지 한다. 그러면 학생들은 집중도가 훨씬 높아져서 안심하고 시험을 치른다. 한 곳에 앉아서 신문을 본다든지 시집을 들고 들어가 읽는다든지 하면 오죽 좋겠는가. 대학생들이 무슨, 양심껏 하게 둘 일이지 하면 안 된다. 이내 태도 불량의 감독관이 되는 것이다. 어느 대학이든지 상황은 마찬가지일 것이다.

다수의 양심적인 학생들을 의심해야하는 그 순간들이 나는 싫다. 양심선언을 통하여 60년을 넘게 무감독시험을 이끌어온 학교가 있다니. 그 학교 교육목표의 절반은 이미 성취한 것이라 장담해도 될 것 같다. 그 학교의 졸업생들은 그렇게 3년을 교육 받고 나와서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삶의 마디마디 멈춰 서서 무감독시험의 선서를 되뇌이면서 양심의 잣대를 저울질할 것이라 생각된다.

이러한 양심의 선서가 소중하게 느껴지는 것은 요즘 불행한 사건들이 난무하는 세태 속에서 인간의 가치가 외면당한다는 데 있다. 기계주의적 과학시대에 인간들은 욕망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앞으로 인간은 더욱 불행하게 짐짝처럼 취급 될 것이라는 예감이다. 인공지능의 시대가 도래 하면서 윤리의 문제는 더욱 비중 있는 테마가 되었다.

소위 알파고의 아버지라 불리는 구글 딥마인드 최고경영자 하사비스는 카이스트 특강에서 “모든 강력한 기술과 마찬가지로 인공지능(AI)도 도덕적이고 책임감 있게 사용 돼야한다”고 강조하였다.

인공지능이 보편적으로 사용되는 시대에 앞서서 우리는 귀담아 들어야 하는 대목이라고 생각 된다. 새로운 시대에 대비하여 새로운 윤리관이 정립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알파고의 등장은 제2의 산업혁명에 비견되는 만큼 분명 인간 미래의 삶은 상상하기 어려운 양상으로 전개될 것이라 생각 된다. 예술의 영역에까지 인공지능이 이미 자리하고 있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미래 문명사회를 디스토피아라고 규정한다.

영화에서 자주 보았던 로봇 인간의 파괴적 잔상이 오래 기억되기 때문일 것이다. 딥마인드는 알파고를 의료와 로봇 스마트폰에 적용하여 기후 질병 유전학 물리학 엔터테인먼트 등에서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사는 AI가 각각 렘브란트 또는 고흐의 화풍으로 세계명화 등을 그리도록 설계했다고 한다. 전시회까지 열어 900만원대에 팔기도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인간은 과연 인간답게 살 수는 있을 것인가. 과학기술의 발달로 인간들이 무서운 속도로 사물화 되어가고 있다. 과학발전의 단계에서도 양심의 선서를 해야 한다. AI 설계 시에 반드시 윤리강령을 첨부해야 한다. 더욱 경악스런 일이 벌어지기 전에 새로운 도덕 재무장 운동이 필요한 때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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