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간 자주 듣게 되는 대중가요가 있다. ‘못 간다고 전해라’로 죽음을 거부하고 있는 배짱 두둑한 가사는 여러 가지 패러디까지 등장하면서 많은 이들에게 웃음을 안겨주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우리 민족만이 느낄 수 있는 한 맺힌 멜로디와 가사가 맞물려 죽음에 대한 거부를 할 수 있음에 대리만족을 느끼게도 한다. 그런데 백수를 누리며 잘 사는 일만큼 중요한 것은 준비되어진 죽음이라고 생각한다.
죽음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은 다른 견해와 이견차이를 보인다. 신학자 찰스 스펄전은 죽음은 또 다른 영원성의 시작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철학자 셀리 케이건 교수는 죽음은 모든 것의 끝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공통적으로 느끼는 것은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으며 예측불허라는 점이다. 그러면 죽음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 것일까.
많은 신앙인들은 찰스 스펄전의 의견에 동의할 것이다.
신앙인들은 영원성을 믿고 있기 때문에 천국을 소망하는 신앙인들은 어쩌면 현재의 신앙생활이 영원함의 준비를 하는 과정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서 자신을 기꺼이 희생하며 내려놓을 수 있게된다.
한 두 번 이웃과 소통하며 마음을 내어줄 때 이미 작은 천국을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천국을 소망하며 의미 있는 삶을 영위하기 원하는 사람들은 ‘다움’이라는 말에 삶의 의미를 부여하며 살아간다. 살기 어렵고 각박하다고 말 하지만 돌아보면 좋은 사람들이 더 많이 있다. 이웃을 돌아 볼 줄 아는 향기로운 ‘사람다움’, ‘신앙인다움’의 삶이 바로 ‘다움’의 삶이다. 이러한 삶의 자세는 자신 뿐 아니라 주위를 행복하게 만든다. 자신으로 인하여 이웃이 행복하면 소리 없는 힐링이 시작된다. 조금씩 이웃을 생각하며 양보하고 나누면서 살아가는 일이야 말로 종교를 초월한 아름다운 삶의 자세일 것이다.
한 편의 영화를 관람하면서 불꽃같은 아름다운 삶을 만났다. 화면속의 청년 시인 ‘동주’는 천부적인 문학의 꿈을 펼치기도 전에 차가운 일본 교도소에서 알지 못하는 약물투여로 날마다 조금씩 죽어가고 있었다. 그는 약해보였지만 벼랑 끝에서도 죽음을 거부하지 않았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꿈 많던 젊은 청년 시인의 인생은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으로 느껴졌다.
잎새에 이는 바람은 더욱 강하게 어필 되어 70여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시어는 분명 살아 숨 쉬고 있기 때문이다. 만물이 소생하는 봄을 맞으며 ‘다움’의 삶에 부끄럼 없기를 소망하면서 겸손히 두 손을 모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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