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조선업 사업재편 핵심…철강·건설·유화 '업계 자율 원칙'

글로벌 경기 침체가 길어지면서 기간 산업인 해운, 조선, 철강, 건설, 석유화학에 대한 대대적인 구조조정 태풍이 올해 휘몰아칠 전망이다.

그중에 핵심은 최근 가장 유동성 문제를 드러낸 해운과 조선업이다. 조원대에 달하는 적자에 수주 및 운임 급락 등이 겹치며 벼랑 끝에 몰려있다.

이들 5대 업종에 종사하는 직간접 인력만 100만명을 넘어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경우 우리나라 경제 전반에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전망이다. 이에 따라 정부가 구조조정에 있어 '옥석 가리기'가 중요한 상황이며 이들 업종 경영진으로선 뼈를 깎는 '군살 빼기'가 요구된다.

이에 따라 이들 업종은 자체적으로 비핵심 자산 매각, 인력 감축 등 비상 경영에 돌입했으며 정부 또한 조만간 채권단 등을 통해 본격적인 산업 재편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벼랑 끝' 해운·조선…올해도 암울 = 현재 5대 업종 중 구조조정 1순위로는 해운업이 꼽힌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 등 국내 해운사들이 장기 불황으로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다.

지난 2008년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후 세계 선박 수출입 물동량이 급감하면서 장기 불황이 계속됐다. 이후 8년여간 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을 제외한 중·소형 선사들이 대폭 물갈이됐다.

이 과정에서 새로 뛰어든 중·소형 선사들은 배를 헐값에 사들여 원가경쟁력에서 우위를 점하며 수익을 내고 있지만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수년간 수천억 원대의 적자를 내며 위기를 맞았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이 장기 불황에 고전한 이유는 외환위기 당시 보유하던 배를 팔고 외국 선사들에게서 배를 빌려 쓰게 된 것과 무관하지 않다.

호황기에 책정한 높은 용선료(선박 임대료) 계약 때문에 시세를 훌쩍 뛰어넘는 용선료를 지급하면서 불황에 따른 수익 감소와 더불어 이중고를 겪어왔다.

한국선주협회 조봉기 상무는 "세계 해운업계에서는 치킨게임이라고 할 만큼 경쟁이 치열한데 정부가 업계의 자구노력만 요구하면서 수년의 세월이 흘러 업계는 허약체질로 바뀌고 대외적인 여건은 악화됐다"면서 "정부와 금융권에서 한국 해운을 계속 지키려 한다는 신호를 세계 해운업계에 보여주고 지원한다는 사실을 대외적으로 보여줘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대중공업,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 대형 3사가 전 세계를 독식해온 조선업도 최근 해양플랜트 악재와 경영 부실로 수조원대 적자를 내면서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선박 수주는 끊기고 해양플랜트 악재는 지속하고 노사 갈등까지 이어지면서 조선업에 먹구름이 드리운 것이다.

이들 빅3는 지난해 총 8조5000억여원 규모의 사상 최대 적자를 냈다. 대우조선해양이 5조5051억원, 현대중공업이 1조5401억원, 삼성중공업이 1조5019억원의 적자를 각각 기록했다.

조선 빅3가 동시에 조원대 적자를 낸 것은 지난해가 사상 처음이며 적자 규모 또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대규모 해양플랜트가 납기 지연 또는 계약 취소되는 일이 잇따르면서 지난해 빅3의 총 8조원대 적자 가운데 해양플랜트 손실만 7조원대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올해 들어서도 최악의 국면은 전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올해 1분기 조선 빅3의 수주는 단 3척에 불과했다. 과거 분기당 40~50척씩 수주가 몰려 거절할 정도였던 때와는 천양지차다. 선박을 수주해야 수만명의 일거리가 생기는 조선업체로서는 답답할 노릇인 셈이다.

조선 빅3의 맏형 격인 현대중공업은 지난달 중동 선주로부터 정유운반선(PC선) 2척을 수주하는 데 성공했으나 이런 실적 또한 평년에 비하면 극히 저조한 편이다. 삼성중공업은 올해 현재 수주가 아예 없다.

석유화학도 대중국 수출에 의존해왔던 국내 업체들이 중국 기업들의 생산설비 확충으로 자급률이 많이 증가하면서 공급 과잉 상태에 놓였다.

수직계열화로 TPA 생산량 상당수를 자체 소비하는 롯데케미칼과 효성 등과 달리 외부 판매 비중이 높은 한화종합화학과 삼남석유화학 등은 어려운 형편이다.

2000년대 후반 이후 불황기를 거친 건설업은 지난해 주택경기가 반짝 호황을 누리면서 잠시 활력을 되찾는 듯했지만 계속되는 저유가에 지난해 해외건설 시장에서 고전했다.

해외건설 시장은 전통적인 수주 텃밭이었던 중동 산유국 발주처들이 재정난을 겪으며 발주 물량을 축소하거나 발주 자체를 연기해 수주 급감으로 이어졌다.

85억 달러 규모의 카타르 알카라나 석유화학 콤플렉스 프로젝트 등 중동에서 진행되던 사업 발주도 줄줄이 연기되면서 지난해 우리 기업의 플랜트 수주액은 264억9000만달러에 그쳤다.

4월 현재 수주액은 113억2442만달러로 이는 전년 동기(28억2250만달러)보다 46% 줄어든 금액이다.

●5대 업종은 자체 '구조조정 중'…성과는 '미흡' = 이들 5대 업종은 자체적으로 비상 경영에 돌입해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그러나 전반적인 평가는 미흡한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정부가 개입해 옥석을 가려줘야 하는 상황이 불가피해졌다.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은 그동안 위기를 타개하고자 꾸준히 자구 노력을 펼쳐왔다.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계열사 지분을 전량 매각한 데 이어 벌크전용선, 국내외 터미널 지분 등을 팔고 대한항공으로부터 긴급 자금을 수혈받으면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에게 경영권을 넘겼다.

현대상선은 2011년 3000억원대의 영업손실을 시작으로 2012년 5000억원대, 2013년 3000억원대, 지난해 2000억원대의 적자를 내는 등 부채규모가 6조원대에 이르면서 액화천연가스(LNG) 운송사업과 컨테이너, 초대형원유운반선, 자사주 등을 매각했다.

일단 현대상선은 용선료를 낮춰야 채권단의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조건부 자율협약 상태여서 최근 진행 중인 외국 선사들과의 용선료 협상에 사활을 걸고 있다.

현대상선은 이달까지 용선료 협상을 마치고 만기가 돌아오는 전체 공모 사채를 대상으로 오는 6월께 일괄 사채권자 집회를 열어 출자전환 등 채무조정을 진행할 방침이다.

한진해운은 한진그룹 지원으로 유동성 확보에 나서는 등 자구안을 마련해 채권단과 협의 중이며 지난 1월부터 진행한 재무진단 컨설팅이 끝나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주도로 경영개선 방안을 수립할 예정이다.

조선업의 경우 조선 빅3를 통폐합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국내에서 세계적인 규모의 조선업체가 3개나 있는 것은 과잉이라고 주장한다. 한진중공업 등 중소형 조선소까지 합치면 국내에만 20여개가 넘는 조선업체가 있다.

그러나 조선업계 내부에서는 3~4년만 버티면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주장도 적지 않다. 어차피 공급 과잉으로 벌어진 '치킨 게임'이기 때문에 중국과 일본보다 오래 버티면 결국 조선 빅3의 세계 독식 구조가 다시 가능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철강의 경우 철강협회는 늦어도 이달 안에 컨설팅 업체를 선정해 철강업종 공급과잉 관련 보고서 작성을 의뢰할 계획이다.

철강은 기활법(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과 관련 정부가 첫 번째로 공급과잉 문제를 진단하는 업종이다. 그만큼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정부가 판단한 것으로 풀이된다. 오는 6~7월 보고서 작성이 마무리되면 개별 철강 기업들이 이를 검토한 뒤 기활법 적용 여부를 결정한다. 기활법이 적용되면 정부는 세제나 자금 등을 통해 구조조정 지원에 나선다.

국내 철강업계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체적인 작업에 나선 상태다. 포스코는 재무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해 국내외 34개 계열사를 정리한 데 이어 올해 추가로 계열사 35개사를 매각하거나 청산할 방침이다. 현대제철은 자동차 강판 등 수익성 높은 폼목 위주로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동국제강은 계열사 국제종합기계 매각을 추진하는 등 비주력 사업을 정리하고 있다.

석유화학도 기활법 적용 업종으로 자주 거론되고 있다. 업계는 자발적인 사업 재편을 위해 '석유화학 경쟁력 강화 민간협의체'를 구성했지만 구체적인 결과물을 내지는 못했다. 다만 각사마다 수급을 조절하거나 원가를 절감하고 체질을 개선하는 등의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건설업계에서는 중동 일변도였던 해외건설 시장의 다변화를 모색하고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해외건설 사업 발굴·기획부터 자금조달, 시공, 운영 관리까지 종합적으로 책임지는 투자개발형 사업 역량을 키워가야 한다는 공감대도 커지는 분위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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