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희 팔(논설위원/소설가)

▲ 박 희 팔(논설위원/소설가)

진서방이 일곱 번째 가서야 고대 고대하던 사내아이를 보았다. 이 얼마나 경사스런 일인가. 그 때는 그랬다. 생기는 대로 많이 낳을 때였지만 이왕이면이 아니라 절대로 아들자식 많기를 바랐고, 그래서 아기를 생산하는 두 내외는 물론 온 식구가 출산의 결과에 마음을 졸였다. 일곱 번째에야 사내아이를 낳은 날 산모는 감격의 눈물을 흘렸고 진서방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면서 밖으로 뛰쳐나와 동네고샅을 누비며 날아다녔다. 이걸 보고 동네사람들은 벌써 진서방이 대를 잇는 데 성공한 것을 알아차렸다. “진서방 안에서 어젯밤부터 애를 벼른다더니 마침으로 사내꼬투리를 낳나 보네.” “그러니 저리 입을 귀에 걸고 밖으로 나와 쏘다니지. 여식만 여섯을 봤을 때는 두문불출로 이레 여드레를 집안에만 박혀 있던 사람이 말여.” 부인네들도 가만히 있질 않았다. “그느므 아들자식이 뭔지 저리도 좋을까. 이번에도 아녔으면 워떡 했을까?” “그나저나 애 엄마기 인제 기를 피고 얼굴을 들겄어.” “그걸 보믄 여자는 사람도 아녀 내도 딸자식이 다섯이지만 끝으루 막냉이 아들을 보니께 딸애들은 여벌이더라구. 온 식구가 오냐 오냐 아들만 받들구 여겨줘.” 이런 판에 팽나무 정자 앞을 히쭉히쭉 대며 지나가는 진서방을 동네남정네들이 불러들였다. “여보게, 애 이름은 지었는가. 이름이 있어야 사람구실을 하는겨.” “아직….” “미리 지어놓는 사람도 있네만 뭐가 나올지 알구 미리 짓겠나. 인제 소원풀이 했응께 그에 걸 맞는 이름을 잘 지어보게.” “고마우이 들, 그래 뭣이 좋겠는가?” “그야 마땅히 애비가 지어야지. 자네 이름도 자네 아버님이 지은 거라며?” 이래서 진서방은 집에 돌아와 애 이름을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 최종적으로 두 가지를 놓고 저울질하다 애 옆에 누워 있는 안사람에게 갔다. “여보, ‘이을이’가 좋을까 ‘새롱이’가 좋을까?” “뜬금없이 뭐가요?” “애 이름 말여, ‘이을이’는 ‘대를 잇는 아이’라는 뜻이구 ‘새롱이’는 ‘새로운 아이’라는 뜻이거든?” “‘대를 잇는 아이’라는 건 알겠는디 ‘새로운 아이’라는 건 무슨 뜻유?” “여섯의 딸들 끝에 비로소 ‘새로운 아들’이 나왔다는 뜻이야.” “‘롱’ 자가 들어가서 시방은 귀엽게는 들리지만 낭중에 커서 어른이 되어서도 괜찮을까 모르겄네. 그래도 ‘새롱이’, ‘진세롱’, ‘진짜로 새로운 아들’ 이게 낫겠어유.” 이래서 아이의 이름도 탄생했다.
 진서방은 새롱이가 초등학교 들어갈 나이가 되자, 말이 아니니까 제주도로는 보낼 수 없고 사람이니 서울로 보내야겠다며 서울의 형님에게 전화를 걸었다. “형님, 내 끝둥이 새롱이 말인데유 형님네서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꺼정 있어야겄어유. 저 학비며 먹을 꺼 입을 껀 다 보낼께유 괜찮겄쥬?” “네 형수하고 상의해 보겠다.” “아니, 형수님한테 쥐어 지내우. 형수님 대 줘유!” “아,아, 아니다. 아니다. 알았다.” 이래서 새롱이가 서울서 자라게 됐는데, 방학 때 시골집에 오면 온 식구가 환영일색이다. 그런데 유독 셋째가 깔꼬장한 태도를 보인다. “네가 또 딸로 나오면 딸이 일곱이 돼서 ‘새븐이’라고 이름을 지으려고 그랬어 내가.” “새븐이?” “그래, ‘일곱 번째 아이’ 말야 영어도 모르냐 서울학생이?” “이왕 신식 새로운 이름으로 하려면 ‘러키세븐’이라고 지어 놀걸 그랬잖아 ‘행운의 일곱 번째 딸’ 말이야.” “어쭈, 이 자식 보게, 여하튼 너 땜에 다 파토났어 그런 줄 알어.” “알았어 셋째누나, 미안해.”
 이 신식 새로운 아이 새롱이가 대학생이 되어서 같은 과 여학생과 연애에 빠져들었다. 이 소식을 듣고 진서방이 서울의 형님께 전화를 걸었다. “형님, 새롱이가 공부는 뒷전이고 연애질에 빠졌다메요?” “빠지긴, 서로 사귀는가 보더라. 요새 애들 많이들 그렇게 하는 모양이야.” “여하튼 우리 새롱이 어떤 앤지 아시지유. 형님이 감시 잘 하셔유.” “얘는, 아들은 너만 있는 것 같구나. 너무 그렇게 끌탕하지 말어.”
 그런데 새롱이가 군대를 갔다 와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했는데 그 색시가 바로 그 같은 과 그 여학생이다. 헌데 둘이 게집 애만 둘 낳고는 그만 낳는다는 것이다. 진서방은 노발대발했다. 진서방의 입장에서는 다분히 그럴 만 했다. 내게 어떤 아들이냐 이거다. 이에 새롱이가 셋째누나에게 매달렸다. “셋째누나, 누나도 새로운 사고방식의 소유자고 내 이름도 ‘새로운 아이’야 우린 서로 통해. 누나가 아버지의 고지식한 옛 사고의 틀에서 벗어나시게 잘 좀 말씀드려 줘. 누나는 충분히 할 수 있잖아.”
 셋째가 어떻게 무슨 말씀을 드렸는지는 모르겠으나 여하튼 셋째가 시골의 부모를 만나보고 간 후, 진서방이 요즘은 전에 없이 두 손녀의 안부를 묻고 챙기기에 바쁘다고 한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