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 김영이(동양일보 편집상무)

어버이날(8일)이 다가온다. 자식을 3명 둔 아버지이지만 올해는 어버이날을 맞기가 부끄럽기 짝이 없다. 차라리 이번엔 어버이날이 없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작년까지만 해도 어버이날이면 ‘아, 나도 그 많은 대한민국의 어버이 중 한명이구나’하고 가슴을 폈다.

넉넉치 않은 여건에서도 자식들을 그런대로 키웠다고 자부했고, 자식들 역시 큰 탈 없이 자라 지들 역할 다 하는 것을 보고 어버이라는 이름을 감히 자랑하지는 못해도 부끄럽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올해는 어버이날이 싫다. 자식, 손주들이 선물을 안주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카네이션을 안달아 주겠다고 한 것도 아닌데 올해는 싫다.

어버이, 얼마나 존경스럽고 존중받아야 할 덕목인가. 어느 자식도 넘볼 수 없고 어겨서는 안되는 소중한 존재다. 설령 부모·자식간 의견대립이 있을지언정 어버이라는 이름을 내칠 수 없는 게 바로 우리의 어버이다.

대한민국어버이연합. 이 단체가 대한민국에 사는 어버이들을 슬프게 만들고 있다. 물론 ‘어버이’라는 보통명사 누구나 쓸 수 있다. 누구나 결혼해서 아이를 낳으면 얻는 이름이어서 누구 허락을 받을 필요도 없다.

그렇게 흔한 보통명사이지만 어버이를 쓸 때는 그 격에 맞게 써야 한다. 그게 예의고 도리다. 아무리 나이 많은 어버이들이라도 예외는 없다. 그 어버이 위에 어버이가 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우리는 혜성같이 나타난 ‘어버이’들의 과격 시위를 숱하게 봐야 했다. 주로 이들은 정부 여당이 불편해 하는 시위현장에 득달같이 나타나 폭력을 일삼았다. 욕설? 그건 기본이고... 항상 그들의 입에는 ‘종북’과 ‘빨갱이’가 따라 다녔다. 때론 프로판가스통도 동원해 ‘가스통 할배’라는 달갑지 않은 이름도 붙여졌다.

그 ‘어버이’들은 세월호 참사로 자식들을 먼저 보낸 유가족들의 한 서린 단식 현장에서 폭식 폭력을 마다하지 않았다. 아이들 죽음의 원인을 밝히고자 죽음을 각오하고 단식을 벌이는 유가족들 앞에서 보란 듯이 폭식을 하는 어버이들. 배고픔의 고통 속에 빠진 사람들을 향해 ‘먹고 싶지?’ 하며 약 올리고, 비웃고, 빈정대고, 조롱하는 어버이들.

이들이 진정 자식을 가진 어버이일까, 자기 자식이 죽었어도 저런 망나니 짓을 할 수 있을까. 힘겨운 단식을 하는 사람들 앞에서 폭식으로 맞대응한다는 것은 분명 인간이 할 짓이 아니었다.

그 ‘어버이’들은 위안부 할머니를 돕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가 종북단체라는 막말도 서슴지 않았다. 한·일 위안부 합의가 굴욕적이라고 주장하는 정대협을 종북사상을 갖고 활동하는 단체로 매도했다. 그들이 진정 보수라면 위안부 할머니들의 아픔을 더 보듬어 줘야 하는 데도 말이다.

정상적인 어버이들은 이런 일을 저지를 엄두도 내지 못한다. 어디서 뒷돈을 대 동원한 수상쩍은 사람들은 분명한데 확증이 없으니 그저 추측만 할 뿐이었다. 이런 짓은 유신, 5공을 거치면서 수없이 경험한 국민이라면 서로 눈만 꿈쩍해도 다 아는 사실 아니던가.

오죽하면 성스러운 어버이라는 이름을 더럽혀가며 활개치는 종북놀이, 빨갱이놀이에 대항하기 위해 진짜 자식들이 나서 맞짱을 뜰까, 안타까운 현실이 아닐 수 없다.

그 첫번째가 2010년 출범후 2년여 활동하다 자진 해산한 ‘대한민국자식연합(대자연)’이다. ‘자식 이기는 부모 없다’는 모토로 주로 트위터에서 활동했다.

두번째는 ‘대한민국효녀연합(효녀연합). 사회적 예술가 홍승희가 결성한 효녀연합은 “애국이란 태극기에 충성하는 게 아니라 물에 빠진 아이들을 구하는 것”이라는 구호를 내세워 그 ‘어버이’들을 일격했다. 우리를 더욱 서글프게 하는 것은 ‘자식’도 ‘효녀’도 아닌 ‘후레자식연대’의 출현이다. “어버이연합과 엄마부대를 부모로 두지 않은 모든 이들을 환영합니다. 저희는 전경련에서 돈을 받지 않고, 청와대의 지시로 뭔가를 하지 않으며, 국정원과도 관계가 없습니다”

‘어버이연합’이 전경련의 음성적 지원을 받고, 일당을 주고 탈북자들을 집회에 동원하고, 청와대의 지시를 받아 집회를 열어왔다는 의혹이 제기돼 대한민국 ‘진짜’ 어버이들이 얼굴을 들 수 없게 만들었다. 70대 이상 어버이들이 이 나라를 지키고 지금의 우리를 있게 한 것은 분명하다. 어버이날을 앞두고 그들의 헌신을 다시금 되새겨 본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러한 숭고한 이름을 딴 단체를 만들고, 이들을 조종해 어버이들을 욕되게 하는가. 경로사상에 기대어 “아버지가 오죽하면 그랬겠느냐. 왜? 어쩔래?”가 먹힐 줄 알았다면 큰 착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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