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중·일 지식인 기고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를 찾아서’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형식으로 진행되고 있는 동양포럼은 이번 회에서 한·중·일 지식인들의 기고문을 소개한다. 조성환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전임연구원, 강은방(强恩芳) 텐진사범대 교수,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등 각자의 나라에서 치열한 연구 활동을 하고 있는 학자들은 역사 인식을 둘러싼 마찰은 동아시아를 불안정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며 독자적인 철학을 갖고 새로운 동아시아의 공통 가치를 탐색하자는 의견을 제시했다. <편집자주>

 

 

우리에게 일본이란 무엇인가?

- 우리 밖의 또 다른 우리 -

조성환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전임연구원

조성환

원광대 종교문제연구소 전임연구원

내가 생각하기에 한국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면서도 실은 가장 잘 모르는 나라는 일본일 것이다. 또한 가장 잘 알아야함에도 불구하고 가장 잘 알려고 하지 않는 나라 역시 일본이다. 뒤집어 말하면 한국 사람들은 미국이나 유럽 또는 중국에 대해서는 많이 알아야 된다고 생각하고, 또 실제로 알기 위해서 많은 시간을 투자하고 있지만 정작 가장 가깝다고 생각하는 일본에 대해서는 지나치리만큼 인색하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이다. 일본인들의 한국에 대한 무지와 편견은 한국인들의 일본에 대한 그것보다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는 않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두 나라는 가장 가까이에 있으면서도 가장 무관심한 것이다.

이러한 경향은 내가 몸담고 있는 인문학계의 경우에는 특히 더 심하다. 모든 학문의 기준이 서양 중심이고 중국에 대한 관심도 여전하지만, 일본은 철저하리만큼 배제되어 있다. 철학과에서 일본철학 과목이 개설되는 것은 보기 드문 일이고, 종교학과에서 일본종교 수업을 듣기란 하늘에서 별 따기이다. 물론 여기에는 역사적인 문제, 감정적인 문제, 일본의 위상문제 등 여러 요인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일본에 대해 완전히 등을 돌려도 되는 것일까? 삼성의 이건희 회장은 “소니는 우리의 영원한 스승이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이 말은 소니와 삼성의 위치가 역전되어 더 이상 소니가 삼성의 경쟁자가 되지 않았을 때에 나온 말이라 더 의미심장하다. 이건희는 일본의 힘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어렸을 때에 일본에서 살면서 일본의 저력을 몸소 체험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일본을 알아야 하는 이유는 단지 일본이 저력이 있어서만은 아니다. 일본은 우리 자신을 알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알지 않으면 안 되는 대상이다(이 점에 있어서는 일본 역시 마찬가지이다). 적어도 내가 6년간의 유학생활을 통해서 체험한 일본은 그런 존재였다. 그것은 우리 밖에 있는 또 다른 우리였다. 마치 애증관계에 있는 남과 북처럼, 한국과 일본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였다.

일본에서 맨 먼저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뜻밖에도 고등학교 수학 교과서였다. 용어는 물론이고 체제와 내용까지 내가 고등학교 때 배웠던 수학책과 흡사했다. 마치 번역을 해놓은 것처럼 복사판이었다. 무엇보다도 미적분 중심의 공업수학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점이 그러했다. 서양문화에서 강조되었던 논증으로서의 수학, 철학의 한 요소로서의 수학이 아니라, 말 그대로 공업국가 건설을 위한 공학으로서의 수학인 것이다. 순간 우리가 추구했던 ‘근대국가’의 모델이 일본으로부터 왔음을 직감할 수 있었다.

흥미롭게도 내가 수학과에 다닐 때 배웠던 어떤 교수님은 고등학교 수학교과서를 집필하신 분이고 미국에서 유학을 하신 분이지만 일본을 싫어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일제 시대를 경험한 분이었으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그 분이 쓰신 수학교과서가 지극히 일본적이었던 것이다. 나는 이것이 바로 우리의 현실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영화 ‘에어리언’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자기가 싫어하는 존재가 자기 안에 들어와 있는 현실…(물론 이것은 일본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수학 이외에 나를 놀라게 했던 것은 슈퍼마켓에 진열되어 있는 익숙한 과자들이었다. 내가 어렸을 때 먹었던 과자들이 거기에 그대로 놓여 있는 것이 아닌가! 이름은 물론이고 포장지, 맛, 모양, 색깔까지, 모든 것이 똑같았다. 단지 다른 것은 언어뿐이었다. 심지어는 자동차에 달려 있는 ‘혼다’와 ‘현대’의 로고까지도 유사했다. 하나는 ‘H‘가 똑바로 서 있고, 다른 하나는 약간 눕혀져 있다는 정도였다. 왜 이렇게 비슷할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한국이 일본을 통해 서양문화를 받아들였기 때문일 것이다. 마치 과거에 일본이 한국을 통해 중국문화를 수용했듯이. 그래서 결과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한국을 통해 들어간 중국문물을 공유하고, 일본을 통해 유입된 서양문화를 공유함으로써 서로 닮은꼴이 된 것은 아닐까?

그래서 “우리에게 일본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우리에게 한국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과 직결된다. 양자는 결코 별개의 물음이 아니다. 한국과 일본은 ‘부즉불리(不卽不利),’ 즉 완전히 붙어있지도 않고 완전히 떨어있지도 않은 ‘묘한’ 관계에 있다. 따라서 일본을 아는 것이 바로 한국을 아는 것이고, 한국을 아는 것이 곧 일본을 아는 것이 된다. 그러나 두 나라는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교토대학의 한국사상 전문가인 오구라 키조(小倉紀?) 교수는 “일본학자들은 서양을 너무 많이 공부한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이 비판은 한국학자들 역시 피해갈 수 없을 것이다.

한·일 양국은 상대방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기보다는 자기가 보고 싶은 모습만 바라보고 있다. 자기를 찾기보다는 남을 닮아가려고만 하고 있다. 공자는 ‘논어’에서 자신을 “술이부작(述而不作)”한 사람이라고 자평했다. 즉, 전통문화를 정리하고 해석하고 전달했을 뿐이지 자신이 새로 만든 것은 없다는 뜻이다. 이 말을 빌리면 한일양국은 지금까지 ‘작(作)’보다는 ‘술(述)’에 치중해 왔다고 할 수 있다. 과거에 한국은 중국을 ‘술’했고 일본은 그런 한국을 ‘술’했다. 근대에 일본은 서양을 ‘술’했고 한국은 그런 일본을 다시 ‘술’했다. 그리고 그 ‘술’의 정도 여부를 가지고 상대방을 폄하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양국이 진정한 ‘작’의 문화를 건설해야 할 때이다. 중국과 서양에 기대지 않고 자기만의 생각과 시각을 가져야 한다. 외적 권위로부터 자유로워지고 독자적인 철학을 갖게 되었을 때 비로소 양국은 진정한 의미에서 상대방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동아시아의 공통가치에 대한 탐색도 여기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된다.

 

 

중국에게 한국이란 무엇인가?

강은방(强恩芳)

텐진사범대 정치행정대학 교수

강은방(强恩芳)

텐진사범대 정치행정대학 교수

1992년 8월 24일 한·중 수교 이후 한국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 등 5대 전 대통령과 중국의 덩샤오핑, 장쩌민, 후진타오 등 3대 지도자의 노력을 거쳐 현재의 박근혜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 시대에 이르렀다. 두 국가 원수는 일제히 중·한 양국의 전략적 합작관계의 함의를 더욱더 풍부히 하여 양국으로 하여금 공동 발전 파트너, 지역평화 파트너, 아시아 진흥을 위한 파트너, 세계번영 촉진 파트너로 될 것을 결정했다.

한·일 양국이 위안부문제로 합의를 달성한 것과 한·미·일 동맹이 북한 핵실험으로 더욱 강화된 후 만났던 일부 한국 학자와 일반인들은 나에게 한국인은 일본인과 합작하기 정말 싫지만 중국이 한국을 포기해 한국의 이익에 대해 묵살하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특히 북한이 4차 핵실험을 진행한 후 한국의 중국에 대한 불만은 급속도로 상승했다. 한국 언론, 한국인 및 한·중 관계 학술회의 전문가들의 발언으로부터 볼 때 중국에 대한 불만은 주로 두 가지 측면에 집중되어 있다. 첫째, 왜 중국은 끊임없이 북한을 제재하지 않는가? 둘째, 왜 시진핑 주석은 박근혜 대통령의 전화를 받지 않는가? 또 어떤 사람은 나에게 중국인은 한국인을 어떻게 보고 있는가 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나를 한국을 알고 있는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2005년 3월부터 2008년 8월까지 충북대 이재은 교수 지도 하에서 행정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가까이에서 한국사회와 한국 국민에 대해 관찰하기 시작했고, 또한 한국 학계와 교류를 하게 됐다. 한국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텐진(天津) 사범대학 행정학과 교수로 임용되었고 ‘한국학 입문’ 강좌를 개설하게 됐다. 그 후 몇 년 동안 나는 여러 차례 한국의 학술활동에 참여하게 되면서 한국에 대한 지속적인 관찰을 하게 됐다.

북한과 중국의 관계에 대한 판단으로부터 볼 때 전임과 현임 고위관직, 학계의 전문가와 학자를 막론하고 한국의 엘리트 계층 중 중국을 아는 사람이 매우 적다는 생각이 든다. 상당이 많은 한국인들은 중국인들의 사고방식, 중국의 정치체계, 중국정부의 운영방식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있으며 지금 중국 국정에 대해서는 더욱더 잘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은 북한의 핵 위기 이후 한국정부의 정책과 국민들로부터 중국에 전해지는 말들에서 엿볼 수 있다. 주로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측면에서 그렇다.

첫째, 한국은 자주적 외교로 북한 핵문제를 해결할 것을 주장한다. 한국이 중국에 대해 비판을 시작했는데 마치 예전의 중국과 협력하는 해결방식으로 한국정부의 작용이 충분히 발휘되지 않았던 것과 같다. 그러나 한국의 독립, 건국, 6.25전쟁, 경제성장 등 중요한 단계에 있어 한국이 언제 진정으로 자주적인 적이 있었던가?

둘째, 한국이 미국과 사드배치에 대해 논의하기 시작했고 사드배치가 한국의 안정을 보장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의 자주국방정책의 표현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지역안전에 대한 우려를 초래했다. 사실 미국정부도 사드 배치 문제는 중국과 협상할 필요가 있다고 승인했다. 이는 사드배치 문제는 한·미 양국만으로 확정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말해주고 있다. 그러나 사실상 중국은 지난 3월 2일 연합국의 북한에 대한 제재방안에 찬성표를 던졌고 동시에 북한에 대해 엄격한 제재를 실시하기 시작했으며 그 강력함은 많은 전문가들의 판단과 예상을 초월했다. 한국과 중국은 긴밀한 이해관계가 있는 인접국으로 마찰과 모순이 발생하는 것은 극히 당연한 일이지만 일부 불필요한 모순을 초래하는 원인은 한국인이 중국에 대해 잘 알지 못하고 잘못된 자아 인식과 판단에 있다고 생각한다. 실제 한국인들이 자체적으로 생각하는 중국의 중요성은 중국이 한국에 대해 생각하는 중요성보다 훨씬 크다. 한국인들의 민족주의와 국가주의 간에서 이익이 불일치하기 때문에 민족주의 정서가 국가이익을 좌우하고 있으며 세계에 대한 관찰과 학습을 저해하고 있다. 비록 양국은 공통의 관심으로 수교 이래 점차적으로 진정한 이익 공동체가 되었지만 중국경제의 급속한 성장으로 한국 경제의 중국에 대한 의존도 또한 지속적으로 높아졌다. 반면 한국에 대한 중국의 중요정도는 지속적으로 하락됐다. 예를 들면, 2015년 한국의 1인당 국민총소득(GNI)은 2만7340만 달러로 이는 2006년에 2만 달러를 돌파한 후 연속 10년 동안 3만 달러를 초과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은 2005년 일인당 GDP 1700달러에서부터 2015년 8000달러로 도달했고, 특히 베이징의 1인당 GDP는 1만7000 달러에 도달했다. 한중 관계의 발전적 미래를 위해 한국은 더욱더 중국, 중국인, 중국사회와 중국 국정에 대해 파악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현재 상황에서 한국은 아래와 같은 두 가지 측면에 대해 인식해야 할 것이다.

첫째, 한국은 중국의 매우 중요한 전략적 파트너이다. 그러나 이는 중국이 국가이익을 희생하면서 유지하는 정도는 아니다. 미국 전 국무장관 키신저(基辛格) 박사는 예전에 중·미 양국이 수교 이래 미국은 중대한 문제에 있어 중국을 배신한 적이 없다고 했다. 호주의 전 외교부장 또한 중·미 관계는 마치 부부사이와 같다고 했다. 중·미 관계는 향후 여전히 중국 외교의 가장 중요한 부분일 것이지만 한·미동맹과 지정학적 관점을 막론하고 중국은 한·중관계에 대해 더욱더 중요시할 것이다.

둘째, 한국은 동북아 정세를 주도할 능력이 없다. 북한의 핵문제는 북한과 남한 간의 문제가 아니라 동북아 지역정세 나아가 세계정세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이다. 때문에 한국이 동북아 정세를 주도할 의지가 있더라도 한국의 정치, 경제, 군사역량으로부터 볼 때 그 전략적 의도를 지지할 능력은 상당히 부족하다. 북한의 핵문제는 바둑판과도 같다. 한국과 북한은 마치 바둑판에서 바둑을 두는 사람과 같지만 진정한 기수는 바둑판 밖에 있는 중국과 미국이다. 이는 한국의 국가주권 독립성과 민족의지에 대해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한국의 지리적 위치, 국토면적과 인구현황 및 역사적 요인들이 공통으로 결정한 것이다.

예전에 한국에서 열린 국제학술회의에서 나는 이러한 관점을 발표한 적이 있다. 중국 시진핑 주석은 예전에 ‘마음으로 교류하면 오래갈 수 있다’고 한 적이 있다. 그러나 이는 개인적 사귐에 있어 마음으로 사귀라는 말이다. 시진핑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의 교류는 바로 ‘마음을 통한 교류’이다. 그러나 국가 간의 교류는 ‘이익에 기반’하여 진행하게 된다. 시진핑 주석과 박근혜 대통령의 사적인 교류가 얼마나 두터운지와 별도로 국가 이익 앞에서는 사적인 교류는 2순위가 될 수밖에 없다.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이 참석한 중국의 9.3 열병식, 한국의 아시아 은행 가입, 이 모든 것은 국가이익 최대화를 위한 결정인 것이다. 예나 지금이나 중국과 한국은 ‘화합하면 양국 모두 이익, 싸우면 양국 모두 상처가 될 것이다’. 한국무역협회의 통계에 따르면 2015년 한국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은 990억 달러, 중국에 대한 수출액은 1370억 달러로 무역수지 흑자 470억 달러를 달성했다. 같은 시기 한국의 미국으로부터의 수입액은 440억 달러, 미국에 대한 수출액은 700억 달러로 무역수지 흑자 260억 달러를 달성했는데 무역 총액 또는 무역수지 흑자 모두를 살펴 볼 때 중국과의 무역보다 상당히 적은 수준이다. 양국의 국민들은 모두 각국 지도자의 지혜에 대해 충분히 믿음을 가지고 자신의 극단적인 정서로 국정에 영향을 미쳐서는 안 될 것이며 일반인에게는 각자의 생활이야말로 가장 중요한 것이다.

화해와 번영과 평화를 위한

‘한일모델’을 향하여 1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오구라 기조

교토대 교수

지금 여기서 하나의 사고실험(思考實驗 thought experiment)을 하고자 한다.

이것은 지금까지의 한·일관계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하고자 하는 시도이다. 구체적으로는, 해방 후, 특히 1965년 이후의 한·일관계를 최대한 긍정적으로 본다면 과연 어떻게 보이는가라는 시도를 하는 것이다.

내가 이런 시도를 하려고 하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이다.

하나는, 한·일관계가 좋아질 것 같은 조짐이 보이다가도 결국은 다시 나빠지는 회로가 계속해서 되풀이되는 것을 강하게 우려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지금 세계 상황을 보면서 우리 한·일 양국 사람들이 세계에 공헌할 수 있는 길이 분명히 있는데도, 그걸 포기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반성이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이런 이유에서 나는 “화해와 번영과 평화를 위한 한·일 모델”이라는 하나의 이념형(Idealtypus)을 제창하고자 하는 것이다.

지난해 말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관한 한·일 정부 간 합의가 발표됐다. 나는 대부분의 일본사람들이 위안부 문제에 관해서 가슴속에 “죄송하다”라는 마음을 가지고 있으리라 생각한다. 1990년대의 일본사람들은 지금보다 더 강한 사죄의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어느새 그런 마음을 공적으로 표명하는 사람은 줄어들었고, 대신에 “위안부 문제란 원래 없던 것을 날조한 것이다”라는 이야기를 공적 공간에서 큰소리로 주장하는 사람들마저 등장했다.

한국 국내에서는 한·일 정부 간 합의가 발표된 이후, 강력한 반대 의견이 대두됐다. 당사자의 마음도 헤아리지 않은 채 일방적으로 “합의”를 통해 이 문제를 최종 해결하고자 하는 태도는 분명히 폭력적이며, 따라서 합의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나 또한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오히려 나도 심정적으로는 같이 “합의 반대”를 외치고 싶기도 하다. 그러나 간신히 이루어낸 합의를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면 아마 한·일관계는 불가역적으로 산산조각 파괴되리라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아베정권이 공식적으로 책임을 통감하고 사죄했다는 사실을 너무 가볍게 보아서는 안 될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으로 아주 무거운 결단이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 문제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격렬한 논쟁이 계속될 것이다.

이 문제를 포함해서 일본과 한국, 중국 간의 역사인식을 둘러싼 마찰은 영토문제, 북한문제와 더불어 동아시아를 불안정하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역시 역사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불가능한 게 아닐까”라며 우리들은 희망을 잃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여기서 완전히 다른 인식을 제기하고자 한다.

역사문제에 대해서 우리는 지금까지 많은 노력을 해 왔지만, 아직 노력이 모자라는 측면이 하나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역사에 대한 “해석” 또는 “인식의 틀”의 측면이다.

한·일의 역사학의 성과가 아무리 진전해도, 그것이 현실문제의 해결로 이어지기 어려운 이유 중 하나는, 역사학 자체가 “좌”와 “우”로 명확히 나누어져 있어서 역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낳기가 어렵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해석의 틀”을 바꿀 필요가 있다. “좌”도 “우”도 아닌 새로운 해석의 축을 만들어 나갈 필요가 있는 것이다.

그것은 전후 70년 동안 우리 한일 양국이 해 왔던 일을 최대한 긍정적으로 평가해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화해와 번영과 평화를 위한 한·일 모델”로 이름 지어 세계를 향해 내세우는 것이다.

난민이나 이민의 유입과 이슬람 과격파의 신장으로 인해 “실패” 쪽으로 기울고 있는 유럽과 비교하면, 동아시아는 근대적인 의미에서는 분명히 성공적인 지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현실을 정확히, 허심탄회하게 파악하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라고 나는 생각한다.

늘 “유럽은 앞서가고 있고, 동아시아는 그것을 뒤따라가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현실을 정확히 볼 수 없게 되며 현안 해결도 그만큼 멀어진다.

늘 “유럽은 대단하고, 우리는 안된다”고 자학적으로 생각하면 어떤 의미에서는 마음이 가볍다. 그러나 우리는 세계에 대해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에 이미 서 있는 것이 아닐까?

유럽은 분명히 우리보다 앞서가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유럽 “내부”의 일이다. 일찍이 유럽이 지배하고 침략한 “외부”와의 접촉면이 늘어남에 따라 ‘실패’와 ‘퇴행’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에 비해 동아시아에서는 1965년 이후 일찍이 침략한 측(일본)과 침략 당한 측(한국)이 어쨌든간에 대등한 관계를 구축해 온 결과 지금과 같은 ‘성공’과 ‘진보’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러나 우리의 역사인식은 역사를 그런 식으로 보는 태도를 강력히 기피한다.

동아시아야말로 전형적인 ‘실패의 지역’이라고 인식하는 것이 역사에 대한 ‘올바른 시각’이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역사를 더 정확히 봐야 하며, 좀 더 과감하게 “우리 동아시아야말로 세계에서 가장 앞장서 있다”고까지 생각해 보는 것도 허용되지 않겠는가라는 것이 나의 생각이다.

“역사문제에 대한 완전한 합의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뭐가 한·일 모델이냐”라는 비판이 당연히 제기될 것이다. 그건 나도 충분히 알고 있다. 한국과 일본이 지금까지 해 온 화해와 번영과 평화를 위한 노력이 이상적이었으며 성공적이었다고 후안무치의 태도로 주장하고 싶은 것은 결코 아니다. 많은 어려움과 마찰, 우여곡절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역사문제 해결과 공동의 번영, 평화를 향해 나름대로 많은 노력을 해 온 것이 한·일 두 나라의 관계였다고 발상을 전환하면 어떻겠느냐라는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위안부 문제 등 역사문제를 더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우선 우리가 해 온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이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을 가진 토대 위에서 해야 된다는 것이다.

우리가 어렵게 쌓아 온 것들이 아무 가치도 없다고 계속 부정만 한다면, 100년, 200년이 지나도 우리는 아마 아무 것도 이루어내지 못한 상태로 서로를 비방 하고 있을 것이다. 너무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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