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용길(전 괴산군의원 / 시인)

▲ 윤용길(전 괴산군의원 / 시인)

트랙터와 경운기, 이앙기가 논·밭을 갈고 곡식을 심느라 왕왕 거리는 바쁜 계절이다.
이맘 때 쯤 이면 40년 전 그날을 잊지 못한다. 그때는 대한민국도 지금의 북한처럼 외화수입 수단으로 뱀을 비롯한 불개미, 지렁이, 다람쥐 등을 수집해 수출을 했다.
당시 새끼다람쥐 한 마리 값은 장정 닷새 품삯과 같았다. 그러기에 사람들은 다람쥐를 잡기위해 야단 이었다.
다람쥐를 붙잡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긴 낚싯대 끝에 낚싯줄로 올무를 만들어 새끼다람쥐 머리에 씌워 잡고 또 하나는 새끼가 들어있는 굴을 파서 한꺼번에 몽땅 잡아내는 방법이다.
그날 나는 친구 흥권이와 함께 다람쥐를 잡으러 깊은 산속 묵은 밭에서 어미가 새끼를 주기위한 먹이를 가득물고 굴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분명히 새끼가 들어 있고 적어도 열 마리쯤 될 터이니 기뿐 마음에 산이 떠나가라 둘이서 소리를 치다 그리고 다람쥐가 도망가지 못하게 풀을 뜯어 굴을 틀어마고 호미로 파들어 갔다.
둥지 가까이에서 어미는 팍 소리를 내며 뛰쳐나갔다. 어미는 사지도 않으니 신경 쓸 여가 없이 계속 파들어 가서 드디어 새끼 다람쥐가 가뜩한 둥지를 보게 됐다.
그러나 보는 순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신나고 기뻐했던 꿈은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앞서 도망간 어미 다람쥐가 어린 자기 새끼를 다 물어 죽이고 갔기 때문 이었다.
십여 마리의 새끼를 어느 놈은 머리를 어느 놈은 허리를 이놈저놈 여기저기 할 것 없이 마구 물어 피가 범벅이 된 광경을 나는 멍하니 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머릿속은 다람쥐가 돼 수십만 가지 망상들이 거미줄처럼 엉키어 오고 갔다. 인간들이 쿵쿵 거리며 파들어 올 때 한꺼번에 그 많은 새끼를 다 안고 나갈 수 도 없고 잡히면 분명히 죽는 것인데 차라리 내손에 죽으라고 두 눈에 불을 켜고 천만가지 고민 끝에 미친 듯이 사정없이 물어버리고 인간이 모르는 곳에서 다시 낳아 기르면 되지 하고 애지중지 하던 새끼와 둥지를 버려야 했을 어미다람쥐 심정이 교차했다.
친구 흥권이는 눈물이 고여 멍한 나를 달래며 다른 곳으로 가서 잡자고 했지만 나는 약하게 물린 엄지손가락만한 새끼다람쥐 두 마리를 갔고 와 우유를 먹여 기르는 중 한 마리는 죽고 그 한 마리가 자라 짝을 지어 새끼치고 지금도 울안을 맴돌고 있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에게 잡히면 죽는 것으로 생각한 다람쥐처럼 짧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다.
자기가 없으면 아이들이 고생하다 죽게 될 것이라 생각하고 어린자식을 둘씩이나 안고 10층 아파트에서 뛰어 내리는가 하면 대·소변을 가리지 못한다거나 말을 안 듣거나 돈에 손을 뎄다고 또는 안 낳으려 했던 아이라고 마구 때리거나 밥을 굶겨 결국 숨지게 하는 사건들이 너무나 많이 발생 하고 있다.
다람쥐든 사람이든 자기가 나았지만 생명은 결코 자기 것이 아니다 또한 소유물도 아니기에 어떠한 악조건 의 경우라도 생명을 끊어서는 안 된다.
자식을 살리려고 철길로 뛰어든 엄마나 간을 성큼 내어준 아버지와 형제의 주변에 이야기를 우리는 잘 듣고 있다.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가 한없이 예뻐 보이고 말총머리를 한 엄마 품에 아이는 빼앗아 안아주고 싶은 것이 사람에 마음인데 계모가 됐든 의부가 됐던 단칸방에 부부 사랑이 곤란했든 아동학대는 무조건 있어서는 안 된다.
또한 우리 주변에 혹시라도 학대받는 아동이 없나 살펴보아야 하고 정부는 더욱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예방해 다시는 이런 비극이 오르내리지를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동양일보TV

저작권자 © 동양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